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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꿈꾸는 직장인? 하루 30분이라도 나만의 시간 가지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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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이라면 가슴 깊숙이 넣어둔 사표가 있게 마련이다. 사표를 쓰고 싶은 이유는 각양각색이지만, 문득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똑같은 일상에 대한 회의가 들 때면 가슴 깊이 넣어뒀던 사표를 만지작거리게 된다.

사물인터넷(IoT)을 활용한 가정용 채소 재배기를 개발한 '에이아이플러스'(AI Plus) 권오용(41) 대표도 그랬다. 삼성전자에 14년간 몸담았던 권 대표는 지난달 말 사표를 내고 퇴사했다. ‘뻔한 남의 일’ 대신 ‘주도적인 내 일’을 하기 위해서다.

권 대표는 “입사 8년 차 때 문득 ‘이렇게 짜인 데로만 살아서는 내 인생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내 일을 하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고 이제 준비가 되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에이아이플러스 권오용 대표가 사물인터넷(IoT)을 활용한 가정용 채소재배기인 플랜트 박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에이아이플러스 권오용 대표가 사물인터넷(IoT)을 활용한 가정용 채소재배기인 플랜트 박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삼성전자는 2015년부터 사내 창업 지원 프로그램인 C랩을 운영하고 있다. 매년 직원들이 창업 아이템 500~800건을 접수하면 크게 4단계를 거쳐서 최종 10여 건을 선정한다. 이 중에서 1년간의 연구 기간을 거쳐 실제로 창업에 성공하는 프로젝트는 80% 정도다.

권 대표는 3전 4기로 지난해 C랩 수행과제로 당첨됐다. ‘아파트 층간 소음 없애는 기기’, ‘고효율, 저오염 스토브’ 등으로 도전했다가 1단계도 통과하지 못하고 고배를 마셨다. IoT를 활용한 가정용 채소재배기인 ‘플랜트 박스’는 당시 선행개발팀이었던 최선묵(40) 에이아이플러스 공동대표와 함께 준비했다.

소형 냉장고 크기의 플랜트 박스는 채소를 수경 재배 방식으로 알아서 키운다. 작은 스마트 캡슐에 원하는 채소의 씨앗을 심으면 플랜트 박스가 물의 양, 햇빛 역할을 하는 식물생장 전용 LED는 물론 온도‧습도 등도 알아서 조절해 자동으로 재배한다.

진행 과정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으로 확인할 수 있다. 권 대표는 “농약 한 방울 치지 않은 채소를 가장 신선한 상태로 먹을 수 있다”며 “이보다 더 안전하고 건강한 먹거리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권 대표는 2004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대부분의 시간을 무선사업부에서 보냈다. 대학에서 전파공학을 전공한 그는 스마트폰 ‘갤럭시’ 개발의 중심에 있었다. 슬라이드폰(SGH-E800)부터 갤럭시S 시리즈가 그의 손을 거쳤다.

당시 삼성전자 무선사업부는 폭풍 성장했고, ‘갤럭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스마트폰이 됐다. 권 대표는 “야근도 참 많이 했지만, 지인들이 내가 만든 스마트폰을 쓰며 '제품 좋다'고 할 때면 정말 보람 있었다”고 회상했다.

보람보다 회의가 커진 것은 2012년 어느 날이었다. 권 대표는 “평소와 같이 퇴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피로감이 몰려오면서 삶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날부터 권 대표는 하루에 1시간씩 ‘나를 위한 시간’을 만들었다. 현재 10살인 큰 아이가 3살, 8살인 둘째 아이가 1살 때였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잠든 후를 노렸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야근을 하게 되거나, 일찍 퇴근해도 아이들과 함께 잠들기 일쑤였다.

권 대표는 점심시간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권 대표는 “하루 중에 유일하게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시간이 점심시간이었다”며 “식사는 간단히 먹고 1시간 동안 운동도 하고 평소 관심 있었던 분야에 대해 공부도 하며 지냈다”고 말했다.

플랜트 박스 안에 있는 스마트캡슐에 씨앗을 심으면 알아서 물이나 빛의 양, 온도, 습도를 조절해서 자동으로 채소를 재배한다. [사진 에이아이플러스]

플랜트 박스 안에 있는 스마트캡슐에 씨앗을 심으면 알아서 물이나 빛의 양, 온도, 습도를 조절해서 자동으로 채소를 재배한다. [사진 에이아이플러스]

업무에 대한 변화도 꾀했다. 권 대표는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쏟아붓는 업무에 대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마침 회사에서 진행했던 창의혁신전문가 양성 교육(10개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그 교육 과정에서 최 대표도 만났다. 권 대표는 “변화를 원했지만, 막연히 두려운 마음도 있었다”며 “늘 같은 업무만 하다가 새로운 지식, 새로운 사람을 만나니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가족의 반대도 풀어야 할 숙제였다. 1년간 조금씩 설득했다. 꽃에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던 권 대표가 휴일이면 농업 기술을 익히러 다니고, 집에서 갖가지 수경 식물을 재배하고, 퇴근 후에는 새벽까지 공부하는 모습에 가족의 마음도 돌아섰다. 권 대표는 “8살, 10살 자녀가 있는 홀벌이 가정인데 창업을 하겠다고 하니 불안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하지만 누구보다 가장 불안해했던 나 자신을 설득하고 나니 주변 사람은 자연스레 따라와 줬다”고 말했다.

권 대표는 2년 안에 제품 상용화에 나설 계획이다. 권 대표는 "우선 30대 이상 프리미엄 1인 가구, 100만명에 이르는 채식주의자, 안전한 먹거리에 관심 많은 주부 등이 주요 타깃이 될 것"이라며 "국내를 넘어 해외시장까지 고려하고 상용화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권 대표는 직장인들에게 짧은 시간이라도 매일 ‘나를 위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나를 위한 시간이 생기면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되고, 좋아하는 일은 오랜 시간 지속하게 되고, 오래 하다 보면 해당 분야에 대해 잘 알게 되고 새로운 길이 열린다는 것이다. 권 대표는 “대부분 직장인이 부모, 남편(아내), 자식 등 너무 많은 역할을 한꺼번에 하며 살아간다”며 “하루 24시간 중에 단 30분이라도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쌓이면 큰 변화의 밑거름이 된다”고 말했다.

일단 좋아하는 일이 있다면 관련 기술을 배우라는 조언도 덧붙였다. 예컨대 손톱에 매니큐어를 칠하기를 즐긴다면 네일아트를 배우는 식이다. 권 대표는 “특히 창업을 꿈꾼다면 머릿속에 있는 아이디어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하는데 관련 기술을 익히면 기회를 얻기 수월해진다”고 말했다.
최현주 기자 chj8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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