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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압기기 회사가 1년에 두 차례 공장 멈추는 까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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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DY 직원들. 왼쪽부터 이현승·이충노·남성우·윤동일·양근우·최성일·박성국송승주씨. [프리랜서 오종찬]

DY 직원들. 왼쪽부터 이현승·이충노·남성우·윤동일·양근우·최성일·박성국송승주씨. [프리랜서 오종찬]

1978년 설립된 중견 기업 DY(옛 동양기전)는 굴삭기 등에 쓰이는 유압기기, 윈도 모터 같은 자동차 부품, 자동세차기 등을 생산한다. 국내 3개 사업장(아산·익산·창원)과 중국·미국 등 해외 공장에서 한 해 7000억원가량의 매출을 올린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이 회사 생산라인이 올스톱될 때가 있다. 상·하반기 한 차례씩 있는 독서토론 시간이다. 사업장별로 독서토론을 하는 날은, 전 직원이 공장 가동을 멈춘 채 한 시간 동안 독후감 발표, 책 내용 정리에 매달린다. 창업주 조병호(72) 회장이 1991년 도입한 강력한 사내 독서 프로그램이다.

책 읽는 마을 ③ DY 독서토론 #전직원 조별 토론 27년째 운영 #승진하려면 독후감도 잘 써야 #“책 읽으면 세상 보는 눈 달라져”

지난달 23일은 DY 익산공장이 독서토론을 하는 날이었다. 평소 일과를 마치는 시간보다 한 시간 빠른 오후 4시, 150여 명의 공장 직원들이 차례로 공구를 내려놓는다. 자동세차기 조립공장 한쪽 휴게실로 하나둘씩 모여든다. A조 독서토론 모임이다. 회사는 상반기 필독서로 심리학자 김경일 아주대 교수의 『지혜의 심리학』, 일본 작가 오쿠다 히데오의 장편소설 『우리 집 문제』, 역시 일본 작가가 쓴 교양서 『지성만이 무기다』, 이렇게 세 권을 지정했다. 휴게실에 모인 A조 8명은 『지혜의 심리학』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회사는 책 선택에 따라 세 그룹으로 나뉜 직원들을 토론하기 적당하도록 다시 7, 8명씩으로 쪼갠다.

여러 개의 A조, B조, C조가 만들어지고 토론 때마다 모임 구성원이 바뀌게 된다. 일과 중에 좀처럼 만날 일이 없었던 직원들이 섞여 토론하며 서로에 대해 좀 더 알게 되는 시간이다.

골프카 생산라인장을 맡고 있는 윤동일(40) 대리가 말문을 열었다. 그는 이날 토론모임의 조장이다.

“책 전부 읽으셨죠. 저부터 시작해서 오른쪽으로 한 분씩 돌아가며 느낀 점을 말하도록 하겠습니다.”

윤 대리는 책 속에 나오는 ‘인지적 구두쇠’라는 개념에서 느낀 점이 많았다고 했다. 인지적 구두쇠는 인간 두뇌가 인체의 다른 부위에 비해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생물학적으로 머리 쓰기 싫어하도록 만들어져 있다는 내용이다. “골프카를 조립할 때 새로운 혁신이 잘 나오지 않는데 나도 모르게 인지적 구두쇠가 된 건 아닌가 반성하게 되더라고요.” 박수가 터졌다.

옆에 앉아 있던 최성일(45) SCM(자재 구매) 팀장이 이렇게 호응했다. “윤 대리가 말한 것처럼 나도 많은 생각을 하기 싫어서, 눈앞의 불안에서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기 위해 그때그때 의사결정을 내리지 않았나, 되돌아보게 되더군요.”

자동세차기를 조립하는 남성우(27) 사원은 “회사 일이 힘들다기보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힘들어서 회사를 그만두는 사람들이 있는데, 행복은 관계에서 온다는 대목이 마음에 와 닿았다”고 했다. 그는 2013년에 입사했다.

조병호 회장은 회사 초창기 일본으로 기술을 배우러 다녔단다. 곳곳에서 마주친 일본인의 독서열기에 놀랐다. 그래서 4년 과정의 독서대학을 시행한 데 이어 지금과 같은 독서 프로그램을 정착시켰다.

DY 직원은 1년에 최소한 4권의 책을 읽어야 한다. 읽은 책에 대한 독후감을 써내야 하고, 그중 두 권에 대해 동료 직원들과 토론을 벌인다. 또 써낸 독후감이 일정 수준 이상이어야 승진 자격이 주어진다. 독서를 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구조다.

이런 독서경영의 효과는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다. 비용은 보인다. 독서토론을 하느라 3개 사업장을 한 시간씩 놀리는 비용이 한 번에 1억원가량이란다. 회사는 도서구입비로 한 해 5000만원을 쓴다. 독서지도사 고용, DY 문학제 등 독서 행사까지 치면 비용은 불어난다.

조 회장은 최근 사원 간담회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나는 경영효율을 위해 독서하자는 게 아니다. 사원들의 독서율을 빠르게 올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한 번 독서가 습관이 되면 그 효용성은 말할 것도 없고, 근본적으로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더디 와도 오래 가는 독서의 감동처럼 길게 보는 경영철학이었다.

익산=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2018 책의 해 조직위원회는 우수 프로그램에 100만원을 지원하는 ‘시민 책·독서 프로그램’, 2000만원까지 지원하는 ‘책마을 지정 시범사업’, 1000만원씩 지원하는 ‘지역별 책 플러스 네트워크’ 공모를 15일까지 받는다. e메일(together2018book@gmail.com) 접수. 문의 02-6959-7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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