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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이렇게 쓸수 있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한 시대의 역사를 서술하는데는 몇가지 기준이 있다. 지금이 그 시대를 평가할만한 시점에 와있는가, 그 시대를 평가할만한 충분한자료가 공개되어 있는가. 이런 기준에서 최근 발간된 『대한민국사』(국사편찬위 주관)를 보면 많은 의문들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광복이후 6·25동란, 그리고 군사정권수립에서 지금의 제6공화국에 이르는 우리의 현대사를 과연 객관적으로 서술할만한 시점에 와 있는가, 그 평가를 뒷받침할만한 충분한 사료를 수집했는가, 또 부대의 역사가 당대 정권의 주도아래 쓰여질수 있는 것인가.
춘추관에서 편찬했던 『조선왕조실록』도 당대에 서술된 적이 없었다. 당대의 사관은 당대의 기록을 적고 보관했을 뿐이다. 평가와 서술작업은 후대에 이뤄졌다.
물론 당시대인이 당시대의 역사를 서술한적이 없지는 않다. 펠로폰네소스전쟁에 참여했던 「헤로도투스」의 역사서에서부터 「트로츠키」의 러시아 혁명사에 이르는 저술은 모두 시대의 증언으로서 또는 기념비적인 의미에서 높이 평가되어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객관성을 상실하기 일쑤다.
당대의 역사를 당대인이 쓸 경우 당시대의 가치판단에 묶여 보편성과 객관성을 획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대의 역사를 굳이 당대의 정권담당자가 기록으로 남기려할때 그것은 정권의 미화작업 또는 국수주의적 사관으로 전락하게 된다.
나치전범으로 처벌되었던 「게벨스」휘하의 수많은 어용역사학자들과 생물학자들은 독일인종의 우위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많은 역사를 날조했었고 독일이 세계의 중심지였음을 역설했던 지정학자들은 생존영역(Lebensraum)이라는 학설을 급조하기도 했다. 당대의 역사가 당대인의 편의를 위해 얼마나 악용될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를 우리는 나치시대에서 찾을수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대한민국사』의 편찬은 좀더 신중했어야 한다.
대한민국사라는 표제를 내건 이상 그것은 광복전후의 시기에서부터 오늘에 이르는 시대사여야한다. 시대사는 한 시대를 관통하는 사관이 있어야 한다. 이 시대를 어떠한 관점에서 봐야할 것인가라는 입론의 설정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책속에는 그러한 노력의 흔적도 없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로 분류되어 제각기 맡은 장르만을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두번째 지적할 수 있는 문제는 오늘의 역사속에서 가장 중요한 테마로 다뤄야 마땅할 광복전사의 사회구조적 변동, 미군정의 진행과정과 그에 대한 평가, 6·25와 남북분단에 관한 지금까지의 연구실적등이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축적된 각 전문분야의 연구성과를 총정리, 검토하고 그 내용을 체계화하여 보다 실증적이고 과학적인 현대사를 기술할 필요성이 대두되였기 때문에』이 대한민국사를 편찬한다는 편찬위원회의 간행사는 발간된 책의 내용과 엄청난 거리가 있다.
세째, 5·16이후의 근대화 추진과 경제발전에 역점을 두고 편찬함에 따라 결과적으로는 그것의 추진세력이었던 5·16이후의 군사정권에 민족사적 정통성을 부여하려고 했고 정권미화작업을 위한 역사서로 떨어질수 있는 독단과 위험을 보여 주었다.
끝으로 한시대의 역사를 서술함을 마치 공기를 단축시겨 급조하는 공장건설처럼, 집을 짓고 다리를 놓으며 길을 닦는 일처럼 인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이책은 일게 한다.
역사를 소중히 다루고 역사의 엄정성을 무서워했던 지난날 우리선인들의 위대한 교훈을 새기며 『대한민국사』는 앞으로 보완의 작업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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