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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한은화의 생활건축

서울시의 이상한 재건축 공모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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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한은화 기자 중앙일보 기자
한은화 중앙SUNDAY 기자

한은화 중앙SUNDAY 기자

국내 아파트 재건축 역사상 처음으로 국제설계공모전을 연다고 했다.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 수상자도 공모전에 참여한다고 서울시는 지난해부터 홍보에 열을 올렸다. 낡은 아파트를 밀어 고층 아파트를 짓고 일부 대지를 기부채납해 공원으로 만드는 획일적인 재건축 방식에서 벗어나겠다는 시도가 돋보였다. 최초의 공모전이 열린 곳은 잠실주공 5단지. 단지 전체가 아니라 잠실대교와 올림픽대로로 쭉 이어지는 V자형 가로변이 대상지다. 도로 쪽 아파트가 담이 되지 않고 도시와 잘 어우러지게 하겠다는 취지였다.

서울시는 네 팀의 건축가를 지명 초청했고, 1차전을 거친 세 팀이 합류해 총 일곱 팀이 최종 심사를 받았다. 당선자 발표일은 3월 30일이었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공식적으로 결과 발표를 하지 않고 있다. 발표일에 밝혔어야 할 당선자는 있다. 건축가 조성룡이다. 그는 잠실 아시아선수촌 아파트를 설계했고, 선유도공원을 재단장했으며 소록도 보존에 힘쓰고 있다.

생활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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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당선자의 프로필과 당선작의 이모저모는 당연히 서울시가 발표해야 했다. 재건축 아파트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보여줘야 할 게 아닌가. 더불어 2~3위도 밝히는 게 정상이다. 최근 국제현상설계공모를 했던 ‘서울로 7017’의 경우 1~3위 안에 대한 설명과 당선자 인터뷰까지 덧붙여 보도자료를 냈다.

당선자는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갖고서 60일 내(5월 30일까지) 재건축 조합과 설계 계약을 맺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선 무효가 된다. ‘우선 협상의 범위를 명확하게 명시하지 않아 문제가 됐다’ ‘조합 측에서 당선안을 완전히 고쳐달라고 요구했다’ ‘조합이 당선작 재투표를 하겠다고 움직이고 있다’는 소문이 난무한다. 조합의 욕망과 서울시가 내세운 공공성이 충돌하고 있는 모양새다.

잠실주공 5단지는 ‘꿈의 50층’을 이룬 첫 재건축 단지다. 서울시가 공공성 실험을 하는 대신 용도를 제3종 일반주거지역에서 준주거지역으로 상향 조정해준 덕이다. 35층 이하로 지어야 했던 아파트 단지는 호텔·컨벤션을 포함해 50층까지 지을 수 있게 됐다. 재건축을 앞둔 강남권 단지들이 잠실주공 5단지를 주시하고 있다. 서울시는 나쁜 선례를 만들 참인가. 당선자부터 밝히고 진행 과정을 시민과 공유하라.

한은화 중앙SUNDAY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