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는 『나는 여행기를 이렇게 쓴다』에서 멕시코를 여행할 때 다른 여행에서는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을 숱하게 들었다고 회상한 바 있다. “도대체 왜 멕시코에 가십니까?”라는 질문이다. 범죄가 들끓는 위험지대에 왜 제 발로 찾아드는지 많은 사람이 의아해 했다. 실제로 우리 외교부는 멕시코의 32개 주 가운데 12개 주를 ‘여행유의지역’ 또는 ‘여행자제지역’으로 지정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올 1월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 지대를 ‘여행금지지역’으로 선포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멕시코는 여행지로 고려할 곳이 못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재미있는 점은 멕시코가 한해 3500만명의 외국인을 유치하는 세계 8위 관광 대국이라는 사실이다(유엔세계관광기구, 2017). 멕시코를 찾는 여행객 두 명 중 한 명은 ‘안전’과 ‘치안’을 그렇게 중시한다는 미국인이다. 트럼프 정부가 아무리 말려도 미국인의 멕시코 사랑은 변함이 없다. 멕시코의 본모습이 어떨지 오랫동안 궁금했었다. 기를 써서 가고 싶은 곳이라면 그만큼 매력적인 여행지라는 뜻이어서이다. 마침내 지난달 호기심을 풀 기회를 잡았다. 유명 배우 조지 클루니가 별장을 두고 있고, 인기 가수 저스틴 비버가 연말을 보낸다는 멕시코 서부의 유명 휴양지 로스카보스(Los Cabos)를 다녀왔다.
사막과 바다 품은 멕시코 땅끝마을 #태평양·코르테스 만나 바다 물빛 아름다워 #30㎞ 해안에 올 인클루시브 리조트 즐비
바다와 사막을 아우른 풍경
로스카보스를 설명하자면 멕시코 지도부터 봐야 한다. 미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멕시코는 남한보다 20배 큰 땅이다. 서쪽과 동쪽에 모두 호쾌한 대양을 접하고 있다. 멕시코의 서해가 태평양, 멕시코의 동해가 대서양이다. 덕분에 멕시코는 길이 9331㎞에 달하는 해안선을 자랑한다.
로스카보스는 멕시코 서부 태평양으로 삐죽 튀어나온 바하칼리포르니아(Baja California) 반도의 남쪽 끝자락에 있다. 카보(Cabo)는 스페인어로 ‘곶’을, 로스카보스는 복수(複數)의 곶을 가리킨다. 바다로 툭 튀어나온 곶 두 곳에 각각 산호세델카보(San Jose del Cabo)와 카보산루카스(Cabo San Lucas) 도시가 들어서 있다. 이 두 도시와 해안가를 아울러 로스카보스로 부른다.
로스카보스는 멕시코에서도 물빛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여기에도 지정학적 이유가 있다. 로스카보스가 코르테스 해협과 태평양이 딱 만나는 지점이다. 옥빛의 코르테스와 짙푸른 태평양이 로스카보스 앞에서 부딪힌다. 두 바닷물이 섞이면서 물빛이 시시각각 변한다.
이번 여행에 동행한 루스 마리아 마르티네스 주한 멕시코관광청 대표는 “1960년대부터 멕시코는 국가적으로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는 휴양지 개발에 착수했다”며 “태평양과 접한 항구도시 아카풀코(Acapulco)와 동부 소도시 칸쿤(Cancun)이 첫 개발지로 낙점됐다”고 말했다. 칸쿤은 한국에서도 유명한 휴양지다. 5∼6년 전부터 허니문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로스카보스는 아카풀코나 칸쿤보다 늦은 70~80년대 개발됐다. 로스카보스에 도착하자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눈에 먼저 들어온 풍경은 파란 바다가 아니라 거친 사막이었다. 아카풀코나 칸쿤에는 이미 도시가 있었던 데 반해 로스카보스는 오랜 세월 황무지였다. 멕시코 정부는 로스카보스에 도로를 내고 상하수도를 뚫는 등 인프라 공사부터 했다.
지금도 로스카보스는 해안 리조트 밀집지역을 제외하면 너른 사막이다. 덕분에 짙푸른 바다와 사막이 바투 붙은 풍경이 펼쳐진다. 바다를 감상하다 눈을 돌리면 어김없이 하늘을 향해 팔을 쭉 뻗은 선인장이 보인다. 사막은 지금 로스카보스를 뻔하고 뻔한 바다 휴양지와 차별화하는 명물이다.
리조트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되는 이유
바다와 사막을 함께 품은 로스카보스는 멕시코 최고의 휴양지로 거듭났다. 지금은 길이 30㎞에 이르는 로스카보스 해안에 200개가 넘는 리조트가 즐비해 있다. 로스카보스를 찾는 여행객의 여행 방식은 대개 비슷하다. 리조트 한 곳에 여장을 풀고 수영을 하거나 스파를 받으며 여유를 즐긴다. 로스카보스에서는 리조트에서만 놀다 왔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전혀 없다. 로스카보스 리조트의 90%가 ‘올 인클루시브(All-inclusive)’이어서이다. 삼시 세끼는 물론이고, 24시간 룸서비스를 주문하거나 카페를 이용하는 것도 무료다. 바다와 맞닿은 인피니티 풀에서 수영을 하다 수영장 옆에서 바비큐를 즐겨도 된다.
로스카보스에서 올 인클루시브 리조트 3곳을 방문했다. 저마다 특색이 있었다. ‘시크릿(Secret)’은 바다 전망의 골프장을 둔 성인 전용 리조트였고, ‘드림스(Dreams)’는 테니스ㆍ말 타기 등 액티비티를 잔뜩 갖춘 가족형 리조트였다. ‘브레슬리스(Breathless)’는 로스카보스의 상징이랄 수 있는 아치형 바위 엘 아르코(El Arco)를 발아래 두는 전망을 자랑했다. 모두 1박에 20만원 정도로 로스카보스에서 ‘고가’ 리조트였다. 20만원이면 서울의 웬만한 특급호텔 숙박료보다 저렴하다. 16.5㎡(5평) 남짓한 서울 호텔의 디럭스룸보다 두세 배 넓은 객실을 혼자 차지하는 호사를 누렸다.
로스카보스에 습기라고는 전혀 없는 마른 바람이 솔솔 불었다. 철썩철썩 파도 소리를 들으며 호텔 바에 앉아 데킬라 칵테일을 마셨다. 로스카보스는 코발트 빛 바다를 유유자적 감상할 수 있는 따뜻하고 평화로운 세계였다. 누군가 로스카보스로 여행을 떠난다면 ‘왜 하필 멕시코에 가냐’고 되묻지 않을 것 같았다.
◇여행정보=멕시코는 심리적으로 멀지만 물리적인 거리는 생각보다 가깝다. 지난해 7월 멕시코 직항 노선이 개설됐기 때문이다. 아에로멕시코(world.aeromexico.com)가 인천∼멕시코시티 노선에 월ㆍ수ㆍ금ㆍ일요일 주 4회 취항한다. 비행시간은 14시간으로 인천~뉴욕 노선의 비행시간보다 30분 덜 걸린다. 멕시코시티에서 산호세델카보의 로스카보스공항까지는 국내선 항공으로 2시간 거리다. 멕시코 공식 화폐는 페소(1페소 약 55원)지만, 로스카보스에서는 미국 달러가 널리 통용된다.
로스카보스(멕시코)=글ㆍ사진 양보라 기자 bora@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