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청년 꿈' 칠순에 이룬 음악계 거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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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십 평생 남이 만든 음악을 설명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요즘 삶의 새로운 의미를 찾았어요. 잠자는 시간만 빼고는 책 읽고 글 쓰며 살거든요. 은퇴하기 전의 삶은 헛산 것 같습니다."

누구나 지난 삶을 후회하며 산다. 가슴 깊이 숨겨둔 꿈을 펼치지 못하는 건 일상에 치여 사는 현대인들의 업보일 것이다. 칠순이 된 자칭 '노인'이 인생을 헛살았단다. 그러나 지금은 글을 쓸 수 있어 행복하다고 한다. 그의 이름은 이강숙. 한국음악계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는 소설가로 불리길 고대한다. 서울대 음대교수, KBS 교향악단 총감독,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을 역임한 음악계 거두이지만, 그건 은퇴하기 전 이력일 뿐이다. 2001년 '현대문학'에 소설을 발표.등단하면서 그는 소설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가 첫 단편집 '빈 병 교향곡'(민음사)을 발표했다. 장편소설 '피아니스트의 탄생'(2003년) 이후 두 번째 문학이다. 작가가 된 음악가에게 궁금한 게 있었다. 음악과 문학, 둘은 어떻게 다를까.

"가슴을 건드리는 건 같지만 건드리는 부분이 다른 것 같아요. 거장의 삶이 전제된 게 음악이라면, 문학은 내 삶이 전제된 것이겠지요. 가장 큰 차이는 문학은 무언가 형상화해서 만들어내는 작업이란 거지요."

청년시절 그는 문학과 음악을 놓고 고민하다 음악을 택했다. 그러나 문학을 놓지는 않았다. 65년 이청준씨가 '사상계'로 등단할 때 탈락자 명단엔 그의 이름도 있었다. 신춘문예에 떨어진 것만 너덧 차례다. 그 시절을 그는 "문학을 위해 참고 견디며 살아온 나날"이라고 회고한다.

책에 실린 단편 9편은 모두 음악이 소재다. 주인공이 음악을 하거나 음악과 관련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렇다고 전문지식이 필요한 건 아니다. 음악을 통해 사회상을 그렸다. 예컨대 표제작 '빈 병 교향곡'은 어느 이색 교향악 연주에 빗대 더불어 사는 미덕을 역설한다.

소설은 100여 명이 각자 빈 병을 불어 베토벤의 운명교향곡을 연주하는 행사를 소개한다. '미미미도 레레레시…' 하는 운명교향곡 첫 주제가 '후후후후우우우… 후후후우우우우'하고 병을 부는 소리로 재현되는 장면을, 그는 '들어 본 적이 없는 명작 중의 명작'이라고 표현한다.

"내 나이가 칠십이 됐더라고. 슬프고 싫어요. 눈만 뜨면 컴퓨터 앞에 앉아 있고 쓰고 싶은 게 잔뜩 있는데 말입니다. 마지막까지 행복하게 살아야지, 다짐합니다."

글=손민호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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