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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외교구락부」 문 닫는다|정계 거물 드나들던 "40년 막후 정치무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신익희·조병옥·장택상·윤치영씨가 공동 출자해 49년 4월 문을 열었던 남산의 외교구락부(서울 남산동 2가 28)가 40여년간 해온 한국정치의 막후 무대역을 그만두고 30일 갈비집으로 변신했다.
건국초기 양식집이 귀할 때 외교구락부는 태어났지만 양식집이라기보다, 특히 정계와 재계·문화계 「거물」들이 드나들어 「고관대작들의 사랑방」으로 40여년간 행세해왔던 곳이다.
그래서 제6공화국에 이르기까지 격동의 시기마다 중요한 정치문제의 막후 협상무대가 됐던 현대사의 생생한 현장. 바로 그 외교구락부가 최근 서울시내에 속속 들어선 특급호텔들의 호화무대에 밀려 갈비·냉면 전문 대중음식점으로 「타락」하는 운명을 맞게됐다.
외교구락부가 남산 기슭에 대지 1천2백평·건평 1백40평 규모로 자리잡은 49년 4월 당시는 조선호텔과 반도호텔 등 그럴듯한 양식집도 있었지만 이곳들을 주한외국인들이 차지하는 바람에 해공 등 4사람이 모임장소로 만든 곳으로서 「외교구락부」라는 이름은 윤치영씨가 붙였다.
초기에 조병옥·장택상씨 등은 아예 지정석을 마련해놓고 다니는 단골이었고 윤보선 전 대통령과 허정 전 내각수반·김영삼 민주당총재는 최근까지도 이 업소를 찾았다.
5·16을 전후해 정치인 세대교체가 되면서 이곳에 모습을 나타낸 손님이 고 박정희 대통령, 김종필·박종규·김재귀·김형욱씨 등이었다고 이병태 사장(69)은 기억한다. 그러나 10월 유신 이후 야당탄압이 심해지던 75년 양 김씨·윤보선 전 대통령·함석헌씨 등이 외교구락부에 모여 유신반대성명서를 발표하면서 이곳은 「야당의 집」이 되기 시작했다.
외교구락부엔 김대중 평민당총재가 국회의원이 되기 전인 60년 초에, 김종필 공화당총재가 5·16 직후 제1단골손님이었으며, 김영삼 민주당총재는 장택상씨 비서관시절인 51년부터 인연을 맺어, 두고두고 3김간의 관계에도 등장한다.
80년 「서울의 봄」 당시 3김씨는 이곳에서 만나 방명록에 「사랑·믿음·소망」(김영삼), 「행동하는 양심」(김대중)이라는 사인을 남기지만 제5공화국이 출범하면서부터 외교구락부도 급변하는 정국에 함께 휘말린다.
83년5월 김영삼씨의 단식 결심·84년 민추협창립총회와 지난해 양김씨 후보단일화논의 회동에 이르기까지 숱한 야당비화가 식당 구석구석에 배어있다.
이밖에도 고 이병철 삼성회장, 정주영 현대그룹명예회장, 박흥식 화신그룹회장 등 재계인사와 이배비·김옥길씨 김수환 추기경, 한경직 목사 등 학계·문화계·종교계에 걸쳐 단골손님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
『오랫동안 양식으로 나라에 반역(?)을 했으니 이젠 한식으로 충성해야죠.』
「정치마당」 인식으로 일반손님이 외면하는 바람에 끝내 문을 닫게 된 이사장은 『이젠 밀실정치는 그만둘 때』라면서도 한 세대가 흘러감에 따라 함께 사라져 가는 「외교구락부 그 시절」을 못내 아쉬워했다. <최간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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