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뒷공론만 말고 당당하게 나서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신문사에 있다보니 몇 년 새『이러다 별 일 없겠느냐』는 질문을 수 없이 받고 있다. 6·25, 4·19, 5·l6, 10·17, 10·26, 12·12, 5·17 등 숫자 시리즈라 할만큼 숱한 만고를 겪었던 가슴들이라 솥뚜껑만 봐도 두근거리는 모양이다.
요즘은 5공 비리란 말로 지난 시대의 잘잘못이 도매금으로 매도되고, 판문점으로 가자는 학생들의 격한 목소리까지 겹쳐 4·19 이후의 격동을 상기하게 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학생 혁명에 업혀 집권한 당시의 민주당 정권은 당의 분열까지 겹쳐 국민의 기대 폭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약체 정부가 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집권 세력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비리로 몰리는 5공의 후계란 콤플렉스와 여소 야대라는 상황 때문인지 사태를 주도하지 못하고 떠밀려 가는 인상이다.
이러한 유동적인 상황은 수구. 혁명 세력의 갖가지 책동과 좌우이념투쟁이 발효할 수 있는 온상이 되기 쉽다. 사회 불안을 더하는 어두운 사건들이 벌어지게 된다.
중앙 경제신문의 오홍근 사회부장 테러사건도 그런 류의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그는「월간 중앙」4월 호부터「오홍근이 본 사회」란 칼럼을 쓰고 있다. 그로 인해 이미 여러 차례 협박 전화와 함께 집 소재를 묻는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이런 전후 사정으로 미루어 이 사건이 기사 불만에 의한 테러임은 거의 의문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더구나 초동 수사과정에서 범인이 이용한 것으로 의심돼 아파트 경비원들이 번호를 적어 놓은 차량이 군 기관 소속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군 쪽에선 그 차가 4일부터 범행 당일인 6일까지 운행되지 않았다며 목격자 대질도 거절했다고 한다. 수사는 거기서부터 미궁에 부닥쳤다. 경찰이 수사본부를 보강하고 수사에 법석을 떨고는 있으나 어떤 진전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렇게 될 경우 자동차 번호 때문에 의구심이 남게되는 문제가 있다. 그건 관련 당사자들에게 명예롭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오 부장 테러 사건만은 못하지만 비슷하게 보복 테러의 혐의를 받는 사건이 재야 문화운동단체인「우리 마당」에 대한 집단 난동·성폭행 사건이다.
이들 사건에 정말 정치성이 개재됐는지 아닌지는 증거가 없으므로 단정하긴 어렵다. 가급적이면 단순 사건이었으면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나 정치성이 개재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게 숨길 수 없는 사실이고 보면 집권 측엔 부담일 수밖에 없다. 그 부담을 벗으려면 사건을 철저히 파헤쳐 밝은 빛 아래 드러내는 것 이외에 다른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올림픽 이후와 관련해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 건 마찬가지지만 김용갑 총무처 장관의「놀라운」발언은 자기 입장을 분명히 드러냈다는 점에서 이런 사건들과는 구별된다.
김 장관의 발언은 대충 세 줄기로 요약된다. 첫 째 우리 나라가 자유 민주주의 수호냐, 좌경화에 끌려 갈거냐를 올림픽 후 국민에게 물어 정부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 둘째 일부 야당이 급진 학생들을 올바로 이끌지 못하고 부추기고 있다. 셋째 대통령에게 국회 해산 권이 없어 헌법이 언밸런스다, 이런 것도 국민에게 묻는 대상이 돼야한다, 국민 의사가 헌법 위에 있는 것 아니냐….
이 중 국민투표를 통해 개헌도 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개헌 시사 부분은 초헌법적 발상이란 비난을 면키 어렵다.
헌법에 의한 개헌 절차는 재적 국회의원 3분의 2의 찬성을 거쳐서만 국민 투표에 부치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머지 두 가지 발언과 현행 헌법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부분적으로 표현이 거칠기는 하지만 못 할 소리는 아니라고 본다.
물론 세상만사를 좌우 2분 법으로 보는 듯한 시각에는 찬동할 수 없다. 그가 수호할 가치로 내세운 자유 민주주의는 좌우 양극단 사이의 중도를 넓혀가면서 폭력을 수단으로 하지 않는 한 그 양극단도 수용해 용해시키는 소화력이 강한 체제다.
다만 그가 8·15를 앞두고 이 사회의 좌경을 우려한 것은 상당수 국민의 걱정과 궤를 같이했다고 볼만하다.
그런 우려의 시각이 이미 상당히 표출되고 있었으며, 의당 그런 목소리도 나와야 한다.
일부 야당이 급진 학생들을 부추겼는지는 시각에 따라 판단이 다를 수 있겠으나, 줏대 없이 눈치를 보는 듯 우왕좌왕한 점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현행 헌법이 행정·입법부간에 견제와 균형이란 차원에서 입법부에 다소 기운 면이 있는 건 사실이다. 국회에 국정감사 및 조사 권이 모두 주어지고 총리·국무 위원 해임 건의권까지 인정되어있다. 내각 해임 권이 아니고 해임 건의권인 이상 균형을 회복하는 방식이 꼭 김 장관의 말처럼 대통령의 국회 해산 권이어야 하는지는 헌법 이론상 문제가 있다. 또 현행 헌법의 국회 우위는 유신 이후 행정부 절대 우위에 대한 일종의 반작용이었던 만큼 그 공과를 논하기가 아직은 이르다.
전반적으로 할만한 소리를 했다고 인정되는 부분도 현직 장관으로서 그런 얘기를 가로막고 나서는 게 합당한 것인지는 좀 의문이다. 그런 소리는 정당이나 정치인의 입에서 나오는 게 역시 자연스러울 것이다.
김 장관의 발언 후 동감과 격려를 표시한 여당 의원이 상당수 있었던 것으로 듣고 있다. 진정 그런 소신을 지녔다면 정치적으로 취약한 장관에게 선도를 미루고 뒤 북만 칠게 아니라 당당하게 전면에 나서는 게 옳지 않을까 싶다.
뒷공론이나 뒷전에서 꾸미는 이상한 일들은 가뜩이나 유동적인 정국을 더욱 불안스럽고 복잡하게 만들뿐이다.
갈등의 해결은 우선 갈등과 이견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데서 출발해야 한다. 문제를 드러내놓고 끈기 있는 토론과 시행착오의 과정을 거치는 게 중요하다. 지금은 정치에 긴 호흡과 당당한 자세가 요구되는 갈등의 시대인 것이다.

<성병욱·편집국장 대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