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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배명복 칼럼

국회는 지금 뭐 하고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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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배명복
배명복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배명복 칼럼니스트·대기자

배명복 칼럼니스트·대기자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꼭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지난 70년 가까이 적대 관계를 유지해 온 두 나라 최고지도자가 일대일로 만나 ‘빅딜’을 시도하는 역사적인 자리다. 핵심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다.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체제 보장(CVIG)’을 맞바꾸는 조건으로 북·미가 적대 관계를 청산하고, 상호 존중과 우호·협력에 기초한 새로운 관계로 가는 문을 열 수 있느냐가 이 회담에 달려 있다.

미 의회도 바삐 움직이는데 #손 놓고 있는 대한민국 국회 #초당적 지혜와 힘 모아 #평화와 번영의 미래 열어야 #천금 같은 이 기회 못 살리면 #그 죗값은 여의도 정치꾼들 몫

전망은 아직 불투명하다. 김정은 위원장이 말하는 완전한 비핵화의 개념과 의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남아 있는 데다 미국이 말하는 체제 보장의 신뢰성에 대한 북한의 의구심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비핵화와 체제 보장의 로드맵과 방식을 둘러싼 동상이몽(同床異夢)이 정상회담이 초읽기에 들어간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 문제가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렵다는 걸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깨달은 것 같다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다.

지난 1일 백악관을 방문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과 면담이 끝난 뒤 트럼프는 싱가포르 정상회담은 ‘과정(process)’의 시작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김정은과 한 번 만나 모든 걸 일거에 해결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한 셈이다. 트럼프는 싱가포르 회담에서 서명하는 일은 없을 것이며 2차, 3차 정상회담이 또 있을 것이란 말로 6·12 담판에 대한 기대치를 낮췄다. 싱가포르 정상회담은 비핵화와 체제 보장, 관계 정상화에 관한 양국 지도자의 정치적 의지와 구상을 확인하고, 이를 공동발표문 형식으로 공표하는 자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 구체적 로드맵과 이행 방식에 관한 논의는 후속 실무회담의 몫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싱가포르에서 종전 문제가 논의될 것이라고 밝혔지만 남·북·미 3국 정상이 싱가포르에 모여 종전 선언에 서명할지, 적당한 계기에 3자가 만나 서명할지는 불분명하다. 어떤 경우든 한국전 종전 선언은 북·미 적대 관계의 종식과 양국 관계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의미가 있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문제는 북한의 비핵화 진도와 맞물릴 수밖에 없지만, 남북, 북·미 간 기술적 전쟁 상태를 끝낸다고 선언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 북·미가 관계 정상화에 나설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됨으로써 북한의 비핵화를 추동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배명복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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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을 요구한 미국 내 믿을 만한 소식통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표 계산에 들어갔다고 한다. 북·미 간 합의 사항에 대한 미 의회의 비준 동의 절차를 염두에 두고 상원의원들을 대상으로 개별 의사 타진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체결한 이란 핵협정을 트럼프 행정부가 무효화한 전례를 들어 북한은 양국 간 합의 사항을 국내법적 효력을 갖는 조약 형태로 문서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조약 체결을 위해서는 상원 의석의 3분의 2인 67명 이상의 지지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파악한 바로는 야당인 민주당 쪽에서 의외로 지지가 많아 67표 확보에 별문제가 없을 거로 전해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우리가 상상하고 있는 것 이상으로 지금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싱가포르 공동발표문에는 수교의 첫 단계인 연락사무소를 건너뛰고 바로 상주대표부를 교환·설치하는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대신 미국은 수개월 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일부 핵탄두의 반출과 폐기를 북한에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한 빅딜이 싱가포르에서 이루어진다면 북·미 관계는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는 역사적 기회를 맞고 있다. 두 차례의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우리는 남과 북이 손을 잡으면 주변 강대국 견인이 불가능한 꿈만은 아니라는 걸 체감했다. 주변 정세에 눈이 어두운 데다 이리저리 외세에 휩쓸리며 의존하다 민족적 비극을 자초한 구한말의 쓰라린 기억을 딛고 한반도 역사를 새로 쓸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이 기회를 살리느냐 못 살리냐는 우리가 하기에 달려 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지금 국회는 뭐 하고 있는가. 국회가 나서야 한다. 정부가 하는 것을 바라만 보고 있을 게 아니라 국회가 초당적으로 나서서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한다. 정부도 돌아가는 사정을 국회에 소상하게 설명하고 지원과 협력을 호소해야 한다. 대립과 갈등의 소모적 한반도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평화와 번영의 미래를 후손에게 물려줘야 한다. 당리당략에 눈이 멀어 다시 오지 않을 천금 같은 이 기회를 살리지 못한다면 그 죗값의 상당 부분은 여의도 정치꾼들 몫이 될 것이다.

배명복 칼럼니스트·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