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줄 끊긴 하마스 파산 지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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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미국과 이스라엘의 자금줄 차단으로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자치정부가 고사 위기에 놓였다. 15일엔 월급을 제때 받지 못한 팔레스타인 경찰들이 관공서와 주요 도로를 점거해 농성을 벌이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알자지라 방송은 "한두 달 안에 지원이 없으면 팔레스타인은 큰 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스라엘과의 공존을 추구해 왔던 파타당 집권 시절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미국.유럽연합(EU)의 원조자금과 이스라엘이 주는 관세이체금에 재정을 의존해 왔다. 그러나 올 1월 총선에서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무장단체 하마스가 파타당을 압도적인 차로 누르고 정부와 의회를 장악하면서 사정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이 돈줄 죄기에 나섰기 때문이다. 미국과 EU는 곧바로 10억 달러에 달하는 원조를 동결했다. 자치정부 연간 세수의 절반에 달하는 금액이다. 이스라엘도 관세이체를 중단했다. 이로 인해 2월부터 자치정부 세입의 30%에 달하는 월 5500만 달러가 들어오지 않았다. 하마스 정부는 출범 두 달도 안 돼 파산 지경에 이르렀다. 지난달부터는 공무원 임금 지급도 어려워졌다. 전 집권당이 남겨준 것은 13억 달러의 부채밖에 없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 같은 공조는 하마스의 강경 입장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것이다. 총선 이후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인정, 무력투쟁 포기, 기존 평화협정 준수를 하마스에 요구했다. 하지만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점령지 철수가 우선돼야 한다며 이를 거절했다.

하마스 정부는 아랍권의 도움을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눈치를 보고 있는 중동의 산유국들은 머뭇거리고 있다. 하마스 최고지도자인 칼리드 마슈알은 14일 이란을 방문해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핵 문제로 서방과 대치 중인 이란이 큰 도움을 주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다만 중동에서 영향력을 키우려는 러시아가 하마스를 도와주겠다고 나서 주목받고 있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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