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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국내 기업, 온순한 행동주의 펀드와 유대 강화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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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조명현 고려대 경영대 교수·한국기업지배구조원 원장

조명현 고려대 경영대 교수·한국기업지배구조원 원장

2000년대 이후 주주행동주의가 글로벌 자본시장의 큰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주주행동주의란 주주들이 자신들이 투자한 기업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기업과 대화하고 더 나아가 경영에 관여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러한 주주행동주의도 두 가지 유형이 존재한다. 하나는 엘리엇이나 칼 아이칸 같은 헤지펀드들이 구사하는 ‘압박형 주주행동주의’이다. 다른 하나는 중장기적인 관점의 투자를 지향하는 블랙록, 뱅가드 같은 대형 펀드나 연기금들이 채택하는 ‘온순한 주주행동주의’로서 스튜어드십코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주주행동주의는 전 세계적으로 그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한국에선 엘리엇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당시 합병 반대를 주도했다. 최근엔 현대차그룹이 발표한 지배구조개편안에도 반대하고 자신들의 의견을 강하게 개진하며 현대차 그룹을 압박하고 있다.

주주행동주의는 순기능과 역기능을 동시에 가진 ‘양날의 칼’이다. 주주행동주의는 주주를 경시하거나 지배구조가 나쁘거나 혹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소홀히 하는 기업과 경영자를 규율할 수 있는 메커니즘으로서의 순기능이 있다. 반면 압박형 주주행동주의가 주로 요구하는 자사주소각, 고배당 등이 기업의 투자 여력과 성장동력을 위축시킴으로써 장기적 기업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

SK그룹의 경영권을 위협했던 소버린, KT&G를 압박한 칼 아이칸, 최근의 엘리엇 등은 지속해서 기업가치를 높이는 데 힘쓰지 않는 한국 기업들은 향후 주주행동주의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즉, 우리 기업들에게 기업가치 제고와 주주중시라는 명제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었다.

반면 단기차익을 노리는 압박형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압력 때문에 한국기업 경영진이 장기적 관점에서는 오히려 해로울 수 있는 의사 결정을 내리게 된다면 우리 기업의 성장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장기적으로 기업가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럼 우리 기업들은 주주 행동주의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우선, 주주행동주의는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 후 기업은 주주중시경영, 좋은 지배구조구축, 사회적 가치추구 등의 구체적 행동으로 변화해야 한다. 이러한 변화를 추구함과 동시에 ‘온순한 행동주의’ 펀드들과의 지속적인 대화를 통하여 상호신뢰를 구축해야 한다, 이들은 투자기업의 중장기적 가치제고에 목적이 있기 때문에, 단기차익을 추구하는 압박형 행동주의자들이 나타나 기업의 중장기적 가치를 훼손시킬 수 있는 무리한 주가 부양책이나 고배당을 요구할 경우, 우리 기업의 손을 들어 줄 수 있는 든든한 우군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조명현 고려대 경영대 교수·한국기업지배구조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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