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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BIS 비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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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외환위기 직후 은행들에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은 지옥 염왕(閻王)이었다. '찍히면 사망', 8%가 넘어야 살고, 모자라면 죽었다. 동네 아낙이나 시골 영감도 은행에 가면 "BIS가 얼마요"부터 물었다. BIS 비율이 낮다는 소문이 돌면 금세 예금 인출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런 위력 때문에 일본의 평론가 히로세 다카시는 BIS를 국제통화기금(IMF).신용평가회사와 함께 '미국의 세 가지 신기(神器)'로 꼽았다. '글로벌 스탠더드'란 이름으로 세계를 무릎 꿇린 무기라는 것이다.

BIS가 처음부터 '은행의 은행'이었던 것은 아니다. 본래는 제1차 세계대전 후 패전국에 배상금을 받으려 만들어졌다. 국제판 해결사였던 셈이다. 그러나 1931년 오스트리아 은행이 파산하고 독일에선 예금인출 사태가 나면서 돈 받을 길이 막막해졌다. 승전국들은 빚을 모두 탕감해줬다. 이쯤 되면 쓸모 없어진 BIS도 사라져야 했지만 살아남았다. 오히려 더 업그레이드됐다. 다시는 돈을 떼이지 말자며 미국 등이 갹출해 BIS 기금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BIS 비율 역시 은행 파산 덕에 탄생했다. 84년 뉴욕 콘티넨털일리노이 은행이 망했다. 멕시코에 빌려준 돈을 떼인 게 컸다. "외국 은행도 미국과 똑같이 규제해야 한다"며 미국 은행들은 의회를 압박했다. 의회는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를 조였고, 당시 의장이던 폴 볼커는 BIS를 다그쳤다. 볼커는 4년 적공(積功) 끝에 88년 BIS 비율 규제를 전 세계에 전파하는 데 성공했다. (수전 스트레인지 '매드 머니')

그러나 BIS 비율은 곧 무용지물로 판명났다. 나라마다 기준이 달라 일괄적용이 어려워서다. 96년 BIS 총재 앤드루 크로케는 "서로 제도가 다른 세계 각국 은행에 공통 기준을 만들어낸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 했다.

사망 직전까지 갔던 BIS 비율은 그러나 1년 뒤 부활했다. 이번엔 한국의 은행들이 희생양이었다. 외환위기 후 한국은 BIS 비율을 잣대로 은행의 생사를 결정했다. 8%가 안 되면 퇴출대상이었다. BIS 비율 규제의 세계적 모범사례가 탄생한 것이다.

요즘 감사원과 금융당국이 외환은행의 BIS 비율을 놓고 공방이 한창이다. 뒤늦게 면피 싸움을 벌이는 것 같아 안쓰럽다. 6.16%면 어떻고, 9%면 또 어떠랴. 이미 팔려간 외환은행이 돌아올 수도 없는데. '단지 숫자일 뿐'인 건 나이만이 아니다. 때 놓친 BIS 비율도 그렇다.

이정재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