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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악수 나누며″올 여름 무더웠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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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양측 만남>
○…역사적인 8·19 준비접촉은 당초 예정했던 오전 11시보다 다소 앞선 10시 58분쯤 쌍방대표단이 회담장에 앉으면서 시작.
우리측 대표단이 회담장에 들어서기 전 미리 대기하고 있던 북측 대표들이 우리측을 문 앞에서 반갑게 영접.
양측 대표들은 회담장 한가운데 있는 대형 테이블에 앉아 먼저 우리측 박 수석대표와 북측 전금철 단장이 인사를 교환했는데 테이블의 폭이 넓어 악수가 곤란하자 각자 두 손을 맞잡아 흔들어 보이거나 손을 내미는 시늉만으로 악수를 대신.
북측 전 단장이 『오늘 아침 떠나셨습니까』라고 먼저 말을 꺼내자 박 수석대표는 『네, 9시에 국회를 출발했습니다. 마침 국회의장이 외유 중이어서 부의장들과 원내총무 등 많이 전송 나왔습니다』고 답변.
이어 양측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대표단소개 및 신임장교환순서로 회의를 시작했는데 북측 전 단장과 우리측 박 수석대표는 날씨를 화제로 인사를 교환.
전금철 북측단장이 『올 여름 날씨가 무더웠죠』라고 인사를 건네자 우리측 박준규 수석대표는 『옛날엔 서울에서도 여름에 담요를 덮어야할 정도였는데 이번 보름동안은 어찌나 무더웠던지… 나도 처음 겪었어요』라고 응답.
전 북측단장은 『우리도 함북 무산지방이 38도로 올라가는 등 예전에 없던 무더위를 겪었다』고 말했다.
이한동 대표는 북측의 이동철 대표에게 『「동」자가 무슨「동」자냐』고 물었는데 북측 이 대표가 『동녘 동』이라고 하자 『이름 두자가 같다』고 했다.
두 사람은 서로 본관을 물어보기도 했는데 이한동 대표는 고성 이씨이고 북측 이 대표는 충남 아산이 본관이라고 소개.
우리측 박관용 대표와 북측의 박문찬 대표는 모두 본관이 밀양인 것으로 밝혀졌다.
양측 대표소개에 북측은 당 소속과 이름만 간단히 언급한 반면 우리측 박 수석대표는 대표들의 출신지역구·전직·현직까지 상세히 소개했는데 박관용 대표를 가리켜 『국회 통일특위 위원장으로 나보다 국회에선 단수가 높다』고 조크를 던졌다.
테이블에는 대표자리마다 메모지 두 권과 필기구, 그리고 영광이란 이름의 북측 담배 한 갑씩이 준비돼 있었다.
양측 대표 중 우리측 박관용 대표와 북측의 전금철 단장은 지난 두 차례 남북국회회담예비회담에서 각각 대표로 참석했던 구면이어서 이날 만나자마자 반갑게 손을 흔들며 『오랜만이다』고 인사.

<학생회담 놓고 은근히 공격>
○…전 단장은 이날 회담장소인 통일각 건립계기에 대해 『우리가 이번 회담을 여기에서 하자고 제의한 것을 남한측이 받아들여 기쁘게 생각한다』면서 『흔히 판문점이 전쟁을 연상시키는 것으로 말하고 있으나 우리는 판문점을 평화와 통일을 원하는 역사의 땅으로 여기고 지난 85년 이 통일각을 건립했다』고 설명.
그는 또 『이 건물을 건립한 후 처음으로 양측의 국회의원들이 첫 회합을 갖게돼 뜻깊다』고 피력.
우리측 김봉호 대표는 북한측대표들을 향해 『우리 한번 잘해 봅시다』고 분위기를 유도했으며 박관용 대표는 북측 전 의장에게 『전 선생과 세 번째 만나게돼 누구보다 기쁘다』고 반갑게 인사.
북한측의 안병수 대표는 우리측의 박 수석대표에게 『박 선생이 정치를 오래 하셨으니 그 경륜으로 남북 국회회담이 잘 되도록 노력해달라』며 자신을 초선의원이라고 소개하면서 『나는 이 같은 모임에 처음 나와 마음이 흥분되나 과거 전철을 밟지 말고 결실이 맺어졌으면 한다』고 언급.
북한측의 전 단장은 『그 동안 남북대화가 중단됐다가 정치인들이 이렇게 상봉하게돼 많은 민족들이 오늘회담에 큰 희망을 가지고 주시하고 있다』면서 회담의 의의를 강조.
그러다가 그는 느닷없이 남북 학생회담 문제를 거론, 『남북 학생회담을 하려고 우리측의 학생들이 판문점에 나왔는데 결과가 좋지 않아 온 겨레에 실망을 주었다』고 은근히 우리측을 공격.
이에 대해 우리측의 박 수석대표는 『남북한의 40년 역사 속에 많은 기복이 있었으나 이번 국회회담이라도 성사되면 학생들에게 상봉기회를 줄 수 있다』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쌍방이 회담을 중단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라고 응수.
북한측의 전 단장도 우리측의「회담계속성」에 대해 적극적으로 찬성의사를 표시한 뒤 『회담의 계속도 중하지만 생산적인 회담이 돼야한다』고 강조.
이때 북한측의 안병수 대표가 또다시 남북 학생회담 문제를 꺼내 『우리가 학생회담을 도와줘야 하나 간섭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
양측대표들은 20분간 인사교환과 환담을 나눈 뒤 북한측의 전 단장이 회담운영방식에 대해『여기에 기자선생들이 있는데 한가지 결정을 하고 넘어가는 것이 좋겠다』며 은근히 회의를 반 공개로 할 것을 제의.
그러자 우리측의 박 수석대표는 『회의운영의 효율성을 위해 장내를 정리하고 비공개든, 공개든 어떤 방식도 좋다』고 응답.
오전 11시 20분쯤 회의장이 정리되자 양측 보도진은 밖으로 나와 회담장 옆에 있는 대형 홀에서 스피커를 통해 회담내용을 청취했는데 양측대표들은 북한측부터 20여분씩의 기조연설을 시작.

<서울 출발>
○…회담이 북측 영내인 통일각에서 열리기 때문에 우리측 대표단과 기자단은 이날 오전 10시 30분 군사분계선을 넘어 회담장소로 출발.
기자단이 기사 송고를 위해 평화의 집까지 건너올 때마다 우리측 안내원이 따라 붙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는 등 다소 긴장된 분위기.
통일각 내에는 회의실로 사용할 수 있는 큰방이 3개 있고 방마다 실내장식이 서로 달라 각기 다른 용도로 쓰이는 것으로 추정.
이 건물에서는 이날 따라 쾌청한 날씨여서 인지 멀리 개성의 송악산이 시야에 들어와 분단의 현장을 한눈에 조감케 하기도.
회담이 열린 통일각은 그동안 남북회담장소로 사용된 적은 없었으며 지난번 남북 고향방문단이 서울과 평양을 왕래할 때 방문단의 대기장소로 사용됐었다.
통일각은 북측이 지난 85년 8월 완공한 건물로 지난 80년 6월 우리측이 남북 총리회담 준비를 위해 판문점 자유의 집 옆에 평화의 집을 짓자 북측이이에 대응키 위해 북측지역의 판문각에서 왼쪽으로 50여m 떨어진 곳에 지은 건물이다.
이날 회담장에는 우리측에서 내신기자 50여명과 외신기자 70여명 등 1백 20여명의 보도진이 몰려 모처럼 재개된 남북대화에 대한 국내외의 비상한 관심을 드러내 보였다.

<활짝 웃으면서 포즈 취해>
○…남북 국회회담 준비접촉을 위한 우리측 대표들은 19일 오전9시 의장단과 4당 총무단의 환송 속에 준비된 차량에 탑승하고 판문점으로 출발.
남북대화사무국의 선도차량에 이어 국회외빈용 그랜저 5대에 박준규 수석대표가 첫 번째 차에 타고 이한동(민정) 김봉호(평민) 대표가 두 번째, 박관용(민주) 김용환(공화) 대표가 그 다음 차에 탔고 예비차 1대, 수행원들이 탄 남북회담 사무국 차량 4대, 앰뷸런스 1대가 뒤따랐다.
박준규 수석대표는 차에 오르면서 활짝 웃으며 오른손을 펴 위로 들어 보이며 성공을 자신하는 포즈를 취한 뒤 『학생들이 구호를 외칠 때 손을 하늘로 뻗치는 모습보다 보기 좋은 포즈 아니냐』고 조크.

<기자회견>
○…국회의장단과 4당 총무들은 19일 아침 국회의장 실에서 박준규 수석대표 등 우리측 대표 5명을 초청, 간담회를 겸한 환송회를 개최.
이 자리에서 박관용 대표(민주)는 『그 동안 남북회담에 참석해보니 중립국 정전위원회사무실과 북한측 통일각은 분위기가 다르더라』면서 『북측에서는 자기들 땅에서 회담하려는 것인데 저쪽에서 끌고 가려 한다면 평양까지라도 가자』고 결의를 다짐.
김봉호 대표 (평민)는 『우리가 통일각에 당당히 들어가기로 한 것은 잘한 일』이라고 평가.
한편 이홍구 통일원장관은 오전 9시 5분전쯤 의장실에 도착했지만 따로 브리핑이나 협의 등을 하지 않았는데 『인사차 온 것』이라고 설명.
노승환 의장대행은 간담회장에서 『그동안 다섯 분 대표의 수고가 정말 많았다』고 치하한 뒤 『이번 회담은 다른 때와 달리 우리 국회가 실질적인 회담 주체가 되고 4당간의 협의를 거쳐 원의를 모아 회담에 임하게 된 점에서 민주회복의 도정에 큰 의의를 지닌다』고 의미부여.
노 의장대행은 또 『이번 회담은 우리국회가 북한선수단의 서울올림픽 참가 촉구결의문을 북측에 전달한데서 비롯된 만큼 북한의 참가가 꼭 성사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면서 『전향적인 자세로 회담에 임함으로써 통일의 대로를 여는데 큰 디딤돌을 놓기 바란다』고 당부.
○…19일 오전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우리측 대표단의 기자회견에는 국내외 보도진 50여명이 모였는데 그중 3분의 2가 외신기자들이어서 2년 8개월만에 재개되는 남북접촉에 관한 외국의 관심을 반영.
박준규 수석대표는 이를 의식, 15분간의 국내보도진 회견을 마친 후 별도로 시간을 마련해 외신기자들의 질문에 영어로 즉석답변.
이날 외신기자들은 주로 우리측이 대표단 숫자를 20명으로 한 것에 대해 질문했는데 박 수석대표는 『회의가 춤추는 회의도 아니고 만세 부르는 회의도 아닌데 7백∼8백명이나 모여 무슨 회의가 되겠느냐』며 『어떤 회의든지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소수의 협의체를 구성하지 않느냐』고 설명.
박 수석대표는 『남북문제 해결에 다수결은 없다』며 『다수결로 한다면 남북한 인구비례로 총선거하자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주장. <판문점=허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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