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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전영기의 시시각각

누가 공론장을 더럽히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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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전영기
전영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민주주의는 어느날 갑자기 출현한 독재자의 비합법적 폭력성 때문에 붕괴되지 않는다. 히틀러 시대의 선전 책임자였던 괴벨스는 “나치는 독일 국민에게 어떤 것도 강요하지 않았다. 독일 국민이 나치를 선택했다”고 주장했다. 그의 발언은 나치의 전체주의적 일당독재가 국민 개개인이 동의한 민주적 선거로 탄생했다는 점에서 일말의 사실을 담고 있다. 히틀러의 나치당은 인류 역사상 가장 민주적인 정치체제였다는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합법적으로 등장했다. 공화국 창설 9년 뒤인 1928년 치른 선거에서 득표율 3%에 불과했던 나치당은 30년 18%, 32년 37%로 세력을 확장한 뒤 33년 선거에서 득표율 43%, 의석수 288석을 얻어 독일의 제1당으로 급부상했다.

여론조작과 선동은 민주주의의 적 #나치도 합법적인 선거로 출현했다

히틀러는 대공황, 대실업에 좌절하고 피폐해진 민심을 감성적으로 자극했다. 야당이 무력증에 빠진 상태에서 “나치의 목표에 개인과 기관이 협력해야 한다”는 이른바 협력정책을 관철시켰다. 교육·문화·종교계 저변에서 나치의 가치에 자신을 동조화하는 풍조가 유행처럼 번졌다. 폭력이 아니라 선전선동, 억압이라기보다는 여론조작이 주된 수단이었기에 겉으로 보면 평화적이고 자율적인 시민 동의에 의해 체제가 바뀐 것처럼 보였다. 의회가 입법권을 히틀러 내각에 넘기는 이른바 수권법(授權法)을 통과시키면서 바이마르 공화국은 무너졌다.

괴벨스의 선전론은 국민에게 ‘자발성의 환상’을 심어주고 ‘증오와 분노’를 조직하며 ‘희생양’을 만들되 ‘슬로건을 반복 사용’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공론장(公論場)에 거짓이 스며들어 조작과 왜곡이 일상화되면 어떤 진실도, 저항도, 견제도 허무해진다. 민주주의의 붕괴는 여론 형성의 실패에서 시작된다.

오늘날 한국의 민주주의 상태와 국민의 정치 수준을 나치를 부른 바이마르 공화국 말기와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다. 1987년 민주화 투쟁과 2016년 촛불집회는 그 어떤 독재자나 비상식적인 일당지배도 뒤집어 버리는 한국인의 민주성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많은 시민은 나치 시대 여론조작의 대상이기는커녕 1인 미디어 시대의 주인공으로 세상 여론을 이끌어 간다는 자부심이 충만하다. 그렇다 해도 공론장이 실패하면 민주주의가 안에서부터 금이 가 스스로 내려앉는다는 사실만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사실 한국의 공론장은 그리 건강한 편이 아니다. 드루킹 사건과 여배우 스캔들은 유력 정치인이 공론장을 오염시켰느냐 아니냐가 쟁점이다. 김경수 경남지사 후보에게 드루킹 사건은 어떤 허황한 사기꾼한테 재수 없이 뒤통수 한 방 맞은 불쾌한 에피소드일지 모른다. 하지만 민주주의 수호의 관점에선 진실과 동떨어진 여론 조작과 여론 선동이 대선 과정에 영향을 미쳐 공론장을 믿을 수 없게 만든 민주주의 파괴 사건이 아닐 수 없다. 허익범 특검의 “여론은 민주주의의 근간이다. 이를 왜곡하는 건 부정부패보다 더 큰 범죄”라는 표현은 정곡을 찔렀다. 이재명 경기지사 후보에겐 여배우와 부적절한 사생활이 있었느냐보다 모바일 공론장 막후에서 거짓과 은폐, 압력과 조작이 있었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공론은 화폐와 같다. 위조 화폐가 시장의 신뢰를 허물 듯 공론 조작은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약화시킨다. 공론장의 공기는 자유롭고 공정해야 한다. 다수의 억압으로 소수가 의사표시를 중단하거나(여론 선동) 부당한 힘의 작용으로 의견이 다르게 나타나는(여론 조작) 현상은 공론장이 오염된 징표다. 공론장을 더럽히는 사람은 민주주의의 적이다. 둑에 난 작은 균열은 확실하게 진단해 바로 막아야 한다. 둑이 무너지고 그럴 줄 몰랐다고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