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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아트」와 80년대「영 파워」의 합동무대|뉴욕현대미술전을 말한다<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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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서양현대미술의 국내전시가 빈번해졌다. 미술품 수입개방정책에 따라 앞으로 더욱 증가할 추세다. 그러나 대부분의 전시회가 세계현대미술이 파리에서 뉴욕으로 옮겨 간지 40여 년 이상 지났음에도 미국의 작품이 대거 운송돼 와서 전시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 호암 갤러리가 기획한 뉴욕현대미술전은 한국 미술사에 큰 획을 긋는 행사라 하겠다.
이 전시의 작품 선정위원 겸 큐레이터인「킴·레빈」(Kim Levin), 화가 한만영 씨, 미술사가며 평론가인 성신여대 교수 송미숙씨의 좌담을 마련, 현대미술을 보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한다.
▲송=우선「킴·레빈」씨의 의도한 바를 듣는 형식으로 진행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한만영 씨께서는 작가의 입장에서 자유롭게 참여를 해주십시오. 작품이 어떻게 선정됐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레빈=선정의 원칙은「재스퍼·존스」와「라우센 버그」를 선두로 추상표현주의 이후의 작가, 그러니까 50년대 말, 60년대 초 이후 두각을 나타낸 작가들을 전제로 했습니다.
▲송=그런 선정에는 모더니즘 이후 혹은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깊은 관심이 드러나고 있네요.
▲레빈=나는 모더니즘보다 포스트모더니즘에 더 관심을 가졌어요. 포스트모더니즘은 현대를 사는 우리의 삶과 더 밀착된 연관성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송=한국의 미술 대중은 추상표현주의에 대해 알고 싶을 텐 데요.
▲레빈=추상표현 주의를 얘기하자면 우선 19세기 인상주의, 그러니까 유럽의 근대미술로 거슬러 올라가야겠지요. 왜냐하면 미국미술은 꽤 오랜 세월 유럽을 따라가고 있었으니까요. 먼저 프랑스 인상주의를 국부화 한 미국의 인상주의자들이 있었고 다음「아모리 쇼」(Anmory Show : 1912년 뉴욕에서 열린 대규모 유럽근대미술 거장 전. 300여 점 전시됨)가 있었죠.
그 전신은 미국 대중에게 유럽의 근대미술 현황에 대해 일깨워 그 결과 미국의 큐비스트·미래주의 작가들이 생겼죠. 이 쇼에서 예외적으로 미국 민에게 각광을 받은 것이「뒤샹」이었습니다.
▲송=그게 항상 의문이었는데요. 왜「마티스」나「피카소」보다「뒤샹」이 그렇게 미국 대중에게 어필했을까요? 프랑스보다 미국에서 더 인기를 누린 것이 다만 아모리 쇼에 출품된『층계를 내려오는 나 부』때문입니까?
▲레빈=일반적으로 그의 작품이 기계를 주요형태로 취급하고 있었던 때문이죠. 앞의 작품에서와 같이 누드를 기계로 표현한 그의 개념이 자극이 되었죠. 여하간 추상표현주의 이전까지 미국은 유럽미술을 따라가기에 급급했는데 2차대전이 일어나고 많은 유럽작가들이 뉴욕으로 망명해 와 살게 됐죠.「뒤샹」「레제」(Leger)는 물론 초현실주의 거장들.…「달리」「브르통」「에른스트」「미로」「마타」등, 또 추상미술의 대가인「몽드리앙」도 뉴욕에서 살았죠.
▲한=하지만 초현실주의자들은 대부분 전후 유럽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까?
▲레빈=그렇지만 그들이 적어도 5∼6년 이상 뉴욕에 거주하는 동안 크게 영향을 끼쳐 초현실주의와 추상 형식을 혼합한 양식으로 발전시켜 미국 젊은 세대는 그들 고유의 언어를 확립하게 됐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의 추상표현주의입니다. 추상표현주의는 최초의 진정한 의미의 미국다운 미술양식이었죠.
그때부터 현대미술사에서는 역전현상이 일어나 유럽이 뉴욕(미국)의 미술을 따라가게 되었고 유럽작가들이「풀록」이나「드·쿠닝」의 영향을 받게 됐죠. 추상표현주의자들은 매우 독창적이며 미국적인 넓고 광활한 공간, 액션, 폭발적인 에너지 등 감성을 표출했습니다.
▲송=그러면 이번 전시에 포함된「존스」와「라우센버그」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왜, 또 어떤 상황에서 그들은 추상표현주의에 반발하고 도전했습니까?
▲레빈=그들이 심각하게 작업을 하기 시작할 당시 추상표현주의는 완숙하다 못해 타성에 빠져 도식화되고 있었죠. 그것이 추상표현주의가 일어난 지 10년 뒤인 56∼57년께 이었죠.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추상표현주의는 너무 엄격해 우리 삶과 관련된 것을 찾아볼 수 없도록 그림에서 형상을 위시한 모든 요소들을 제거해 버렸죠.
▲송=이번 전시로 되돌아가서 작가의 범위에 있어서「존스」「라우센버그」「워홀」「올렌버그」같은 60년대의 팝 아트 세대와 80년대를 대표하는「슈나엘」「살르」와 같은 상대적으로 젊은 세대의 두 그룹으로 분류되는데 이 두 세대가 가진 공통점, 아니면 적어도 상호 연관성은 무엇입니까?
▲레빈=이들은 우리가 보는 실재 세계에서 대상을 구하고 있죠. 가령 얼핏보면 추상적으로 보이는「엘리자베스·머레이」의 작품에는 일상적인 식당의자와 단순한 테이블이 표현됐는데,「라우센버그」의 작품에서는 진짜 의자가 실제로 등장하고 있죠. 그러니까「머레이」같은 새 세대의 작가들이「존스」나「라우센버그」등 거장들로부터 작품의 소재나 개념, 곧 극히 범속하고 아름답지 않은 의자를 작품의 주제로 차용하고 있는데서 연관성을 찾을 수 있죠.
▲한=얘기가 좀 빗나간 감이 있습니다만 팝아트가 나온 사회적 배경에 대해 말씀 좀 해주시죠.
▲레빈=팝 작가들은 전부가 어떤 사회 고발적 비평이 그들 작품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부인합니다. 그렇게 보는 것은 비평가의 주관적인 해석이라고 볼 수 있죠. 팝아트의 발생은「케네디」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팝의 부상은「케네디」가 미국의 꿈과 이상을 상징하는 인물로 부상한 시기와 일치하며 그가 암살되기 1년 전 62년에 팝 작가들의 대 전시회가 뉴욕에서 있었죠. 팝 아트는 미국인의 자부심과 긍지가 최고조에 달한 그런 역사적 순간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봐야 합니다.
팝아트의 세대는 따라서「케네디」의 세대이며「워홀」의『슈퍼맨』연작이 좋은 예증입니다.
▲송=그렇다면 젊은 세대그룹은 어떻습니까. 중간의 70년대 세대가 빠져 있지만….
▲레빈=60년대 말(이 시기는 모더니즘의 최후 양식이라고 보는 미니멀리즘이 쇠퇴기에 접어들었던 때다) 미국은 정치·사회·문화적으로 불안과 걸망·불신으로 가득 찬 시대였습니다. 학생들의 반전운동, 흑인들의 민권운동이 잇달았고 불신과 회의로 미국사회는 병들어 있었습니다. 월남전이 주요 원인이었죠. 80년대를 대표하는 젊은 작가들이 한둘을 제외하고 대부분 60년대 말에 데뷔했죠.
▲송=작가 개개인의 특성에 관해서도 의문이 많습니다만 오늘은 여기서 줄이겠습니다.

<참석자>
송미숙씨(성신여대교수·미술사)
「킴·레빈」씨(국제평론가회 부회장)
한만영씨(서양화가·중앙대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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