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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후 적극적 정국주도 구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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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을림픽개막을 목전에 두고 노태우대통령이 야권3당의 총재들과 개별연쇄회담을 가진데 이어 1일에는 11월에 있을 자신의 정상외교 계획을 발표했다.
이 두가지는 사안의 성격로 봐 별개의 것이지만 올픽이후 정국운용에 관한 노통령의 구상을 엿볼수있는 소재가 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
말하자면 노대통령이 올림픽이후를 대비해 안팎으로 대충 어떤 방향에서 일을 준비하고 있는가를 짐작할 수 있게하기 때문이다.
올림픽이후 직면할 새로운 정치 환경에 대처함에 있어 노대통령은 국내정치문제는 전통적인 「군림하는 대통령」의 자리에서 한발짝 내려와 여소야대하의 정치척 당세들과 직접 상대해 해결하되 대신 외교· 안보면에서 대통령의 고유역할을 적극 활용, 3김의 맞상대가 아닌 국정책임자로서의 위치를 저절로 부각되게 한다는 심산인것 같다.
노대통령은 최근 측근이나 여권인사들에게 대통령선거때의 기분으로 내가 다시 나설 수밖에없다』는 말을 자주 하고 있다. 이는 자신이 미처 국정운용의 전략적 목표를 확고히 세우지 못하고 보낸 지난 6개월여의 정치가 상당한 「허점」을 노출했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이며 동시에 새로운 각오를 표명한 것이다.
노대통령은 각 분야의 민주화를 최우선 가치로 내세운 지난 6개월이 권위주의를 청산하고 새로운 국민통합을 시도함에 있어 큰 방향에서는 잘 되어가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는 그 과정에서 나타난 전환기적 부작용들이 무조건 참고 시간만 끌면 해결될 정도를 넘어 자칫 민주화의 큰 흐름을 손상시킬 정도로까지 치닫고 있는 것 또한 직시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무절제한 욕구의 일시적 분출, 그로 인한 공권력의 무력화, 혼란을 틈탄 좌경·용공세력의확산, 물가·경제안정의 흔들림등을 스스로 경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태도를 바꾸어 공권력으로 모든걸 다스릴수도 없고 그래봐야 이미 효과를 얻기 어려운 국면이 조성되고 말았다. 특히 헌법상 대통령의 권한이 줄어든데다 여소야대의 장벽이 가로막고 있어 대통령이 과거의 대통령식으로 해서는 아무 일도 해결하기 어렵게 되어있는 것도 현실이다.
게다가 1인체제의 상명하달에 길들여진 민정당은 아무리 독려해도 자생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고 인물과 응집력 결핍으로 3김의 야당을 상대함에 있어 점점 왜소해져만가는 존재가 돼버린 실정이다.
이런저런 사정을 볼때 노대통령이 옛날과 다른 방식으로 직접 나서지 않을수 없는 형편임은 쉽게 알수있다.
노대통령이 또 3김을 직접 상대하는 것은 3김의 이해와도 상당부분 맞아떨어져 이번 개별단독회담이 순탄한 대좌가 될수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3김씨 역시 셋이 합하면 「야대」가 될 수 있지만 「취기」를 노리는 치열한 경쟁관계로 보아 언제든지 떨어질수 있고 홀로 서면 각기 「여대」를 상대하지 않을수 없는 형편이다.
또 국회에서 이따금 야대가 되어 대항하지만 대권을 생각하면 단임으로 끝날 노대통령은 이미 3김의 라이벌은 아니며 자신들의 정치적인 키를 다른 두김씨보다 높이는데 이용하거나 도움을 청해야할 상대가 될수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배경에서 이번 단독연석회담의 경과와 내용을 보면 무리없이 설명된다. 노대통령은 이같은 회담을 앞으로 자주 갖는다는 것을 전제로 3김씨와 인간적인 신뢰관계를 맺는데 가장 역점을 두었다. 그는 과거 정치의 불행이 지도자간의 불신에 기인한바 크다고 믿기 때문에 특히 김대중씨와의 신뢰회복에 신경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문에 대통령과 3김씨간에는 발표된 내용보다 솔직한 사담이 더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과거 여야영수회담처럼 막후거래의 의심을 받지않는 대화전통 수립에 양측 모두 진지한 노력을 기울였다.
대화를 마친 양측 모두『유익했다』고 말하고 앞으로의 대화가능성에 깊은 신뢰를 보인것은 정치행태면에서 하나의 진전이라고 평가할만 하다.
또 양측은 몇몇 정점에 관해 의외로 순탄하게 합의하거나 의견접근을 보여 가시적성과도 거두었다. 올림픽의 초당적· 범국민적 지원은 당연하다하더라도 『군의 정치적 중립선언검토와 구속자석방 약속』(김대중), 『개헌논의 부원과 정권타도 아닌 중간평가 실시』(김영삼), 『좌경· 폭력, 체제전복세력에 대한 단호한 대처』(김종필)등은 앞으로의 정국운용에 영향을 줄수있는 합의들이다.
반면 5공비리와 전두환전대통령 처리문제에 있어서는 3김총재가 『철저한 조사및 단절을 전제로 한 관용』을 주장한데 비해 노대통령은 『조사에 성역을 두지 않겠다』는 원론적 대답만을 주어 올림픽이후 5공비리에 승부수를 걸려는 야당과 5공비리로부터의 조속한 탈출을 기도하는 여당간에 시각차가 있음을 노출했다.
한편 노대통령이 우리와는 별로 문제가 없는 아시아-태평양 5개국 순방을 11월로 잡은것은 5공비리· 광주특위의 활동이 피크에 달할때 한발짝 떨어져 대통령만이 할수있는 외교업무에 몰두함으로써 선진국형정치를 지향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기 위한 측면이 있다.
민주화의 기치를 내 걸고 올림픽을 성공시킨 대통령이 달라진 국가적 위상을 갖고 방문외교를 전개하는 것은 국제사회에서의 비중을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높여줄 것이 예상되며 특히 아시아-태평양시대(팍스-패시피카)의 주역으로서 부상될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국내정치의 불은 3김씨와 더불어 직접 끄고 정상외교의 여세를 몰아 내년초 중간 평가를 받음으로써 명실상부한 「노태우시대」 를 자리잡겠다는것이 현 단계에서 노대통령정치구상의 큰줄기인것 같다.

<전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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