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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참모 "지옥엔 트뤼도 자리 있다"··· 열받은 캐나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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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캐나다의 쥐스탱 트뤼도 총리에 대한 인신공격과 함께 주요 7개국(G7)의 공동선언문을 백지화하자 미국과 캐나다의 끈끈한 우방 관계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이틀째 트뤼도 총리에 인신공격 #캐나다 국민, 트뤼도 총리 지키기 #"트럼프 변덕, G6에게 차가운 소나기" #

트럼프 대통령이 트뤼도 총리에 대한 분노를 표시하며 공동성명 채택을 거부한 다음날인 10일(현지시간) 이번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참모들이 트뤼도 총리 비방에 나서면서 우방 해체 분위기를 부채질했다.

9일(현지시간) 이틀간의 일정을 마치고 폐막한 G7 정상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개별 면담을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G7 회의장을 떠나 싱가포르로 향하던 기내에서 트뤼도 총리의 기자회견 내용에 발끈했다.[로이터=연합뉴스]

9일(현지시간) 이틀간의 일정을 마치고 폐막한 G7 정상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개별 면담을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G7 회의장을 떠나 싱가포르로 향하던 기내에서 트뤼도 총리의 기자회견 내용에 발끈했다.[로이터=연합뉴스]

래리 커들로 미국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이날 CNN 방송 ‘스테이트 오브 더 유니언’에 출연해 “트럼프 대통령은 캐나다 총리가 자신을 압박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라면서 “우리는 좋은 의도를 가지고 공동 성명에 합의했다. 그래놓고 (트뤼도가) 그러면 안 되는 것 아닌가? 그것은 배신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트럼프가 G7 회의를 마치고 싱가포르로 출발한 후 트뤼도 총리가 별도 기자회견을 열어 미국의 철강ㆍ알루미늄 관세 부과가 “모욕적”이라며 성토한 것을 이른다. 커들로는 “트뤼도 총리는 우리 등에다 칼을 꽂은 것과 같다”며 “트럼프가 그(트뤼도)의 아마추어 같은 행동에 되갚음한 것은 잘 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은 한발 더 나갔다. 나바로 국장은 이날 ‘폭스 뉴스 선데이’에 출연해 “지옥에는 트럼프 대통령과 ‘배신의 외교’를 펼치고 등 뒤에서 칼을 꽂으려는 외국 지도자를 위한 특별한 공간이 있다”면서 트뤼도 총리를 겨냥했다.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 [중앙포토]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 [중앙포토]

‘배신’에 ‘지옥’까지 운운하는 트럼프 참모들의 발언에 캐나다 국민이 공분하며 트뤼도 총리 지키기에 나섰다.

전 주미 캐나다 대사를 지낸 프랭크 맥케나는 “이같은 발언은 지극히 비외교적이고 적대적”이라며 “모든 캐나다 국민이 이같은 위협에 맞서고 있는 총리를 지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같은 경멸 섞인 발언을 일삼는 친구는 친구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G7에 속한 국민들이 생각하는 미국에 대한 선호도는 계속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트뤼도 총리의 정적이라고 할 수 있는 더그 포드도 “우리 모두 총리와 어깨동무를 하고 맞서야 한다”는 트윗을 올렸다. 보수당 경선에서 트뤼도에게 패배한 스티븐 하퍼는 이날 폭스뉴스에 출연해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인들이 좀더 좋은 무역환경을 만들려는 입장을 이해한다”면서 “그러나 이번엔 타깃이 잘못됐다”고 밝혔다.

G7 국민이 생각하는 미국에 대한 선호도가 점점 떨어지고 있다. [자료=퓨 리서치센터]

G7 국민이 생각하는 미국에 대한 선호도가 점점 떨어지고 있다. [자료=퓨 리서치센터]

정작 당사자인 트뤼도 총리는 별도의 반박성명을 내지않고 전날 G7 정상이 채택한 공동성명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재천명했다.

크리스티아 프릴랜드 캐나다 외교장관은 이날 기자들에게 “캐나다는 인신공격으로 외교를 하지 않는다”고 대응했다. 그는 “캐나다는 미국의 관세에 절제되고 상응하는 방식으로 보복할 것”이라면서도 “캐나다는 항상 대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과 프랑스도 트뤼도 총리에 힘을 실어줬다.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은 이날 “몇 초 만에 280자의 트윗으로 신뢰를 파괴한 것”이라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공동성명 거부를 비판했다. 프랑스 대통령실 관리도 “국제 협력은 분노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진지해지자”며 결속을 강조했다.

도날트 투스크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나바로의 ‘지옥’ 발언을 겨냥해 “천당에 트뤼도를 위한 특별한 자리가 있다”며 트뤼도 총리의 완벽한 G7 회의 개최에 감사를 표했다.

빈센테 폭스 전 멕시코 대통령은 트윗을 통해 “우리(멕시코와 캐나다) 모두 인접국이자 동반자이지만 미국 대통령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그(트럼프 대통령)는 미국 건국자의 꿈이나 위대한 국가로서 진정한 가치, 믿음을 대변하지 않는다”고 절하했다. 그는 트뤼도 총리에 일체감을 표명하면서 미국인들에게 “트럼프를 좇아 언제까지 나머지 세계를 적대시할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공동성명 파기는 이번 G7 회의에 참석한 외교관들의 혀를 내두르게 만들었다는 후문이다. 유럽의 고위 외교관 A씨는 “트럼프 대통령이 성명서 초안에 관여했는데, 나중에 이를 지지하지 않기로 한 그의 결정은 완전히 의외였다”면서 “우리를 위한 차가운 소나기였다”고 말했다고 WSJ이 전했다.

G7 정상회의에서 벌어진 전대미문의 사태로 인해 북대서양 동맹이 약해질 수 있다는 진단이 내려지고 있다. 존스홉킨스대 선진국제학부 교수이자 미 외교관인 다니엘 서워는 “트럼프 대통령은 정말 난파선을 만드는데 일가견이 있다”면서 “이번 손상이 얼마나 영구적인지 판단하기 어렵지만, 문제는 미국이 얼마나 불안정하며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을 많은 사람이 지켜보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에 따른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G7에 국한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에 G7이 주도하는 세계질서에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는 낙관적인 견해도 있다. 헤리티지 재단의 국가안보 및 외교정책 분석가인 제임스 카라파노는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의 안보 없이 유럽의 안보도 없다”면서 “G7 경제는 서로 얽혀있기 때문에 미국을 벗어나 독자생존하기 힘든 구조”라고 강조했다.

우방과 무역분쟁을 고집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10일(현지시간) 트윗.

우방과 무역분쟁을 고집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10일(현지시간) 트윗.

트럼프 대통령도 이같은 점을 협상카드로 활용중이다. 그는 이날 트위터에 “독일이 NATO에 GDP(국내총생산)의 1%를 지불하는데 비해, 우리는 GDP의 4% 이상을 쏟아붓고 있다. 우리는 재정적인 손해를 무릅쓰고 유럽을 지키고 있는데 결과는 불공정한 무역으로 돌아왔다. 변화가 오고 있다”고 밝혔다.

뉴욕=심재우 특파원 jw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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