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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칩」도 "지적소유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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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16면

정부는 최근 반도체 칩의 회로배치를 지적소유권의 하나로 보호하라는 선진국의 압력을 받아 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미 미국은 한-미 통상협상과정에서 수 차례 반도체 칩 보호법 제정을 요구해 왔으며 WIPO(세계지적소유권기구)도 89년 5월 보호조약을 만들 예정이다. 반도체 칩 보호의 의미와 그 대책을 알아본다.
반도체 칩 보호는 칩의 복사를 막기 위한 법적 장치다. 즉 판매되고 있는 칩을 뜯어 내용을 복사해 불법 제조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것이다.
반도체를 만들려면 시스팀 설계·논리회로설계 등을 거친 다음 제조공정에 들어간다. 이때 설계대로 소자를 배치해 칩으로 꾸미는 방법은 핵심기술은 아니나 이를 모방, 역조작하면 손쉽게 설계기법을 복사할 수 있다.
따라서 회로소자와 도선의 배치상태 등 칩의 표현방식이 보호대상이다. 이 회로배치는 특허의 대상인 신기술이라기보다는 저작권에 가깝다.
이 법은 79년 미국에서 신개발 반도체가 경쟁사에 복사되는 일이 잦아 처음 거론됐고 후에 자국의 반도체기술보호를 위해 84년 10월 법을 만들었다. 일본도 85년 이에 대응하는 법을 제정, 기득권 보호에 나섰다.
유럽국가는 EC를 중심으로 86년에 지침안을 작성해 87년11월7일까지 국내법으로 입법하도록 결의했다. 이에 따라 영국·프랑스·서독 등 6개국이 자체법을 제정했다.
선진국들은 국내법에 그치지 않고 WIPO를 통해 세계적으로 보호를 받으려 압력을 넣고 있다. WIPO는 개도국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내년 워싱턴에서 열리는 회원국 의교회의에서 조약안을 확정시킬 전망이다.
칩 보호법의 관련부처는 과학기술처와 특허청. 아직 주무부처는 정해지지 않아 각자 입법검토를 하고 있다. 문제는 칩 보호법은 특허와는 다른 점이 많다는 것.
우선 신청이 들어오면 심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등록만 받는다. 따라서 등록즉시 보호가 되며 그 내용이 공개되지도 않는다.
회로배치를 저작권으로 인정하고 제품의 사이클이 짧으므로 특별법으로 보호하기 때문이다. 반면 특허는 글로 자세한 내용을 설명해야하고 공고되어 자연히 널리 알려진다. 또한 특허내용이 활용 안되면 공익을 위해 취소하거나 재조정도 가능하다. 그러나 칩 보호는 그 활용을 강제로 실시하기 어렵다.
더우기 미국은 칩 보호와 관련, 복제된 칩이 사용된 제품까지도 유통을 못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회로배치의 특허기간은 10년 정도로 이제 겨우 반도체 생산국이 된 우리 나라는 막대한 기술료의 지급 없이는 해외수출이 불가능하다.
국내 반도체산업 가운데 아직 독자적 기술이 없는 소량 다품종 제품은 외국업체가 국내에 등록해 영향을 받게된다. 국내에서 대량생산되는 기억용 반도체는 어느 정도 기술이 확보돼 큰 문제는 없다. 따라서 가능한한 90년 이후로 법제화를 미뤄 기술기반이 마련된 뒤 시행되길 업계는 바라고 있다.
특허청 허정훈 심사관은『미·일등은 한국을 주요 규제국가로 삼고있다』며 『활용조건을 붙이고 보호기간을 짧게 하는 등 입법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고 역설했다.

<장재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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