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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 쌩, 택시 끼익, 도로 뚝 … 곳곳서 마음 졸인 자전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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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29일 서울 종로3가에서 택시가 자전거전용차로를 침범해 정차하자 자전거 탄 시민이 피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29일 서울 종로3가에서 택시가 자전거전용차로를 침범해 정차하자 자전거 탄 시민이 피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지난 28일 오후 1시 서울 종로2가 교차로. 서울시 공공자전거 ‘따릉이’를 타고 자전거전용차로를 달리던 기자는 출발 5분 만에 멈춰야 했다. 삼일로 방향으로 우회전을 시도하는 버스와 승용차가 줄을 지어 전용차로를 점령했기 때문이다. 종로3가 교차로에선 속도를 높인 차들이 따릉이를 추월해 우회전했다. 기자가 급정거하지 않았다면 충돌을 피할 수 없었다.

종로 전용로 직접 달려보니 #승하차 위한 침범, 끼어들기 예사 #길 한가운데 막은 불법 주정차도 #폭 좁고 일부구간 전용로 없어져

다음날인 29일 오후 2시 종로3가 자전거전용차로. 택시와 승용차들이 ‘슝’ 소리를 내며 기자가 탄 따릉이 옆을 빠르게 지나쳤다. 간격은 50㎝도 안 됐고 차량 분리대도 없었다. 기자는 차와 부딪힐까 바짝 긴장하며 페달을 밟아야 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개통한 지 두 달이 다 된 종로 자전거전용차로의 안전문제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지난 4월 8일 문을 연 이 도로는 광화문우체국에서 동대문종합상가 부근을 잇는 2.6㎞ 편도 차로다. 도심에서도 시민들이 편하게 자전거를 탈 수 있게 한다며 서울시가 설계했다. 개통 초기부터 차량이 불법 침범하는 일이 잦아 자전거 이용자가 위험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에 서울시는 단속 요원을 24명에서 84명으로 늘리고, 폐쇄회로TV(CCTV)도 6대에서 10대로 늘렸다. 7월부터는 전용차로 침범 차량에 최대 6만원의 과태료도 받을 예정이다.

택시, 승하차 위해 수시로 차로 침범  

하지만 28~29일 기자가 자전거로 달린 전용차로에선 사고 직전의 아찔한 상황이 여전했다. 도로 곳곳에선 손님을 태우거나 내려주기 위해 전용차로를 침범하는 택시가 많았다. 도로교통법상 택시가 승하차를 위해 자전거전용차로에 잠시 진입하는 건 허용된다. 하지만 종로1가와 종로4가 부근 전용차로에선 승합차와 트럭이 아예 차로를 막고 불법 주·정차를 했다. 답답한 일부 시민은 자전거를 손으로 끌고 차로로 차량을 지나갔다. 차량 사이를 비집고 전용차로로 끼어드는 오토바이도 위협적이다.

여기에 차선 분리대는 좌·우회전 교차로 등에만 설치돼 있다. 자전거는 최고 시속 50㎞로 주행하는 승용차나 버스와 나란히 달려야 했다. 차량과 접촉할까 봐 긴장 속에 자전거를 타야 한다. 하지만 서울시는 “분리대를 전 구간에 설치하면 오히려 승하차하는 버스나 택시 등이 분리대에 부딪혀 더 큰 사고가 날 수 있다”는 입장이다.

 29일 서울 종로 자전거전용차로를 자전거로 직접 달린 이승호·김현수 기자. [변선구 기자]

29일 서울 종로 자전거전용차로를 자전거로 직접 달린 이승호·김현수 기자. [변선구 기자]

일부 구간에선 전용차로 '실종' 

종로5가 이후부턴 전용차로가 아예 사라지기도 했다. 대신 ‘자전거 우선도로’가 등장했다. 이는 일반 차로로 자전거가 자동차와 같은 차선에서 달리도록 허용했을 뿐이다. 차량과 오토바이가 자리를 차지해 실제 자전거 운행은 힘들었다.

지난 28일 서울 종로1가 인근 자전거전용차로의 모습. 한 1.5t 트럭이 전용차로 위에 불법주차돼 있다. [이승호 기자]

지난 28일 서울 종로1가 인근 자전거전용차로의 모습. 한 1.5t 트럭이 전용차로 위에 불법주차돼 있다. [이승호 기자]

전용차로의 폭이 1.5m로 자전거 한 대 정도만 지나갈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네덜란드나 영국의 자전거도로 폭은 3m로 종로 전용차로의 두 배다. 서울시 관계자는 “교통량이 많고 버스 전용차로 등으로 인해 일반차도가 부족해 부득이하게 일부 구간을 자전거우선도로로 대체했다”며 “자전거 도로 폭도 더 늘리기가 힘들었다” 고 말했다.

시민들 "차라리 인도가 더 안전"

이에 시민 중에는 전용차로를 포기하고 아예 인도에서 자전거를 타는 경우도 많았다. 29일 인도에서 만난 자전거 이용객 김주영(27)씨는 “과거 전용차로로 끼어드는 오토바이에 놀라 자전거에서 넘어질 뻔했다”며 “이후 차라리 인도에서 자전거를 타는 게 안전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인도에서 걷던 시민들과 자전거 이용자가 부딪힐 위험이 커졌다.

전문가들은 기존 차로와 자전거 전용차로가 ‘동거’하는 것이 근본 문제라 지적한다. 장상호 한국교통안전공단 교수는 “전용차로를 색깔로만 구분한 채 운행속도가 다른 자전거와 차량을 같이 다니게 한 것은 위험하다”며 “분리대를 전용차로에 모두 설치할 수 없다면 기존 인도에 따로 연석을 두고 자전거 도로를 만드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강경우 한양대 교통물류공학과 교수는 “단속만으론 자전거 이용자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며 “전용차로 폭 확대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시도 이 같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 서울시는 종로 자전거전용차로에 이어 종로~청계천변~종로 간 도심 환상형 자전거도로를 조성할 예정이다. 2020년까지 여의도~광화문~동대문~강남을 잇는 자전거도로망을 만든다는 것이 서울시의 계획이다. 김미정 서울시 자전거정책과장은 “7월 이후 공사에 들어갈 청계천변 자전거도로는 차선 분리대를 설치해 만들 계획”이라며 "다만 이곳도 도로변 상점이 많고 오토바이 통행이 잦아 일부 구간은 주민 협의에 따라 분리대가 설치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승호 기자, 김현수 대구일보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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