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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자이언츠, 서울 트윈스 … 야구 유니폼 도시를 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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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어린이날인 지난 5일 LG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의 프로야구 경기가 열린 서울 잠실구장.

프로야구 각 구단 얼터너트 유니폼 #기업명 대신 연고도시 새기는 추세 #모기업 홍보보다 팬심 확보 더 중요 #로열티 끌어내고 수익 창출 모색

LG 선수들은 가슴팍에 ‘SEOUL’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섰다. LG가 어린이날에 맞춰 제작한 ‘서울 유니폼’이다. 서울을 연고로하는 프로야구 팀은 LG·두산·넥센 등 3팀이지만 ‘서울 유니폼’을 제작한 건 LG가 처음이다. ‘서울 유니폼’에는 서울의 상징색인 단청 빨간색을 적용했다. 로고 디자인은 경복궁의 근정전 처마를 형상화했다. ‘서울 유니폼’을 제작한 LG 트윈스 관계자는 “서울을 대표하는 구단으로서 정통성을 표현하고, 팬들의 로열티를 제고하기 위해서 스페셜 유니폼을 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서울 유니폼’처럼 구단이 제작한 이벤트용 유니폼을 미국에서는 ‘서드 저지(third jersey)’ 또는 ‘얼터너트 유니폼(alternate uniform)’이라고 부른다.

‘도시’를 품은 프로야구 유니폼

‘도시’를 품은 프로야구 유니폼

최근 프로야구 유니폼은 팀의 개성과 정체성을 담은 패션으로 진화했다. 마케팅 아이템으로도 자리 잡았다. 미국 메이저리그의 영향을 받아 국내 구단들도 ‘서드 저지’ 개발에 나서고 있다.

1982년 출범한 한국 프로야구는 도시연고제를 표방하면서도 그동안 팀 이름에 도시 이름을 넣지 않는다. 구단을 운영하는 기업 이름만 쓰는 게 일반적이었다. ‘네이밍 마케팅’을 활용하는 넥센 히어로즈가 잠시 서울 히어로즈를 팀 이름으로 사용한 적이 있지만 넥센과 네이밍 스폰서를 계약을 체결한 뒤엔 팀 이름에서 ‘서울’을 뺐다. 이 때문에 국내 프로야구 구단은 ‘기업 팀’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한국 프로스포츠 중에는 프로축구와 프로농구가 팀 이름에 연고 지역 이름과 기업 이름을 함께 쓴다. 전북 현대 모터스(축구), 서울 SK 나이츠(농구) 등이 공식 명칭이다. 반면 메이저리그를 비롯한 미국 프로스포츠의 경우 팀 이름에 연고 지역명만 병기한다. 일본프로야구는 최근 도시명과 기업명을 동시에 넣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국내 프로야구에서 유니폼에 연고지 이름을 부각한 건 SK가 처음이다. SK는 지난 2005년 가슴팍에 연고지 ‘INCHEON(인천)’이란 글자를 새긴 유니폼을 처음 제작했다. 1947년 4대 도시 대항 전국 야구대회에서 우승한 인천야구 대표팀인 ‘인천군(仁川軍)’의 유니폼을 재현했다. 2005년과 2014년 한 차례씩 입다가 팬들의 반응이 좋자 2015년부터 일요일 홈 경기 때마다 이 유니폼을 입는다.

롯데는 지난해 ‘동백 유니폼’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부산을 대표하는 동백꽃 색깔에 가슴팍에는 ‘롯데’라는 기업명 대신 연고지 ‘BUSAN(부산)’을 새겨넣었다. 롯데 관계자는 “지난해 개막전에 입을 새 유니폼을 기획하다가 동백 유니폼을 제작하게 됐다. 다행히 팬들의 반응이 좋았다”며 “지난해 동백 유니폼을 입었을 때 승률도 좋았다. 최근에는 선수들이 먼저 동백 유니폼을 입자고 요청할 정도”라고 밝혔다. 롯데는 지난해 9월 2일 한화전에서 ‘부산 사랑 페스티벌’을 개최하면서 가격이 저렴한 보급형 ‘동백 유니폼’을 경기장에 입장한 모든 팬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동백 유니폼의 인기 때문인지 이날 경기는 4일 전에 2만6600장의 표가 모두 팔렸다. 현장판매 없이 입장권이 인터넷·모바일 예매로만 매진된 것은 롯데 구단 사상 최초의 일이었다.

KT도 지난해 9월 ‘수원 화성 문화제’를 기념해 ‘정조대왕 유니폼’을 만들었다. 수원 화성을 축조한 정조대왕을 상징하는 용포 이미지를 유니폼에 넣었고, 유니폼에 ‘SUWON(수원)’이란 글자를 새겼다. KT는 올 가을에도 정조대왕 유니폼을 입을 계획이다. 삼성과 NC 등도 비슷한 형태의 마케팅을 준비하고 있다.

구단들이 기업 대신 연고도시를 부각하는 마케팅에 나서는 건 프로야구단 운영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야구단 운영이 모기업의 홍보 수단이었다. 하지만 최근엔 모기업의 지원 대신 구단 스스로 수익을 창출해 독자 생존하는 방향으로 구단 운영 방식이 바뀌었다. 각 구단에겐 연고 지역 팬 확보가 모기업 홍보보다 더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이영훈 서강대 교수(경제학)는 “야구팬들은 뉴욕 양키스란 문구가 적힌 유니폼을 즐겨입지만 기업 이름이 적힌 유니폼에는 저항감이 생길 수 있다. 기업을 대신 광고해준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며 “유니폼에 도시 이름을 크게 넣을 경우 팬 충성도를 높이는데 긍정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팬 층의 확대는 구단 수익 증가로 직결된다”고 설명했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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