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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문화 축전 중간점검(기자 방담) |장외제전서도 "금메달" 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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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지난 17일 개막된 서울 올림픽 문화예술 축전의 열기가 아주 뜨겁습니다. 우리로서는 전례를 볼 수 없는 국제적 대「이벤트」인만큼 다소 성급한 느낌은 있지만 한 번 쯤 중간 점검을 하고 넘어가는 게 온당할 것 같아요.
-축전은「트랙」「필드」에서 육체의 힘과 기를 겨루는 장내 경기에 못지 않게 각국의 문화예술적 전통과 혼이 교환하는 중요한 장외 제전이라고 함수 있지요. 그 동안「우물 안 개구리 식」의 문화적 타성에 젖어있던 우리에게 이번 축전은「진정한 세계성」에 눈뜨게 하는 한 계기를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예술 축전의 첫 테이프를 끊은 것은 연극 쪽과 오페라였습니다. 개막제에 앞서 16일 저녁 이탈리아「라 스칼라」오페라단의『투란도트』와 브라질「마쿠나이마」극단의『시카다 실바』공연이 있었지요.
이어서 체코 스보시 극단의 마임극『충돌』과 폴란드「가르지니차」극단의『아바쿰』이 공연됐고, 국내 작품으로 지난 봄 제6회 전국 연극제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안양 예술극장의 『바꼬지』와 극단「세실」의『불가불가』도 공연되는 등 이번 문화 올림픽의 초장 분위기는 단연 서울 국제 연극제와 오페라가 이끌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아요.
「라 스칼라」는 오페라의 진수를 보여주는 고도의 음악성과 탁월한 관현악 역주로 이들을 처음 대하는 한국의 관객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개막제 날은 우리의 전통 문화와 미를 소개하기 위한 각종 특별전이 서울과 지방의 국립박물관에서 시작됐고 과천1 국립 현대미술관에서는 올림픽 미술제의 중요 행사인 국제 현대 회화전과 한국 현대 미술전이 개막됐습니다.
특히 국제 현대회화전의경우는 동구권을 포함한 세계 현대미술의 흐름을 대표하는 저명 작가들이 대거 참여해 옴으로써 폭발적이라 할만큼 관람객들의 발길을 끌어들였습니다.
이 축전은 문화 예술의 세계성에 대한 본격적인 접근을 가능하게 했다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시작부터 우리의 고질적인「문화적 사대주의」를 드러내 씁쓸한 느낌을 갖게 했습니다.
「과공은 비례」라는 옛말도 있습니다만 필요 이상으로 남을 받들다보면 주인으로서의 체면과 주체성을 스스로 깎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지요.
-11일의「라 스칼라」공동 기자회견 때 인터뷰에 나오기로 돼있던 당사자들이 예정 시간보다 1시간 이상이나 늦게 나타나는가하면 남녀 주인공은 연습을 구실로 아예 딴 곳으로 가버리는 등 무성의가 이만저만이 아니더군요. 그런데도 이튿날 도하 신문에는 이들 얘기가 대문짝만 하게 실렸어요.
-외국의 연극·오페라를 개막 음악제보다 하루 앞서 공연하게 한 것도 문화적 사대주의의 한 예였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우리 것을 최대한으로 보여줘야 할 시점에서 첫 공연부터 외국 단체에게 넘겨버림으로써 한국 공연단체들이 더욱 그늘에 가려지게 됐다는 거지요.
첫 1주일 동안 해외 3개 극단의 공연을 보면서 느낀 것은 그 연극들이 주체성에 바탕을 둔 지극히「민족적」인 내용들이란 것입니다. 거기에 비해 우리는 이 기간 중 참으로「우리 연극」이라고 할 만한 무대를 보여주지 못했던 것 같아요.『5천년 전통을 지닌 민족의 문화적 역량은 이런 것이다』고 내세울 만한 우리만의 독특한 무대 영역이 아쉽습니다.
-국제 현대 회화전에 참가한 외국 작가들도 세계 미술의 유행을 좇는 아류적 작가보다는 한국적인 것을 추구하고 있는 작가들에게 더 높은 평가를 보내더군요. 헝가리의 한 여류화가는『자기 것을 갖는 30∼40대 한국 작가들의 강력한 힘에 놀라움을 느꼈다』고 토로하기도 했어요.
-행사 운영에도 미흡했던 점이나 문제점이 없지 않았지요.
-17일의 개막 경축 음악회 경우 축전의 첫 장을 장식하는 공연치고는 간소하다 못해 너무 초라하지 않느냐 하는 느낌을 주었어요. 특히 코리언 심퍼니의 베토벤 제9 교향곡 연주에는 『왜 했나』라는 항의성 지적이 집중적으로 쏟아졌지요. 잔치 분위기를 살리려면 차라리 마당놀이 같은 것을 더 대대적으로 벌이는 게 나았으리라는 거지요.
-국내 극단으로 첫 무대를 연 안양 예술 극장은 공연 당일 19일에야 겨우 주최측으로부터 비표를 받아 무대 설치 작업을 할 수 있었으니까요.
-주최측이 통역 문제에도 좀 신경을 써야할 것 같아요. 22일 오전 중에 있었던 스페인의「마리아·로사」무용단 인터뷰 때도 드러난 것이지만 해당 언어에 능하다고 해서 통역이다 되는 것은 아니거든요.
무용에 관한 지식·소양이 거의 없는 인사가 통역을 맡아 한 까닭에 기자들의 질문과 무용단 측의 답변이 쌍방에 적절히 전달되지 못했어요.
-해외 공연단에 쏠린 관객들의 열기는 대단했습니다. 특히 체코·폴란드 등의 동구권 연극에 대한 관심은 대단해서 표를 사려는 사람들로 매회 장사진을 이루었어요.
-무용제나 합창제도 그건 마찬가집니다. 특히 합창제는 세계적 수준의 합창단 참가가 거의 없어 주최측인 예술의 전당 관계자들도 관객 동원 문제를 크게 걱정했는데 신문 방송이 보도를 통해 축제 분위기를 부추기는 바람에 연일 표가 매진됐다고 싱글벙글 이었어요.
-전반적으로 공연의 질이나 수준에 비해 관객들의 태도에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았어요. 아동물을 제외하고는 원칙적으로 만 7세 미만의 어린이는 데리고 입장할 수 없는데도 그게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어 안타까웠습니다. 아이들은 떠들고, 복도를 뛰어다니고, 어른들도 좌석에 앉아 과자를 먹는다든 가 콜라를 마시는 꼴불견을 많이 노출했어요.
-꼬집자면 아직도 많은 문제점이 지적될 수 있겠지요. 어쨌든 이번 문화예술 축전은 세계 예술의 흐름과 현주소를 이해하게 하는데 큰 보탬이 된 것만은 인정해야겠지요. 다른·분야에 비해 소외되고 처져있던 우리 문화예술계에 신선한 자극을 주고 또 국민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계기가 됐으면 해요.<참석자 박금옥 기자·정교용 기자·홍은희 기자·김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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