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위력 때문에 일본의 평론가 히로세 다카시는 BIS를 국제통화기금(IMF).신용평가회사와 함께 '미국의 세 가지 신기(神器)'로 꼽았다. '글로벌 스탠더드'란 이름으로 세계를 무릎 꿇린 무기라는 것이다.
BIS가 처음부터 '은행의 은행'이었던 것은 아니다. 본래는 제1차 세계대전 후 패전국에 배상금을 받으려 만들어졌다. 국제판 해결사였던 셈이다. 그러나 1931년 오스트리아 은행이 파산하고 독일에선 예금인출 사태가 나면서 돈 받을 길이 막막해졌다. 승전국들은 빚을 모두 탕감해줬다. 이쯤 되면 쓸모 없어진 BIS도 사라져야 했지만 살아남았다. 오히려 더 업그레이드됐다. 다시는 돈을 떼이지 말자며 미국 등이 갹출해 BIS 기금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BIS 비율 역시 은행 파산 덕에 탄생했다. 84년 뉴욕 콘티넨털일리노이 은행이 망했다. 멕시코에 빌려준 돈을 떼인 게 컸다. "외국 은행도 미국과 똑같이 규제해야 한다"며 미국 은행들은 의회를 압박했다. 의회는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를 조였고, 당시 의장이던 폴 볼커는 BIS를 다그쳤다. 볼커는 4년 적공(積功) 끝에 88년 BIS 비율 규제를 전 세계에 전파하는 데 성공했다. (수전 스트레인지 '매드 머니')
그러나 BIS 비율은 곧 무용지물로 판명났다. 나라마다 기준이 달라 일괄적용이 어려워서다. 96년 BIS 총재 앤드루 크로케는 "서로 제도가 다른 세계 각국 은행에 공통 기준을 만들어낸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 했다.
사망 직전까지 갔던 BIS 비율은 그러나 1년 뒤 부활했다. 이번엔 한국의 은행들이 희생양이었다. 외환위기 후 한국은 BIS 비율을 잣대로 은행의 생사를 결정했다. 8%가 안 되면 퇴출대상이었다. BIS 비율 규제의 세계적 모범사례가 탄생한 것이다.
요즘 감사원과 금융당국이 외환은행의 BIS 비율을 놓고 공방이 한창이다. 뒤늦게 면피 싸움을 벌이는 것 같아 안쓰럽다. 6.16%면 어떻고, 9%면 또 어떠랴. 이미 팔려간 외환은행이 돌아올 수도 없는데. '단지 숫자일 뿐'인 건 나이만이 아니다. 때 놓친 BIS 비율도 그렇다.
이정재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