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투데이

부시와 후진타오의 만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지난 4년 동안 두 정상이 만난 것은 이번이 여섯 번째다. 소련이 미국의 최대 경쟁자였던 20세기 후반, 미.소 정상이 이렇게 자주 만난 적은 없었다. 특히 아이젠하워부터 레이건까지, 흐루쇼프부터 브레즈네프까지 양국 정상회담은 늘 분노 섞인 비난이나 실망으로 끝났다.

그러나 이번 정상회담에서 두 사람은 환히 웃을 것이다. 사이좋은 친구여서도, 양국 간에 갈등이 없어서도 아니다. 그렇다면 웃음의 진짜 의미는 뭘까.

미국과 중국은 분명히 경쟁자다. 이들은 21세기 말까지도 경쟁자로 남을 것이다. 양국은 이미 서로를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주시하고 있다.

중국은 매년 10%씩 국방 예산을 늘려가며 숨막히는 속도로 재무장 중이다. 또 미국의 '피후견인' 대만이 독립을 선언할 경우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위협을 서슴지 않는다. 미국의 맹방인 일본과는 영해 분쟁 중이다. 중국은 종종 미국으로부터 모욕당했다고 느끼며, 그때마다 성난 시위대가 미 대사관에 몰려가 돌을 던진다. 동아시아는 중국의 세력권이니 '미국은 물러나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중국은 최근 연 10%에 이르는 자국 경제의 가파른 성장에 발맞춰 초강대국으로서의 위상을 주장하고 있다.

이번엔 미국이 소리 소문도 없이 추진해 온 대(對)중국 봉쇄 정책을 살펴보자. 미국은 우선 일본과 군사협력을 강화했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인도와도 손을 잡았다. 과거의 적국 베트남과 경제협력을 확대했고, 호주.뉴질랜드 등 오랜 동맹국들과의 관계도 다지고 있다.

중국 입장에서 보면 이는 미국 주도의 중국 고립 전략이다. 지금까지 신.구세력의 만남은 항상 전쟁으로 끝났다. 19세기 말 독일의 부상은 제1차 세계대전을 낳았고, 일본은 러시아.중국.미국과 전쟁을 일으켰다. 그러나 과거와 현재는 다르다. 중국은 2000억 달러가 넘는 대미 무역 흑자를 포기할 수 없다. 미국도 중국이 수천억 달러를 시장에 풀어 달러화 폭락 사태를 일으키지 않도록 눈치를 봐야 할 입장이다.

전략적 측면에서도 양국은 서로가 필요하다. 미국은 중국이 북한의 핵 야망을 억제해 주기를 바란다. 중국은 미국이 러시아의 부활을 견제해 줬으면 한다. 양국은 또 까딱 잘못 계산했다간 공멸하리란 점도 잘 알고 있다. 서로가 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21세기의 두 거인에게는 매우 좋은 기회가 주어진 셈이다. 비록 공포와 야심에 의해 움직이곤 있지만 이들은 20세기와 같은 '피의 길'을 걷지는 않을 것이다. 양국은 상호 견제하려 들겠지만, 동시에 상호 협력해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이것이 바로 후진타오와 부시가 짧은 기간 동안 그렇게 자주 만난 이유다. 두 정상은 양국 간에 지금 무엇이 걸려 있는지 알고 있다. 잘못된 도박을 할 여유가 없다는 것도 안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은 화기애애할 것이다. 1961년 존 F 케네디와 흐루쇼프가 빈에서 만났을 때와는 다르다는 얘기다. 당시 흐루쇼프는 젊은 미국 대통령을 겁줄 수 있다고 생각했고, 모스크바로 돌아오는 길에 핵 미사일을 쿠바에 배치키로 결정했다. 이 같은 오판은 하마터면 제3차 세계대전을 일으킬 뻔했다. 오늘날 세계 지도자들은 지난 세기의 전임자들보다 훨씬 똑똑해 보인다. 이것이 21세기가 무시무시했던 20세기의 재판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큰 이유다.

요제프 요페 독일 디 차이트 발행인

정리=김선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