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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파벌정치 막 내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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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일본 정치를 상징해 왔던 '파벌 정치'가 급속히 붕괴되고 있다.

오는 20일 치러지는 자민당 총재 선거를 계기로 파벌의 와해가 확인되기 시작했다.

소속 의원 1백명으로 자민당 내 최대 파벌인 하시모토(橋本)파의 붕괴가 도화선이었다.

하시모토파는 1972년 다나카파를 만들며 파벌정치를 시작한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총리에서 비롯,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전 총리.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전 총리.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로 이어지는 자타가 공인하는 자민당 내 '본류'세력이다.

'철과 같은 단결'이 파벌의 표어다. 82년 총재선거 당시 자파에서 후보를 안 내고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를 민다는 어려운 결정을 했을 때도 "오야붕(다나카)이 오른쪽이라면 오른쪽이고, 왼쪽이라면 왼쪽이다"(가네마루 신 전 부총재)는 한마디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는 일화를 갖고 있는 조직이다.

그런데 이달 초 하시모토파 중 아오키 미키오(靑木幹雄) 참의원 간사장이 소속 의원의 거의 절반인 42명을 거느리고 그동안 '적군'취급하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총리를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하시모토파가 붕괴하기 시작한 것이다.

반(反)고이즈미 세력의 선봉장인 노나카 히로무(野中廣務) 전 간사장이 거세게 반발하며 조직을 장악하려 했지만 한번 분열된 조직은 재건되지 않았다. 결국 노나카 전 간사장은 지난 10일 전격적으로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일본 정계에서는 "하시모토파의 균열, 그리고 이에 밀려 노나카가 정계은퇴를 선언한 것은 30여년 동안 이어진 일본 파벌정치의 종언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소속 의원 51명으로 일본 정가의 제4대 파벌인 호리우치(堀內)파도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 호리우치파는 고가 마코토(古賀誠) 전 간사장이 중심이 돼 호리우치 미쓰오(堀內光雄) 파벌 대표를 고이즈미에 대항하는 총재후보로 옹립하려 했으나 정작 호리우치 대표는 갑자기 "난 고이즈미를 지지한다"며 등을 돌리고 말았다. 결국 호리우치파는 "각자 판단에 맡긴다"는 어정쩡한 결론을 내리며 주저앉아 버렸다.

이 같은 자민당 내 파벌 붕괴의 흐름에 정치인 중 가장 파벌정치에 능숙했다고 손꼽히는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조차 "시대가 (파벌정치의) 자민당을 무너뜨렸다"고 말하기에 이르렀다. 일본 정치권에서는 파벌정치 붕괴의 가장 큰 이유로 선거구제의 변경을 꼽고 있다.

당 내에서 복수 후보가 공천되던 기존 중선구제에서는 파벌이 큰 힘을 휘둘렀지만 소선구제로 바뀌면서 공천권과 선거자금을 한 손에 쥐게 되는 당 집행부의 힘이 훨씬 커졌기 때문이다.

또 조만간 치러질 중.참의원 선거에서 "일단 내가 이기고 봐야…"라는 현실적 이유도 있다. 의원들 입장에선 제 1야당인 민주당과 자유당이 합당을 통한 바람몰이를 하려는 상황에서 대국민 인기가 높은 고이즈미 총리를 '간판'으로 싸워야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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