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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초 천지’된 도심 거리 … 청소 비용만 한 해 80억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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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흡연자들이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종각의 한 건물 앞에 몰려있다. [임선영 기자]

흡연자들이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종각의 한 건물 앞에 몰려있다. [임선영 기자]

지난달 29일 낮 12시 서울 종로구 종각 젊음의 거리. 두 건물 사이의 한 좁은 골목길에 흡연자들이 모여들었다. ‘휙~’ 한 남성이 다 피운 담배꽁초를 손가락으로 튕겼다. 이 꽁초는 다른 사람들이 이미 버리고 간 꽁초 30여 개 옆으로 떨어졌다. 이곳에서 약 5m 떨어진 건물 앞은 20분 동안 흡연자 40여 명이 다녀갔다. 이들이 머물다 간 자리엔 40여 개의 담배꽁초가 남았다. ‘금연구역’ 스티커가 붙은 한 골목길은 바닥에 갈라진 틈 사이까지 꽁초들이 수두룩했다. 환경미화원 김모(50)씨는 “하루에 서너 번 치워도 흡연자들이 몰리는 곳은 올 때마다 바닥이 하얗다”고 말했다.

서울 곳곳 무단투기로 미관 망쳐 #자치구 단속원 부족 대응 골머리 #흡연자들은 “버릴 데 없어” 불만 #구리시는 꽁초 주워오면 보상금

‘꽁초 천지’가 된 거리 곳곳이 몸살을 앓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담배꽁초 무단투기 단속 건수는 2015년 6만5870건, 2016년 6만8619건, 2017년 7만2789건으로 증가했다. 정확한 통계수치는 없지만, 실제로 전국 거리에 버려지는 꽁초 개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 담배 판매량은 2017년 한해 34억4000만갑이었다(기획재정부). 하루 평균 942만갑(1억 8800만 개비 추산)에 이른다. 지난해 세계보건기구(WHO)는 세계 금연의 날(5월 31일)을 맞아 ‘담배와 담배가 환경에 끼치는 영향’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펴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담배는 세계에서 매일 150억 개비가 팔리는데, 이 중 3분의 2가 땅바닥에 버려진다.

이성규 국가금연지원센터장은 “골목길 등지의 ‘숨은 흡연자’들이 뒤처리마저 외면하면서 도시의 풍경을 파괴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에선 지난해 담배꽁초 등으로 더럽혀진 서울의 빗물받이 약 47만개를 청소하는 데 약 80억원을 썼다.

종각의 빗물받이, 벽면의 틈 등에 버려진 담배꽁초들. [임선영 기자]

종각의 빗물받이, 벽면의 틈 등에 버려진 담배꽁초들. [임선영 기자]

폐기물관리법상 담배꽁초 무단투기는 5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단속·수거 모두 지방자치단체나 자치구의 몫이다. 서울의 경우 일반적으로 각 자치구에서 2~10명으로 구성된 단속반을 운영한다. 하지만 버려지는 담배꽁초에 비해 단속원 인원이 부족하다 보니 하루에 한 건을 단속하지 못하는 자치구들도 있다.

흡연자들은 반대로 “피울 곳도 버릴 곳도 없다”고 불만이다. 전국의 공중이용시설(실내) 금연 구역은 134만3458곳에 이른다. 지자체나 자치구가 정하는 실외 금연 구역은 10만9082곳이다. 반면 공중이용시설 내 흡연실은 4만2251곳이다. 또 실외 흡연실(개방형·폐쇄형 포함)은 632곳에 불과하다. 흡연자 유재혁(25·직장인)씨는 “금연 구역이 늘어나 담배를 숨어서 피면서 꽁초를 마구 버리는 것 아니냐”면서 “꽁초 수거함을 두거나 흡연실을 늘려달라”고 말했다. 서울의 쓰레기통은 1995년 약 7600개에서 현재 약 5900개(지난해 기준)로 줄었다. 쓰레기 종량제가 실시되면서 무단투기를 예방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담배꽁초로 골머리를 앓는 지자체는 분주하다. 경기도 구리시에선 지난 4월 16일부터 시민을 대상으로 꽁초를 주워오면 한 개에 10원씩 보상해주고 있다. 한 사람에게 주는 돈을 한 달에 3만원으로 제한해 올 8월까지 진행할 예정이다. 45일간 시민 317명이 98만5550개비를 수거해왔다. 시는 수거된 꽁초를 퇴비로 재활용할 계획을 갖고 시 청사 앞 흡연 부스에 꽁초를 퇴비로 분해하는 기기도 한 대 뒀다. 경남 고성군은 유흥가 등지에 높이 약 1m인 꽁초 수거함 10개를 설치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흡연자가 담배꽁초를 책임감 있게 처리하는 의식 개선이 시급하다”면서도 “금연 구역이 아닌 곳엔 쓰레기통을 두거나 흡연 공간을 확보해 꽁초 처리시설을 갖추는 식으로 현실적인 대안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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