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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의회 북·미 회담 혹평 “독재 정권에 정당성 부여”

중앙일보

입력

12일 북·미 정상회담 합의문에 서명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12일 북·미 정상회담 합의문에 서명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6·12 북·미 정상회담을 두고 미국 정계의 싸늘한 반응이 잇따르고 있다고 미국의소리(VOA)가 13일 보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이 성공했다고 주장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실속을 챙긴 쪽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란 비판이다.

 미 의회 한국연구모임의 공동 의장인 아미 베라 민주당 하원의원은 VOA 인터뷰에서 “북·미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여전히 미국의 신뢰를 얻지 못했다. (미국은) 체제 보장 등 섣부른 양보나 보상을 제공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미 베라 민주당 하원 의원. [중앙포토]

아미 베라 민주당 하원 의원. [중앙포토]

 베라 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 만난 것은 긍정적인 움직임”이라면서도 “(북·미 협상은) 긴 과정이 될 것이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보다 신중해야 한다고 당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북한은 공동성명을 채택하며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협력할 것이라고 했지만 어떤 구체적 조치를 취할지는 지켜봐야 한다”며 “첫 단계인 검증조차 이뤄지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베라 의원은 “북한이 실제로 비핵화를 향해 구체적이고 검증 가능한 조치를 취할 때 비로소 미국은 제재 완화나 한·미 연합훈련 중단 등을 얘기할 수 있다. 그 전까지 미국은 그동안 해온 모든 것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 후 “북한과 협상 중에 한·미 연합훈련은 없을 것”이라고 밝힌 것을 문제 삼은 것이다.

 이어 베라 의원은 “(이번 공동성명엔) 구체적인 내용이 많이 결여됐다. 트럼프 행정부는 주한미군 철수를 비롯해 너무 빨리 북한에 무언가 약속하는데 신중해야 한다”며 “(구체적 비핵화 조치로) 북한은 핵 사찰을 허용해야 하며 특히 국제원자력기구(IAEA) 혹은 미국의 직접 사찰을 허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화 “비핵화 시작” 민주 “독재에 정당성”

 미 의회 내에서도 북·미 회담에 대한 평가가 엇갈렸다고 VOA는 전했다. 야당인 민주당 의원들이 “독재 정권에 정당성만 부여한 처참한 실패”라고 규정한 반면, 일부 공화당 의원은 “비핵화를 향한 긴 여정의 시작”이라고 평가했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미국이 이번 회담에서 얻은 것은 모호할뿐더러 검증 가능하지도 않다”며 “반면 북한이 얻은 것은 구체적이고 지속 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김 위원장의 회담 요청을 수락함으로써 트럼프 대통령은 잔인하고 억압적인 정권에 국제적인 정당성을 부여했다”며 “미국의 성조기와 북한의 인공기가 나란히 놓인 건 북한이 국제사회에 속한다는 명확한 신호를 보낸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또 “북한이 나라 안팎에서 저지른 죄가 용서받기 시작한다는 신호라고도 볼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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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 상원 외교위 동아태소위 민주당 간사인 에드워드 마키 의원 역시 “이번 공동성명은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정의조차 설명되지 않았다. 허점이 너무 커 북한의 핵 미사일이 뚫고 지나갈 수준”이라고 비난했다.

 반면 미치 맥코넬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는 “이번 회담은 중요한 협상의 역사적인 첫 단계였다”며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미국의 목표인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에 계속 힘을 실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연합훈련 중단’ 발언, 북·미 신뢰 구축용” 

 워싱턴 외교안보 전문가들 역시 “이번 공동성명은 과거 북한과의 합의에 못 미친다”고 입을 모았다고 VOA는 전했다.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부 북핵 특사는 VOA와 인터뷰에서 “북한의 핵 미사일 포기 시기와 방식이 (공동성명에) 명시되지 않았다”며 “한국과 일본, 미국에 대한 탄도미사일 위협을 중단하겠다는 북한의 약속을 기대했지만 이번 회담에선 그런 대답은 듣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다만 그는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의 ‘장황한 설득이라도 전쟁보다는 낫다’의 발언을 언급하며 “북·미 정상 간의 첫 만남은 역사적 상징성을 갖는다”고 말했다.

로버트 갈루치 전 미 국무부 북핵 특사. [중앙포토]

로버트 갈루치 전 미 국무부 북핵 특사. [중앙포토]

 데이비드 맥스웰 한미 연구소 선임연구원 역시 “이번 회담의 승자는 김정은”이라며 “(그는) 여전히 핵무기를 보유하면서도 적법성과 존중을 얻었다. 잠재적으로는 미국의 군사훈련까지 중단하게 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조셉 디트라니 전 6자회담 미국 측 차석대표는 “한미 연합훈련을 중단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북한과의) 신뢰 구축의 일환이라 아무런 문제가 없다. 협상이 긍정적 방향으로 진행되지 않으면 언제든 훈련을 재개할 수 있다”고 밝혔다고 VOA는 전했다.
 조진형 기자 enis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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