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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마운드의 에이스, 털보 닥터K 샘슨

중앙일보

입력

샘슨의 승리를 축하하는 한화 한용덕 감독(왼쪽). [연합뉴스]

샘슨의 승리를 축하하는 한화 한용덕 감독(왼쪽). [연합뉴스]

프로야구 한화 더그아웃엔 두 명의 털보가 있다. 한용덕 한화 감독과 키버스 샘슨(27·미국)이다. 올시즌 한화의 도약을 이끌고 있는 한 감독은 올시즌 끝까지 수염을 기르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샘슨이 끝까지 기를지는 미지수다. 이유는 무엇일까.

샘슨은 키 1m88㎝, 102㎏의 당당한 체구다. 큰 눈에 수염까지 기르고 있어 강인하게 보인다. 샘슨은 올 시즌 세 번째 등판 이후 부터는 아예 면도를 하지 않고 있다. 3경기에서 샘슨이 거둔 성적은 나빴다. 3경기에서 볼넷 14개를 쏟아내며 13과3분의2이닝 동안 16실점(14자책)을 기록했다. 당연히 승리는 따내지 못했고 3패만 떠안았다. 공교롭게도 수염을 기르기 시작한 뒤부터 샘슨의 성적은 좋아졌다. 12일 KIA전에서 승리투수가 된 이후 상승세를 탔다. 14경기에서 거둔 성적은 5승5패, 평균자책점 4.06. 샘슨은 "(징크스가 돼서)이제 수염을 밀 수 없게 됐다"고 웃으며 "시즌 끝날 때까지도 면도를 하지 않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개막 전 한용덕 감독은 샘슨을 두고 "내가 본 투수 중 최고"라며 극찬했다. 샘슨은 한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고 있다. 시속 150㎞의 강속구로 타자를 윽박지른다. 여기에 체인지업, 커브, 슬라이더, 포크볼까지 다양한 구종을 구사한다. 탈삼진 능력은 단연 리그 최고다. 103개를 잡아내 린드블럼(두산·97개), 소사(LG·95개), 양현종(KIA·86개)을 제치고 1위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정작 샘슨은 탈삼진 타이틀에 관심이 없다. 그는 "내겐 이닝이 더 중요하다. 이닝을 많이 소화하면 삼진도 자연스럽게 늘어난다"고 했다. 샘슨은 마이너리그 시절인 2013년 28경기(27선발)에 나가 141과3분의1이닝을 던진 적이 있다. 그는 "올해 최소 목표는 150이닝이다. 아프지 않고 30경기에서 5이닝씩 던지면 된다"고 했다. 물론 올시즌 샘슨의 페이스는 이보다 더 좋다. 14경기에서 82이닝을 던졌고, 산술적으로 180이닝 정도가 가능하다.

샘슨이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팀 성적이다. 그는 "플레이오프가 최우선이다. 삼진왕을 차지하지 못해도 포스트시즌에 가는 게 더 낫다"고 했다. 포스트시즌 이야기를 꺼낸 건 한화 팬들이 얼마나 가을 야구에 목마른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화가 몇 년 동안 포스트시즌에 가지 못했는지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샘슨은 "알고 있다. 10년이다. 이번에 제이슨 휠러, 제러드 호잉, 그리고 나까지 셋이 새롭게 들어와서 팀이 포스트시즌에 오른다면 정말 멋질 것"이라고 했다. 포스트시즌에 대한 자신감도 있다. 샘슨은 "빅리그에선 포스트시즌 경험이 없지만 마이너리그에선 두 개의 우승반지를 얻었다. 하위 싱글A와 더블A에서 포스트시즌에 나가 우승했다. 성적도 좋았다"고 했다.

메이저리그 신시내티에서 뛰던 시절의 샘슨 [AFP=연합뉴스]

메이저리그 신시내티에서 뛰던 시절의 샘슨 [AFP=연합뉴스]

사실 샘슨은 한화에 더 빨리 올 수도 있었다. 한화는 샘슨이 2015, 16시즌 신시내티 레즈에서 뛸 때도 접촉했다. 석장현 한화 운영팀장은 "2년 전에도 샘슨 영입을 시도했다. 지금(총액 70만 달러)보다 제시한 조건도 좋았다. 하지만 당시엔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를 오갔기 때문에 거절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샘슨은 지난해 줄곧 마이너리그에서만 머물렀고, 야구를 그만 둘 생각도 했다.

그러던 차에 한화가 다시 샘슨에게 한국행을 제안했다. 석 팀장은 "샘슨은 머리가 좋은 친구다. 야구를 그만두고 대학을 갈 생각이라고 들었다. 그러던 차에 에이전트를 통해 만날 기회가 생겼고. 한국 식당에서 만났다. 한국 음식이 처음이라면서도 삼겹살을 김치에 싸먹더라. 적응력이 좋고, 인성도 훌륭해 계약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실제로 샘슨은 팀에 완벽하게 녹아들었다. 지난 13일 고척 넥센전을 앞두고 가진 에피소드가 대표적이다. 샘슨은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는 한용덕 감독에게 기자처럼 "어떻게 그렇게 포커페이스를 잘 유지하느냐"고 질문했다. 한 감독은 웃으며 "나도 투수 출신이라 그렇다"고 대답했다. 20대 선수들이 많은 투수들과는 스스럼 없이 장난을 치거나 기술적인 이야기를 나눈다. 샘슨의 전담포수 지성준은 "주로 영어로 대화하지만 샘슨이 편하게 대해주기 때문에 어렵지 않다"고 했다.

한국 야구를 배우는 것에 대해서도 전혀 거리낌이 없다. 샘슨은 캠프에서부터 송진우 코치의 조언을 받아들여 너클커브의 포인트를 조정했다. 시즌 초반 부진했을 땐 스탠스를 바꿔보는 게 어떻냐는 조언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미국에서 던지지 않던 포크볼도 쓰기 시작했다. 샘슨은 "미국에선 스플리터를 거의 쓰지 않고, 나도 그랬다. 김해님 코치와 장난 삼아 던져봤는데 '좋다'고 하길래 연습했고, 이젠 실전에서도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샘슨은 이따금 대전구장에선 타격 연습을 하기도 한다. 힘이 좋아 담장 너머로도 타구를 날려보냈다. 빅리그에선 홈런 기록이 없지만 마이너리그에선 1할대 타율을 기록했다. 샘슨은 "내셔널리그 팀에서 뛰어 연습을 곧잘 했다. 한국에선 가끔 한다. 내가 생각해도 힘은 좋다"고 했다. 채종국 한화 수비코치는 샘슨에게 "대타로 준비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농담 삼아 이야기도 했다. 샘슨은 "나는 준비되어 있다. 번트도 미국에서 많이 해서 자신있다"고 했다.

샘슨의 아내 헤일리는 소프트볼 코치다. 같은 운동선수 출신이라 남편을 잘 이해하고 대화도 자주 나눈다. 샘슨이 시즌 초반 힘들어할 때도 한국에 와 힘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미국으로 돌아간 상태다. 7월 말에 샘슨 부부의 첫 아이(아들)가 태어나기 때문이다. 샘슨은 "아이가 커서 예정일보다 빨리 태어날 것 같다. 팀과 상의를 한 뒤 선발 등판 이후 출산을 보기 위해 미국에 다녀올 생각"이라고 했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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