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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차사회 해법은 중산층·일자리' 일본은 수술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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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자유경쟁의 결과라면 격차(格差)가 생긴다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양극화 문제에 대해 늘 이 한마디로 결론을 낸다.

"격차는 고이즈미 개혁의 그림자"라는 야당과 언론의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사회격차, 즉 양극화를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투다. 그럼 일반인의 시각은 어떤가.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에 가 보면 잘 알 수 있다. '불안대국 일본' '하류사회' '희망격차사회' 등이 서가를 점령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요지부동이다. 일본의 자랑이던 '1억 총중류(總中流)'의 붕괴를 경고하는 책들이다.

사실 일본에서도 양지와 음지의 차이는 크다. 교육도, 취직도 마다하는 젊은이들과 짧은 시간에 거부(巨富)를 손에 넣은 부유층이 공존하는 게 일본의 오늘이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일본 사회는 의외로 차분하다. 계층 갈등의 조짐은 없다. 글로벌 경쟁과 구조조정에서 어느 정도 격차가 벌어지는 건 피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수수방관하는 건 절대 아니다. 경기회복에 탄력을 받고 있는 시점이기에 더욱 격차 해소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정부.지방자치단체.민간이 모두 경제성장 속에서 중산층을 더 두텁게 만들어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여기에 등장한 키워드가 바로 '기회'와 '도전'이다.

3월 말 일본 정부는 '재도전추진회의'를 발족시켰다. "승자에겐 자유를, 패자에겐 재도전 기회를 줘야 한다"는 주장(하나시 야스히로 자민당 의원)에 대한 화답이다. 실업자들에게는 취업 기회를, 저소득층엔 보다 나은 일자리를, 사업에 실패한 기업가에겐 재기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차기 총리를 노리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관방장관이 의장을 맡았으니 정치적 무게도 실려 있다.

근본 취지는 재분배가 아닌 재도전 기회를 늘려주는 것이다. 기존의 복지정책 이외에 추가로 재정을 투입해 중산층에서 탈락한 사람들을 구제하겠다는 발상은 없다. 대신 스스로 능력을 키워 계층 상승을 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데 비중을 둔다. 양극화를 고이즈미 개혁의 산물로 보는 야당도 무조건 재분배 정책을 요구하는 건 아니다. 개개인의 자립능력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격차 해소를 위해 정부는 '콘크리트(공공사업)'보다 인재양성에 돈을 써야 한다."(미네자키 나오키 민주당 의원)

이에 따라 일본에선 교육과 재훈련 등으로 개인의 취업 능력을 높여주는 프로그램이 많다. 양질의 일자리를 얻게 해주는 고용대책이야말로 최선의 중산층 육성대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디서도 '중산층 육성'이라는 거창한 이름의 정책을 찾아볼 수 없다. 대신 평소의 취업훈련.고용대책.보육지원 등이 모두 중산층의 토대를 다지는 방향으로 착착 돌아가고 있다. 예컨대 요코하마(橫濱)시의 '요코하마 프로모션 추진사업'이나 이즈미(和泉)시의 고용대책도 표현만 다를 뿐 중산층 육성 방안으로 가득 차 있다.

이를 주도하는 건 지방자치단체와 민간이다. 정부는 큰 그림을 짜고, 지자체.기업.비영리법인(NPO)이 '현장'을 맡는다. 정부는 재정 부담을 덜고, 지방은 지역밀착형 대책을 시행할 수 있다. "중산층이 많아야 건강한 도시를 만들 수 있다"는 고바야시 노부코(小林信子) 이즈미시 취업지원계장의 말은 그런 '현장 의식'을 보여준다. 정부와 정치권이 앞장서고, 구호와 슬로건이 앞서는 우리와 달리 일본에선 '조용한' 중산층 살리기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특별취재팀

◆ 특별취재팀 = 김정수 경제연구소장, 오대영.남윤호.박소영.이승녕 기자, 김현기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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