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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뜩이나 무기력한 증시 '수면제'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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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고유가로 인해 소비자물가가 오르고 있다는 미 연방제도이사회(FRB)의 분석이 세계 각국 증시에 충격을 주고 있다. 미국이 정책금리를 단번에 큰 폭으로 올릴수도 있다는 우려에서다.

20일 미 뉴욕증시의 다우존스 지수는 전날보다 115.05포인트(1.14%) 내린 10012.36에 마감해 1만선이 위태로운 상황이다.

이 여파로 21일 종합주가지수도 오전 한때 920선이 허물어지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과거 미국이 금리를 적극적으로 올렸을 때는 신흥시장의 유동성이 축소되면서 국내 증시도 약세를 보였다"며 "증시가 당분간 무기력증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진단한다. 하반기에 내수가 회복된다 하더라도 미국경제의 성장이 지속되지 못하면 국내 증시도 발목이 잡힐 수 있다는 분석이다.

◆과거엔 어땠나=미국 등 선진국 금리가 지속적으로 올랐을 때를 보면 한국 증시는 대체로 하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가깝게 지난 1999~2000년에 그랬다. 당시 미국은 물가 불안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99년 6월부터 2000년 5월까지 6차례에 거쳐 정책금리를 4.75%에서 6.50%로 올렸다.

독일 등 선진국도 금리를 일제히 인상했다. 정보기술(IT) 산업의 거품 붕괴에 대한 우려도 금리 인상의 배경이 됐다.

선진국의 금리 인상이 잇따르자 주요국 주가는 2000년 4월부터 급락세로 돌아섰다. 한국 증시도 IT 거품붕괴와 맞물리면서 급락, 2000년말 종합주가지수는 1년전에 비해 50.9%나 하락했다.

1988~90년에도 미국.독일.영국 등이 잇따라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선진국 금리가 오르자 신흥시장에 투자했던 자금들이 본국으로 되돌아갔다. 89년 1000억달러 수준이었던 외국인 투자자의 순유입 자금 규모는 90년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향후 전망=미국의 금리인상 기조는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유가 상승도 그렇지만 부동산 버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속도인데 전문가들의 전망은 엇갈리고 있다. 전종우 현대증권 연구원은 "유가가 이달 중순 들어 하락해 물가 압력이 둔화되고 있다"며 "5월 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도 금리를 예전처럼 0.25%포인트 올릴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물가 안정에 못지않게 실물 경제의 위축을 걱정해야 하기 때문에 급격하게 금리를 올리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이우현 교보증권 연구원은 "FRB가 물가 상승 압력을 공식화한 만큼 급격한 인상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하반기 국내 경기가 아무리 좋아져도 미국 경기가 꺽이면 주가 상승은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학균 굿모닝신한증권 연구원은 "과거와 달리 중국 경제의 부상으로 수출선이 다변화됐고 국내 수급 여건이 좋은 점 등이 미국 금리 변동에 따른 영향을 줄일 수는 있겠지만 2분기까지는 증시에서 큰 폭의 반등을 기대하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세계적인 금리인상 추세에 따라 자금 흐름이 급변하는 등 국제 금융시장의 변동성 확대가 우려된다"며 "경제 주체들은 비상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대응책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한 외국계 증권사 지점장은 "미국과 일본, 한국 등 주요국의 주가가 상승 추세에서 이탈한 상황"이라며 "일단 낙관론을 접고 차분하게 국내외 증시 흐름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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