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양성희의 시시각각] 방탄소년단이 바꾸는 세계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87호 34면

양성희 논설위원

양성희 논설위원

빌보드 앨범 차트 1위. 비록 1주 만에 순위가 내려앉긴 했지만, 지난주 1위 소식은 비현실적으로 여겨질 만큼 강렬했다. 지난달 빌보드 뮤직어워드에서 2년 연속 ‘톱 소셜 아티스트’ 상을 받을 때도 그랬다. 객석의 서구 관객들은 한국어 가사를 따라부르며 환호하고 울먹였다.

방탄 덕분에 자기 안의 편견을 #돌아보게 됐다는 미국 팬의 고백

알려진 대로 방탄소년단의 인기 뒤에는 ‘아미(army)’라는 글로벌 팬덤이 있다. 실제 방탄의 부대처럼 움직인다. 한국 아미가 해외 아미에게 한국식 팬문화를 퍼트렸다. 자발적으로 앨범과 음원을 사고, 밤새 스트리밍하면서 순위를 높이고, 각종 시상식에 투표 화력을 퍼붓는다. 이걸 ‘조직싸움’이라고 삐딱하게 보면 곤란하다. 스타의 성장을 내 성장과 동일시하며 성취감을 맛보는 ‘후원자 팬덤’이기 때문이다. 방탄도 아미를 진짜 여자친구 대하듯 한다. 늘 “아미 덕분” “아미 사랑해”를 외친다. 여기에 실시간 일상을 공개하는 SNS란 무기가 있다. 누군가는 과잉의 감정노동이라고 말하지만, 이를 통해 방탄과 아미가 유사연애와 가까운 정서적 유대감을 형성하게 되는 것은 확실하다.

아이돌 팬덤은 스타와 팬의 관계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팬끼리의 연대감이 그 못지않다. 취향과 애정의 공동체를 건설한 이들은 조건 없고, 보상도 바라지 않는 헌신을 체험한다. 날밤 새우며 번역자막을 붙이는 노력 봉사가 이렇게 가능하다.

방탄은 ‘아시아성’에 대한 서구의 시선도 바꿨다. 똑같이 서구 주류를 파고들었지만 우스꽝스러운 이미지로 아시아인의 스테레오 타입에 기댔던 싸이와 달리, ‘쿨’한 문화로 받아들여졌다. 이때 ‘쿨’은 “어른들은 모르는 새롭고 낯선 감각”(음악평론가 차우진)이다. 차우진은 이렇게도 썼다. “방탄이 활동하는 무대는 미국 밀레니얼 세대가 주축인 뉴노멀 라이프스타일의 장이다. 기존의 인종과 언어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곳이다.” “방탄은 지역의 창작자들이 세계 주류 음악시장을 돌파할 가능성을 높였다. 그 조건은 테크놀로지와 미디어 혁신, 새로운 세대의 감수성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소설가 장정일의 글은 대단히 부적절하다. 그는 방탄이 전 세계에서 “기존 위계질서를 침식, 해체”하는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는 책 『BTS 예술혁명』을 비판하면서 “미국인들이 방탄을 따라 한국어 떼창을 하는 것으로 영어의 독점적 지위는 사라지지 않는다” “이런 태도가 대중문화 혐오로 보일 수도 있지만, 비웃어야 할 것은 대중문화가 아니라 문화를 최종심급으로 삼아온 온갖 신화”라고 일갈했다가 팬들의 반발을 샀다. 장씨 주장의 요체는 “대중음악으로 세계와 현실을 변혁시킬 수 있다”는 헛소리를 집어치우고, 고작 아이돌 분석하는 데 들뢰즈같은 고매한 철학을 들이대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나 방탄의 팬인 미국의 교육자 라프란즈 데이비스는 “직업 때문에 전 세계 교육자들과 교류했지만 한 번도 그들의 언어로 대화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BTS의 음악과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제대로 이해하고 싶어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비로소 나를 철학적으로 돌아볼 수 있게 됐다. 장벽과 편견을 만날 때마다 BTS 같은 존재가 나타나 여러분이 그 벽을 넘을 수 있게 해주길 바란다”고 적었다. ‘한 케이팝 그룹이 어떻게 나를 장벽 너머로 이끌었나’라는 글에서다.

“1세계 시민으로서 우월한 문화적 지위를 놓친 적 없는 사람들이 방탄의 열렬한 팬이 됐을 때 (한국어를 잘 몰라) 겪는 역지사지의 순간들은, 세계 속 자신의 위치와 타문화에 대해 성찰할 계기를 준다.” 역시 방탄의 팬이기도 한 이지행 단국대 교수의 글이다. 이런 것이 세상을 바꾸는 일이 아니면 뭘까. 또 이런 것이 개인의 삶에 혁명 아니면 뭘까.

양성희 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