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 · 일의 외교적 합의, 얻은 것과 남은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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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하지만 "이번 사태는 넘겼지만 마음은 더 무겁다. 본격적 싸움에 대비해야 한다"는 유명환 차관의 말처럼 우리의 마음은 결코 가볍지가 않다. 명명백백한 우리 영토에 대한 일본의 트집에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격분하며, 일본에 대한 악감정을 키워야 하는지 답답해하는 분위기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문제에 만감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중국의 반응이 '일본이 시종 주도권을 쥐었다'고 나오는 것도 우리를 착잡하게 한다.

일부에서는 이 기회에 독도에 대한 조용한 외교를 포기하고 보다 더 공세적 정책으로 선회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또 EEZ의 기점을 독도로 할 것임을 즉각적으로 선언하고 신 한.일어업협정을 폐기할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번 문제가 표면적으로는 EEZ 경계 획정에 대한 문제의 모습을 띠지만 결국은 독도의 영유권 문제와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 정부가 어떻게 이 문제에 주도권을 쥐고 풀어 나가느냐가 중대한 과제로 남게 됐다.

독도문제는 넓게 보면 역사인식의 문제다. 101년 전 제국주의 일본의 야욕에 첫 번째로 강탈당했던 우리 땅이 바로 독도다. 그런데도 일본은 세계와 이웃에 엄청난 해악을 끼친 제국주의 시절의 역사와 교훈을 망각한 채 그때 강탈했다가 한국이 되찾은 한국 영토에 대해 여전히 억지를 부리고 있다. 게다가 교과서 검정을 빙자해 독도가 마치 자국 영토 회복의 대상인 양, 어린 학생들에게까지 왜곡 교육하기를 강요하고 있다.

한국민은 독도에 대한 영토 주권 침탈 기도에 대해선 어떠한 타협도 용납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한.일 간 우호를 바다에 침몰시킬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과 일본은 동북아시아에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핵심적 가치를 공유한 핵심 우방이다. 지리적.역사적으로도 떼려야 뗄 수가 없다. 현재 한.일 두 나라 간 경제와 문화, 인적 교류의 상호 의존과 규모는 이런 갈등과는 거리가 멀다. 이런 우호와 협력의 기운을 북돋아도 모자랄 시기에 우방의 영토에 대해 비이성적 행동을 반복하고 한국민의 가슴에 불신과 증오를 심는 일본의 행태는 평화를 사랑하는 대다수 일본인의 정서와도 맞지 않는다고 우리는 확신한다. 더군다나 지금과 같은 탈냉전의 시기에, 21세기 동북아의 새로운 평화 번영과 화해 협력의 시기를 선도해야 할 두 나라다.

그런데도 이런 갈등이 불거지고 우호 협력의 분위기를 하루아침에 삼킬 정도로 한국민의 감정을 격화시키는 일이 재발한다면 이는 한국과 일본, 그리고 동북아뿐 아니라 세계 전체의 평화에 대한 중대한 문제다.

일본은 세계에서의 역할을 거론하기에 앞서 이웃과 아시아를 경시하고, 왜곡된 역사관에 사로잡혀 한.일 우호를 바다에 침몰시키려는 일부 망동적 정치가들의 발호를 억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