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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회계보고서보다 못한 국회의원 후원금 내역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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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6호 03면

[SPECIAL REPORT] 국회의원 후원금 백서 

국회의원 297명이 지난해 쓴 정치후원금은 306억원이었다. 1인당 1억원을 상회하는 규모다. 중앙SUNDAY는 중앙선관위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전체 의원들의 후원금 수입지출내역서를 입수했다. 2만339쪽 분량의 이미지 파일이었다. 이를 이미지 변환 프로그램(ABBYY FineReader 14)과 수작업을 통해 데이터화하는 데 한 달여 걸렸다. 이후에야 의원들의 쓰임새와 씀씀이뿐만 아니라 의원 간 비교도 가능했다. 분석 결과 과거보다 개선됐다곤 하나 여전히 후원금은 의원들에겐 ‘주머닛돈’이었다. 지출 내역을 상세하게 보고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음에도 그것을 지키는 의원은 많지 않았다.

297명 후원금 체크해보니 #날짜별로 쓴 돈 나열식 회계보고 #의원 평균 50장 이미지 파일 제공 #가독성 떨어져 전모 파악 힘들어 #식대·기름값 등 표기 들쑥날쑥 #인건비 지급, 계좌이체 방식 문제 #특수관계인과 거래 오해 소지도

“유권자들이 알아보기 힘든 편의주의적 회계보고다.”

한국 또는 미국 공인회계사 3명이 국회의원 297명의 지난해 후원금 수입·지출 내역서를 검토한 후 내놓은 평가다. 이들은 “카드 사용이 늘면서 지출 구조가 과거보다 투명해졌지만 여전히 한계가 많다”며 이같이 분석했다. 중앙SUNDAY는 앞서 이들에게 관련 자료를 제공했다.

우선 전모조차 파악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총희 회계사는 “최근 논란이 되는 아파트 회계보고의 경우에도 주민들이 알아보기 쉽게 보고서를 작성하자는 논의가 있는데 의원들의 내역서는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정리된 정보가 없다”며 “내역서가 정보 이용자의 입장에서 작성됐는지 의문이 든다”고 꼬집었다.

회계사들의 진단

회계사들의 진단

실제 현재 내역서는 일자별로 돈을 쓴 내용을 나열하는 방식이다. 그렇다 보니 한 해 의정활동에 얼마를 썼는지, 인건비와 지역구 관리 등 어느 항목에 얼마의 후원금을 배정했는지 전체적인 쓰임새를 파악하기 힘든 구조다. 유권자 스스로 정보 공개 청구를 통해 관련 문서를 받더라도 관련 데이터를 추출하기도 어렵게 돼 있다. 의원당 평균 50여 장인 문서를 이미지 파일로 제공하기 때문이다.

지출 항목이 의원마다 들쑥날쑥하게 기재돼 있는 것도 문제다. 이총희 회계사는 “삼성전자건, 현대자동차건 재무제표에서 사용하는 항목이 통일돼 있어 비교가 가능하다. 또 주석에서 항목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있다”며 “정치후원금도 더더욱 정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실제로 식대만 하더라도 ‘광주지역 편집국장 만찬’(이개호 민주당 의원), ‘전당대회 준비위원 오찬’(박주선 바른미래당 의원), ‘식대(의원 외 5인)’(심상정 정의당 의원) 등으로 달리 표기돼 있다. 기름값도 ‘주유비’ ‘유류비’ ‘유류대금’ 등으로 쓰여 있다.

중앙선관위가 ‘후원회 정치자금 회계실무 지침’을 통해 “정치자금의 수입·지출이 있는 때마다 회계장부에 그 상세 내역을 기재해야 하며, 여러 건을 한꺼번에 모아 1건으로 처리해서는 안 된다”고 주문했지만 그렇지 않게 보고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손재호 회계사는 “‘비품 목록 11건’ 같은 식으로 기재한 게 있던데 지출 건별 금액을 비교할 방법이 없다”며 “만에 하나 일부 비품을 되팔아도 알아내기 어렵다. 개선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인건비의 투명성도 제기됐다. 김태건 미국 공인회계사는 “내역서상에 정기적 인건비와 비정기적 인건비 구분이 없어 집행의 적정성을 확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의원 대다수가 입법보조, 지역관리, 선거 등의 이유로 인건비를 지급하고 있으나 ‘유급사무원 인건비’ ‘직책보조비’ ‘용역 계약 급여’ 등으로만 기재해 구체적 내역을 파악할 수 없게 해놓았다는 것이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손재호 회계사는 인건비 지급이 대개 계좌이체 방식으로 이뤄지는 걸 비판했다. 그는 “인건비의 경우 원천징수하고 지급하는 게 옳은데, 그 과정이 없이 통장 입금으로 처리하는 듯 보인다”며 “실제로도 그렇다면 과세 차원에서 문제”라고 했다. 제대로 과세와 납세가 이뤄졌는지 의문이란 취지다.

특수한 관계가 있는 자에게 거래를 몰아 준다는 오해의 소지가 있는 대목이 일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태건 미국 공인회계사는 손혜원(서울 마포을)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예로 들었다. “사무실 임대료를 H컨설팅㈜에 내고 있는데, 그 회사에 디자인 용역도 거의 두 달에 한 번씩 추가로 주고 있고 페이스북 라이브 촬영과 관련한 비용도 집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회계보고서에 따르면 손 의원은 ‘후원회 사무실 임대료’(월평균 220만원)와 ‘페이스북 라이브 알바시리즈 장소 사용료’(363만원), ‘검찰 알바 공개방송 진행료’(165만원), ‘의정활동 정책자료집 발간비’(97만원), ‘현수막·자료집 표지 디자인’(38만원) 등 명목으로 지난해에만 3743만원을 H컨설팅에 지급했다. 이에 대해 손 의원은 “당과 관련된 디자인 작업이나 지역구 관련 디자인 업무 등 같이해야 할 일이 많아 같이 사무실을 얻게 된 것”이라며 “월세의 30%를 우리 쪽이 부담하는 전전세 형태로 사무실을 쓰고 있고, 이번 지방선거 일도 같이하고 있다. 업무 편의를 위한 것이지 다른 이유는 없다”고 해명했다.

이총희(左), 김태건(右)

이총희(左), 김태건(右)

의원들의 차입금 처리를 둘러싼 ‘오해 소지’도 거론됐다. 이는 후원금 회계 처리 방식이 수입·지출만 표기하는 단식부기 방식인 데서 비롯됐다.

이총희 회계사는 “정부 회계도 자산·부채·수익·비용을 구분하는 복식부기가 도입됐는데 국회의원들의 회계처리는 여전히 용돈 기입장 같은 단식부기”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방식은 정보를 이용하는 유권자들도 혼동할 수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며 “차입금의 경우 국회의원이 빌린 돈인데, 이를 후원금 수입에 잡아뒀다가 나중에 지출 형태로 갚는 것은 중간 과정이 드러나지 않아 투명하지 않은 처리로 비칠 수 있다”고도 했다.

특별취재팀=박성훈 기자, 안희재 인턴(고려대 사회4)·공민표 인턴(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park.seong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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