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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자단 가까스로 방북, 남북 '물밑라인' 가동됐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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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비핵화의 첫 단추로 평가되는 함경북도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 취재를 위한 한국 기자단의 방북이 23일 우여곡절 끝에 이뤄졌다.

북한은 지난 12일 외무성 공보를 통해 한국을 비롯해 미국·영국·중국·러시아 기자단을 초청했다. 15일엔 남북 판문점 연락 채널을 통해 통신사 1곳과 방송사 1곳, 각각 4명씩의 취재단을 받겠다고 했다.

하지만 16일로 예정됐던 남북 고위급회담을 무기 연기하면서 북한은 돌변했다. 한국 기자단의 방북 하루 전인 22일엔 미국 등 국제취재단 22명이 특별기를 이용해 중국 베이징을 떠나 북한으로 날아갔다. 이때까지 북한은 한국 기자단의 비자 발급을 위한 명단 접수를 하지 않았다.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를 취재하기 위한 한국 취재단 8명이 23일 서울공항에서 출발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은 정부 수송기를 이용해 원산으로 향했다. [사진 공동튀재단]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를 취재하기 위한 한국 취재단 8명이 23일 서울공항에서 출발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은 정부 수송기를 이용해 원산으로 향했다. [사진 공동튀재단]

한국기자단의 방북이 무산될 것으로 예상했던 22일 오후 9시 39분쯤 반전의 전조가 시작됐다. 통일부는 “내일(23일) 아침 취재단 명단을 다시 전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통일부 측은 “(핵실험장)폐기 행사 일정에는 아직 시간이 있다”고도 했다. 뒤이어 “지난 평창 올림픽 전례에 따라 남북 직항로를 이용하여 원산으로 이동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부연 설명이 이어졌다.

“북측이 수용한다면”이라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통일부가 구체적인 이동 경로까지 언급한 것은 이례적이어서 기자단의 방북 가능성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국제기자단의 비행기가 떠난 이후 물밑 채널이 작동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행사를 취재하기 위한 남측 취재단이 23일 서울공항에서 정부 수송기에 탑승해 출발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 공동취재단]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행사를 취재하기 위한 남측 취재단이 23일 서울공항에서 정부 수송기에 탑승해 출발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 공동취재단]

이와 관련 백태현 통일부 대변인은 23일 브리핑에서 “판문점을 통해서는 특별한 사항 없었다”고 말했다. 22일 오후 4시 남북 연락관 통신을 종료할 때까지, 또 23일 오전 9시 북한이 기자단 명단을 접수할 때까지 관련 협의가 없었다는 설명이다. 별도 라인의 가동 여부에 대해서도 백 대변인은 “정보가 없다. 예단해서 말씀드리기 적절치 않다”며 즉답을 피했다.

이에 대해 다른 정부 당국자는 “통일부에서 기자들에게 한밤중에 메시지(내일 추가 접수 시도)를 돌릴 때는 뭔가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 전쟁 중에도 대화는 이어진다”고 말했다. 별도 채널이 가동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 당국자는 어떤 라인이 돌아갔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정부는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를 ‘비핵화의 시작’ ‘북한의 진정성’ 등의 표현으로 높게 평가하고 있었던 만큼 한국 기자들의 참관 역시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일각에서는 서훈 국가정보원장이나 김상균 국정원 2차장 등이 보유하고 있는 비공개 라인을 통해 북한을 설득한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북한이 지난 16일부터 대남 비방 수위를 높이는 등 남북 간에 냉기류가 흐르는 상황에서도 한반도 상황관리를 위한 남북 간 물밑 접촉이 진행되고 있다는 분석도 가능한 대목이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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