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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하마·곰·토끼에게 똑같이 나무에 올라가라는 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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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손민원의 성·인권 이야기(10)

아들에게 "넌 꿈이 뭐니?"라고 물었을때 좀 더 거창한 꿈을 이야기하길 바랬다. [사진 smartimages]

아들에게 "넌 꿈이 뭐니?"라고 물었을때 좀 더 거창한 꿈을 이야기하길 바랬다. [사진 smartimages]

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일 때다. “넌 꿈이 뭐니?”라고 물었다. “요크셔테리어 키우기요”라고 대답하는 아들에게 한심한 듯 “아니, 그렇게 동물이 좋으면 최소한 동물병원 의사라는 꿈이라도 가져야 하는 것 아냐?”라고 비난(?)했다.

세월이 지나 중학교 3학년이 된 아들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다그쳤다. “오늘 성적표 받았어?” 아들이 성적표를 받았다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는 가방을 뒤져 성적표를 꺼냈다.

“아니, 지난번 예상했던 점수하고 왜 달라? 수학도, 영어도…. 어휴, 어쩌면 좋아. 그렇게 게임만 하더니 참 잘했다, 잘했어. 그럼 반장 ○○이는 수학이 몇 점이야? 이번에 수학경시대회 나가야 하는데, 교장 선생님 추천서가 필요하대. 이렇게 해서 어떻게 추천서를 받니? 열심히 좀 하지? 너 또 계산에서 실수했구나. 넌 항상 덜렁거려 맞을 문제도 틀리더라. 이건 몰라서 틀리는 것보다 더 바보 같은 짓이야.”

집에 도착한 아들에게 숨 돌릴 틈도 주지 않고 한숨 섞인 비난과 공부 잘하는 친구와의 비교 등 온갖 정서적 학대를 퍼부었다. 그러곤 아들을 향해 다시 한번 공격의 언어를 날린다. “오늘 ○○학원 최상위반으로 올라가는 승급시험 있는 날이야. 식탁 위에 샌드위치가 있으니 빨리 먹고 나가야 돼.” 그리고 아들의 등을 떠밀어 차에 태웠다. 나는 아들의 마음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렇게 하는 것이 아들을 위하는 것이라 믿고 행동했다.

아들은 스트레스 주면 안 되는 병

공부를 잘해야 들어갈 수 있다는 고등학교를 준비하던 아들의 몸에 이상 증상이 나타났다. 의사들은 병의 원인이 스트레스 때문이라 말했다. [중앙포토]

공부를 잘해야 들어갈 수 있다는 고등학교를 준비하던 아들의 몸에 이상 증상이 나타났다. 의사들은 병의 원인이 스트레스 때문이라 말했다. [중앙포토]

공부를 잘해야 들어갈 수 있다는 고등학교를 준비하던 아들의 몸에 이상 증상이 나타났다. 동네 병원에 갔더니 “큰 병원에 가보셔야 할 것 같아요”라는 의사의 말에 난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 찾아간 대학병원 몇 곳에서 의사들은 한결같이 ‘이 병은 특별한 약이 없어요. 그저 스트레스를 주지 않고 편하게 살게 해 주세요’였다.

평상시 내가 알던 아들은 시험점수가 떨어져도 그저 태연하고 더 노력해서 최고가 되는 것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들은 허리띠 졸라매고 학원비를 대느라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다시피 하는 ‘열혈 엄마’에게 1등을 안겨주기 위해 나름대로 부단히 노력해 왔다는 것을 알았다.

‘도대체 내가 내 아들에게 무슨 짓을 했나!’ 그동안 사랑하는 자녀의 미래를 위해 내가 했던 일은 엄마로선 최선이라 생각했지만 내 아들에겐 조금씩 쌓여 가는 ‘독’이었다. 그 독은 아들을 병들게 하고 있었다. 몸과 마음의 상처를 입으면서까지 남들이 알아주는 좋은 고등학교,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할까? 그 목표를 달성한다면 이 아이는 행복의 티켓을 얻는 것일까?

자식이 건강에 위협을 받고 나니 공부는 둘째고 ‘건강하고 씩씩하게만 자라다오’라는 간절한 소망만이 나의 바람이 됐다. 남들보다 더 좋은 고등학교에 입학해야 한다는 욕심, 소위 명문 대학만이 최선이라는 욕심을 버리고 나니 아들과 함께할 수 있는 경험이 많아졌고 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아들이 원하지 않는 학원은 모두 접을 수 있었고, 학교에 갔다 오면 충분히 쉬고 간식을 먹을 시간도 생겼다. 밤에는 충분히 잠자고, 주말에는 가족 모두 뒷산에도 올랐다. 아들과 여행도 계획하고, 성당 봉사활동을 할 여유도 생겼다.

우리 부부는 아들의 목소리를 잘 들으려 귀를 기울이고, 그 의견을 존중하려 노력했다. 큰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그리고 엄마인 나도 변했다. 자녀에게 과도하게 주었던 관심과 시선을 분리해 나 자신에게 돌리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우리 집 아이가 겪었던 과한 학업으로 인한 병적인 스트레스를 현재 많은 학생에게서 보고 있다. “벚꽃의 꽃말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그럼 10 to 10 math는 뭔지 아세요?” 생소한 질문에 답을 못하자 “벚꽃의 꽃말은 ‘중간고사’예요. 그리고 주말에만 열리는 아침 10시부터 저녁 10시까지의 수학학원을 지칭하는 말이 ‘텐 투 텐’이에요”라며 웃었지만 슬픈 현실이었다.

2% 아동만 부모의 학업 목표 성취

아이들은 학교 또는 사회에서 꿈의 높은 장벽을 발견한다. 기대에 못 미칠 때 부모로부터 받는 비난을 감수하고 학교에서는 보이지 않는 차별을 몸으로 익히며 조금씩 좌절한다. 우상조 기자

아이들은 학교 또는 사회에서 꿈의 높은 장벽을 발견한다. 기대에 못 미칠 때 부모로부터 받는 비난을 감수하고 학교에서는 보이지 않는 차별을 몸으로 익히며 조금씩 좌절한다. 우상조 기자

우리의 아이들은 모두가 다르다. 동물에 비유하자면 원숭이·하마·곰·토끼·거북이…. 너무나 다른 특성을 지닌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똑같이 ‘저 나무 위에 빨리 올라가라’고 한다. 이 구조에선 당연히 원숭이의 특성을 지닌 상위 2% 아동만이 그 요구를 완수한다. 하마·곰·토끼·거북이 등은 각자 잘할 수 있는 부분이 다르다. 그렇기에 각자에게 잘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내가 만났던 학생들은 대부분 꿈에 대한 강요를 받고 있었다. 그 ‘꿈’ 속에는 부모님의 가치관과 기대가 투영돼 있다. “꿈을 크게 가져라!” “너는 할 수 있어!” “조금만 더 노력해 봐!” “롤 모델을 설정해!”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 봐도 그 아이는 책 속의 롤 모델처럼 살 수 없다는 것을 느낀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사회에서 꿈의 높은 장벽을 발견한다.

기대에 못 미칠 때 부모로부터 받는 비난을 감수하고, 학교에서는 보이지 않는 차별을 몸으로 익힌다. 그러면서 조금씩 좌절한다. “난 내가 꾸는 꿈에 이를 자신이 없어. 안 될 것 같아!” “아! 나의 노력이 부족했구나!” 자기 자신에게 ‘문제 있음’으로 환원시킨다.

그런 생각은 아동·청소년을 점점 불안하게 만들고 우울하게 한다. 이 실패에 대한 불안감은 청년이 돼서도 계속되는데, 끊임없는 스펙 쌓기 도전으로 불안감을 회피한다. 때로는 불안감과 우울감은 분노가 돼 사회문제로까지 이어진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아동·청소년 행복지수가 가장 낮으며, 삶의 만족도 또한 가장 낮다는 통계가 있다. 이 원인은 아동·청소년에게 요구되는 과도한 학습 환경과 무관하다고 말할 수 없다.

‘놀 권리’ 쟁취 위해 거리로 나선 네덜란드 고교생들

우리나라 고등학생의 일과를 보면 학교를 마치고 다시 학원으로가 밤 늦게 귀가한다. 밤 10시에 귀가한다고 하면 연 3150시간을 공부한다고 볼 수 있다. [중앙포토]

우리나라 고등학생의 일과를 보면 학교를 마치고 다시 학원으로가 밤 늦게 귀가한다. 밤 10시에 귀가한다고 하면 연 3150시간을 공부한다고 볼 수 있다. [중앙포토]

몇 년 전 네덜란드 고등학생의 시위 장면을 보았다. 시위 이유는 네덜란드 교육부가 학생들에게 의무출석 시간을 늘려 연 1040시간을 학교에 있어야 한다는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었는데, 옆 나라 독일(오후 1시 30분 하교)이나 오스트리아(낮 12시 30분 하교)에 비해 길다는 것이다. 본인들의 권리 침해에 대한 저항이었다.

그렇다면 한국 학생은 어떠한가? 고등학생의 일과를 보면, 학교를 마치고 다시 학원에서 밤 10시에 귀가한다고 하면 연 3150시간을 공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아동의 권리 보호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유엔아동권리협약에서 아동(만 18세 미만)에게는 생존권·보호권·발달권·참여권 등 기본적인 권리의 보장을 명시하고 있다. 그중 발달권은 적절한 교육을 받을 권리, 여가와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권리,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권리를 비롯한 ‘놀 권리’ ‘쉴 권리’도 포함하고 있다.

현실의 우리 청소년은 ‘꿈은 이뤄진다’가 요구하는 스펙을 쌓기 위해 투쟁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경쟁 속에 하루를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쉴 권리’ ‘성장에 필요한 최소한의 잠 잘 권리’ ‘놀면서 성장할 권리’ ‘취미생활을 즐기고 문화생활을 할 권리’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존중받을 권리’는 지켜지지 않는다.

침해당한 아동 권리 찾아줘야

내가 그랬듯이 대부분의 부모는 과도한 학습이 아동 권리의 침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너의 미래를 위해 오늘 내가 갖은 권리는 잠시 묻어 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아동·청소년은 놀 권리, 쉴 권리를 빼앗겼다. 아동·청소년이 잘 놀면서 실수도 배우고, 타인에 대한 존중도 배울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 어른의 의무임을 잊지 말자.

손민원 성·인권 강사 qlov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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