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악한 성고문에 철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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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부천서 성고문사건이 발생25개월, 문피고인의 구속1백5일만에 사법절차가 1차 마무리됐다.
앞으로 2심·3심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법원이 공판개시전 직권으로 문피고인을 구속한데다 대법원의재정신청결정등 그동안의 사건전개과정으로 미루어 문피고인의 유죄는 사실상 확정된 것과 다름없다.
문피고인에게 1심에서 징역5년·자격정지3년의 실형이 선고된 것은 사회의지탄을 받아온고문수사, 특히 입에 담기조차 거북스런 성고문에 대한 법원의 철퇴로 해석된다.
이같은 분위기는 전혀 뉘우침이 없는 문피고인의 법정태도나 법정최고형을 구형한 결심공판을 통해 예견할수 있었던 일이었다.
83년 한일합섬 김근조이사 고문치사사건의 김만희피고인(당시 38·치안본부특수대 경위) 이 징역7년구형에 징역4년이 확정됐던 것과 비교하면 문피고인의 형량이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수있다.
당시 김만희피고인에게는폭행치사·독직폭행죄가 적용됐으나 이번에 문귀동피고인은 준강제추행·독직폭행죄가 적용됐으므로 결과만으로 본다면 폭행치사와 준강제추행이 비슷한 비중으로 다루어졌음을 알수있다.
일부에서는 구형량이 너무 여론을 의식했다는 비판도 있었으나 선고결과를보면 재판부가 법감정이 국민감정과 동떨어질수 없다는 점과 실정법상의 처벌기준 사이의 조화를 택한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은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김근태씨고문시비사건과 더불어 제5공화국 고문수사의대표적인 사건.
특히 전례가 없던 성고문시비·관계기관대책회의의말썽·석연찮은 검찰의 처리결과 때문에 더욱 주목을 끌었던 것.
재판이 진행되면서 공소유지 지정변호사(속칭 특별검사)인 조영황변호사가공소장을 변경,성고문부분을 내세워 준강제추행혐의를 추가했으나 문피고인은범행일체를 일관되게 부인해재판부의 선고 결과가관심거리였다.
당초 대법원의 파기에따라 문피고인을 기소결정한서울고법은 재정신청대상인독직폭행·가혹행위부분만인정했기 때문에 추가된 성고문(강제추행)부분에 대한 재판부의 유죄인정여부는 양형문제 보다 사건의본질문제란 점에서 초점이됐고 결국 재판부가 유죄로 인정, 성고문사건임을 확인한데 의미가 있다.
피해 당사자인 권인숙양이 법정에 나와 피해자진술권을 행사한 것도 이사건의 특징이었다. 피해자진술권은 그동안 사문화되다시피 되어있었으나 권양이 처음으로 행사했던것.
권양은 피해자 진술을 통해 담당재판부가 관계기관대책회의 참석자들을 증인으로 채택하지 않은 점에큰 불만을 표시하고 조지정변호사에게 재판부기피신청을 내도록 요청, 큰 충격을 주었었다.
수사를 맡았던 인천지검은 당시 문피고인을 구속토록 방침을 세웠으나 관계기관 대책회의에서 불기소토록 결정했으므로 번복과정을 소상히 밝혀야 된다는게 권양의 주장.
권양은 이와함께 당시 인천지검의 수사검사팀을 증인으로 요구했고 조지정변호사도 이들을 증인으로 신청했으나 재판부가 옥봉환당시부천서장이하만 받아들이고나머지는 모두 기각했던것.
많은 국민들도 법정이 관계기관 대책회의 내용이나검찰의 결정번복 과정을 밝혀 주도록 기대했었던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재판부로서는 문피고인의 범죄행위사실과 관계기관대책회의와는 직접 관계가 없다고 판단할수 있고 특히 이들을 모두 증인으로 부를 경우 자칫 재판이 정치색을 띠게 될수가있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대해 재야 법조계에서는 국민감정으로 보면 모든 사람을 법정으로 불러당시의 잘못을샅샅이 파헤쳐주는게 좋겠지만 이같은 부담을 재판부에 주는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가많았고 결국 관계기관대책회의 부분은 역사속으로 파묻히게 됐다.
부천서 성고문사건으로 경찰의 명예가 손상된 이상으로 경찰도 치명적 타격을 입게됐다. 1심 결과만놓고보면 징역5년의 실형을 받을 피의자를 검찰이불기소처분한것은 이유야 어찌됐든 논리적으로는 설명할수가 없기 때문이다.
형사소추권을 독점하고있는 검찰이 역사를 뒤흔든중대한 사건의 실체적 진실발견과정에서뒷전으로 밀려나 방관할수밖에 없었고더구나 검찰자체가 자칫피의자로 취급당할 입장에 놓였었다는 것은 앞으로 검찰로서는 뼈저린 교훈으로삼아야 할부분이다.

<권 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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