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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원, 총무처 23%인상안 외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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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내년도 공무원봉급인상을 놓고 총무처·기획원 등 정부관계부처와 민정당 사이에 서로 의견 조정이 안돼 진통을 거듭하고 있다.
예산국회 개회가 목전에 다가왔지만 봉급인상에 대한 확정안이 마련되지 않아 결국 막판에 가서야 결말이 날 것 같다.
경제기획원과 민정당이 5일 당정회의에서 공무원봉급인상을 9%선에서 묶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공무원들은 5공화국 때 물가안정이라는 국가정책에 밀려 희생양이 되어왔는데 새 정부 출범 후에도 또다시 희생양 노릇을 해야하느냐고 불만이 대단하다.
농민·도시서민·근로자계층에 성장의 열매를 되돌리는데 정책의 우선 순위를 두겠다는 정부방침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소외계층 아닌 소외계층으로 남아있는 공무원들에게도 이제는 성장의 혜택을 나누어주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공무원의 봉급이 민간부문에 비해 턱없이 낮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현재 공무원의 월 평균보수를 보면 봉급과 보너스·제수당 등을 모두 합쳐 경력6년의 9급(서기보) 6호봉의 경우 43만4천원, 경력17년의 6급 (주사) 9호봉의 경우 73만4천원, 경력21년의 3급 (부이사관) 8호봉의 경우 1백15만2천원을 받고 있다. <도표참조>
이같은 보수는 유사한 직종인 국영기업체의 보수수준에 비해 60.2%에 지나지 않는다.
국영기업체의 대리에 해당하는 경력7년의 공무원 6급 6호봉은 보너스포함 월 평균 7만3천원을 받고 있는데 비해 한국전기통신공사의 경우 79만4천원, 한국전력 90만7천원, 국민은행은 91만8천원을 받고 있다.
이들의 임금격차는 경력이 오래 될수록 더욱 커져 20년이 넘으면 거의 2배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공무원들의 불만은 이같은 보수수준에만 머무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지난 78년 이후 기구 및 정원이 동결돼 인사정체와 승진지연까지 겹쳐있다.
공무원의 계급별 승진소요연수는 5급 승진 3년, 4급 승진 4년, 3급 승진 4년으로 되어있으나 86년의 경우 실제상황은 각각 평균 7.7년, 9.3년, 8.7년으로 나타났다.
민간부문에서 대리에서 과장, 과장에서 차장 등으로 승진하는데 평균 3∼4년이 걸리는 것에 비하면 2배 이상의 격차가 나고 있다.
이같은 현상때문에 건설부·국세청 등 인사정체가 심한 부처의 경우 4급(서기관)으로 10년 이상 근무자가 15∼25%, 5급(사무관)으로 10년 이상 근무자가 20∼30%에 달하는 실정이다.
이처럼 보수와 인사 면에서 거북이걸음현상이 계속된 결과, 현재 일반직 55.9%, 경찰·소방직 70.6%, 고용직 99·8%의 공무원이 경제기획원에서 정한 도시봉급자 및 근로자의 가계비에 미달되는 보수로 어려운 살림살이를 하고 있다.
왜 이처럼 공무원들의 처우가 계속 민간부문에 뒤지고 있는지는 80년대 들어 봉급인상률과 가계비상승률을 비교해보면 잘 알 수 있다.
83년의 경우 공무원의 봉급인상률은 7.6%에 머물렀으나 가계비 상승률은 9.3%였으며 84년과 85년은 봉급이 각각 2.7%, 5.2% 인상된 데 비해 가계비는 2배가 넘는8.5%, 10.1% 인상됐다.
86년의 경우 공무원 봉급이 9.6% 인상돼 가계비상승률 7%를 앞질렀으나 87년에는 다시 봉급이 8% 인상에 그쳐 가계비인상률 12.9%에 못 미쳤다. 결국 정부가 물가안정을 이유로 공무원봉급인상률을 한자리숫자에 계속 묶어 두었기 때문이라고 밖에 설명할 도리가 없다.
총무처는 내년도 예산안을 경제기획원에 올릴 때부터 이같이 열악한 공무원처우를 개선키 위해 23%이상 인상시켜 줄 것을 요구했었다.
노태우대통령이 선거공약으로 내세운 92년까지 공무원봉급을 국영기업체의 90%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선 매년 20∼30%씩 인상해야 된다는 근거에서였다.
그러나·경제기획원은 물가를 안정시키고 농어촌개발, 도시근로자 복지후생에 우선적으로 투자해야 한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명해 총무처의 이같은 요구는 벽에 부닥치고 말았다.
경제기획원은 기본급 9%인상에 각종수당을 신설 또는 재조정해 공무원의 복지후생을 개선한다는 계획인 것 같으나 총무처의 요구에는 크게 못 미칠 것이 분명하다.
공무원봉급을 1%올리는데 2백45억원의 재원이 필요한 사실을 감안하면 총무처의 요구인상률을 만족시키기 위해선 3천억원 정도의 재원을 더 확보해야 하는데 내년도 예산편성에서 이같은 재원확보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기획원 쪽 이야기다.
민정당 쪽에서도 공무원의 처우개선을 해야한다는 사실에는 동의하면서도 재원확보의 어려움을 해결하는데는 묘안을 내지 못하고 있다.
결국 국회에서 내년 예산안을 다루는 과정에서 어떤 식으로든 결말이 나겠지만 현재로서는 공무원들의 불만을 해소시킬 만큼의 봉급인상은 이뤄지지 않을 전망이다. <이규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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