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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깊이 보여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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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민주화를 위한 정치적 갈등과 혼란이 거듭되던 지난 80년대 초 서울 올림픽의 유치 결정소식을 들었을 때 우리는 흥분과 감격에 앞서 당혹감과 깊은 우려를 나타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우리 국민들의 열화 같은 민주화의 갈망과 의지를 스포츠 쪽으로 관심을 돌리려는 독재 정권의 호도책이 아닌가 하는 당혹스러움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외채가 4백억 달러에 가까운 채무국에서 올림픽을 치르려는 것은「잘 살지도 못하는 빚 많은 집안에서 온 동네 사람들을 불러모아 마을잔치 하는 격」이 아닌가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도 잠시 뿐, 우리 민족의 저력과 함께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뿜어내는 눈부신 경제성장은 올림픽 성공을 위한 장애요인을 하나하나 걷어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사이 집안 싸움으로 얼룩졌던 우리들의 사회 현실도 지난해 6·꼬 선언 이후 민주화를 향한 단계적인 보행을 통해 정치적 응어리와 매듭의 실마리를 풀어가고 있다. 국제 정세마저도 우리에게 상당히 성숙된 좋은 여건을 마련해 주고 있다.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과 미국 등 서방 권의 이데올로기 상충으로 반쪽 절름발이 올림픽을 치렀던 앞서의 올림픽은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전세계 1백61개국이 참가를 통보해 옴으로써 명실상부하게 동서 화해의 새로운 전기를 이룩하는 60억 인류의 지구촌 대축제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강대국의 이데올로기 싸움에 편승하여 올림픽에 불참함으로써 동서 냉전의 한 방편으로 전락하였던 올림픽 제전이 이제 서울 올림픽 때부터는 인류의 화합과 전진을 다짐하는 본래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다가온 것이다. 그렇다.
이 땅,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 우리 손으로 주최하는 올림픽 대제전은 개국이래 민족사상 처음 있는 일이며, 우리가 이 땅에서 사라진 이후 1백년 동안은 개최국으로서의 올림픽 대제전을 다시 한 번 누려볼 수 있을는지 모르는 역사적인 대 축제일로 기록된다.
그럼에도 우리가 주최하는 서울 올림픽이 우리를 그늘지게하고 우울하게 하는 것은 남북 6처만 우리 민족 모두가 동참하지 못하는 분단 민족 현실의 아픔이 있기 때문이다.
개회식 때 한민족을 상징하는 깃발을 들고 나란히 입장, 민족 통일의 집념과 의지를 보여줄 수 있었다면 우리 6천만 민족뿐만 아니라 전세계가 얼마나 흥분하고 감격해 할 것인가. 우리 민족의 코앞에 다가온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우리는 우리의 역사적·민족적 대전환의 호기를 잃지 말자.
허심탄회하게 터놓고 이야기하며, 남북 냉전과 긴장의 울타리를 헐고 지금 우리가 와있는 역사적 위치에서 우리 시대 우리 민족 최대의 꿈과 이상을 실현시켜 가는 것은 우리가 반드시 해야할 책무이며 사명이다÷
앞으로 서울 올림픽 23일. 북쪽의 서울 올림픽 참가가 어떻게 결정될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대하는 마음은 필자 혼자의 마음 뿐 만은 아닐 것이다.
서울올림픽 조직위원회의 준비를 위한 그 동안의 치밀한 사전 준비와 노력은 우리 국민의 이름으로 치하 받을 만한 것이지만, 다소의 무리와 시행 착오·과열된 분위기는 서울 올림픽의 성공을 기원하는 국민의 입장에서 볼 때 바로잡혀져야 하리라 생각된다. TV·라디오 등 방송매체의 시간편성과 신문 등 매스컴의 지면 할애가 지나칠 정도로 거의 올림픽 일색으로 짜여지고 있다는 지적도, 한국의 참모습을 홍보하고 알리기 위한 우리 사회의 일상성이 너무 위축되고 있다는 지적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식으로 손님을 맞는다. 너무 흥분하지 말고 너무 들뜨지 말고 차분하게 가라앉은 모습으로 우리 사회의 고유한 삶을 보여주는 것이 오히려 올림픽에 초대되어 온 그들에게 한국의 깊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을 것이다. 주최국으로서의 올림픽 특집 보도와 함께 우리 사회가 이룩해 가고있는 다른 모든 분야의 보도시간을 좀더 충실히 살리는 것이 우리의 한국과 한국인을 세계 속에 부각시킬 수 있는 한 방법이 될 것이다.
올림픽 행사에 매달려 끌려가고 있는 장식품으로서의 문학 예술이 아니라, 문화 예술의 오랜 전통적인 깊이 위에서 스포츠가 그 넓이를 펼쳐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오늘 우리 시대의 올림픽은 스포츠 교류만을 위한 올림픽일 수 없으며 이념과 사상을 뛰어넘고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이 지상의 모든 민족성과 국민의식의 총화가 하나의 정신으로 창출될 때 올림픽은 우리 인류사를 밝히는 위대한 등불이 될 수 있다.
이제 서울 올림픽을 밝힐 성화가 채화돼 그 불은 올림피아 헤라 신전을 떠나 서울을 향해 대장정의 길에 올랐다.
얼마 후면 이 지상에서 가장 큰 가슴과 용기와 사람을 가진 젊은이들이 모일 서울이여, 올림픽의 성화와 함께 영원하라.

<김종해·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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