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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놈'의 전성시대, 한진해운이 망한 또 다른 이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한진해운이 망했다. STX조선도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중국에게 당한 게 뼈아프다. 특히 부패·부실의 대명사라는 중국 국유기업에 당한 사례가 많다. 인수 합병(M&A)을 통해 몸집을 키우고, 가격 전쟁을 벌여 경쟁사를 고사(枯死) 시키는 치킨게임을 주도했다.

예전 '비효율의 끝판왕' 중국 국유기업이 아니었다. 도대체 중국 산업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건가?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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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여름 시작한 중국의 공급측 개혁. 생산시설 감축 등을 통해 과잉공급 문제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뒀다. 중국의 산업 구조조정은 수출 산업이 주를 이루는 우리 경제에도 직접 영향을 미친다. 구조조정 20개월의 현주소는 어떨까.

최근 톈펑증권은 중국 산업 이전을 다룬 보고서를 냈다. 철강ㆍ화학ㆍ자동차와 서비스업이 산업별로 빅딜 과정을 거치면서 헤쳐모여를 하고 있는 과정을 집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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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산업 이전은 과거 두 차례 있었던 산업 이전과는 질적으로 양적으로 차원이 다르다.

중국은 항일전쟁 당시 일제의 공중 폭격을 피해 서부로 공장 설비를 옮겼고 1964~70년말에는 3선 건설을 내걸고 국방공업 시설을 서남 지역으로 이전시켰다.

세번째인 이 거대한 산업 이전이 마무리될 즈음 중국 경제는 어떤 모습을 갖추게 될까. 이른바 선택과 집중에 따른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우선 산업 이전의 면면을 들여다 보자.

큰 흐름은 세 가지다.  

첫째, 전통 제조업 분야의 강자 몰아주기다. 이른바 '될 놈만 키운다'는 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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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산업의 중심 지역은 여전히 상하이다. 상하이 지역의 자동차 업체 수익은 전체의 절반에 달한다. 동베이 지역의 선양과 창춘의 자동차 산업은 허베이와 베이징으로 융합되고 있다.

중부 지역은 후베이와 충칭으로 수렴하고 있고 남부 지역은 광둥이 중심이 되고 있다. 이로써 중국의 자동차 산업은 상하이를 중심으로 북부ㆍ중부ㆍ남부의 핵심 거점 등 4개 권역으로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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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공 산업도 대마 집중도가 높아지고 있다. 산둥ㆍ허베이ㆍ장쑤ㆍ칭하이의 화학비료와 농업용 화공의 주력지로 부상하고 있다.

철강은 허베이ㆍ산시ㆍ산둥을 비롯해 생산비가 높은 서남과 화남 지역의 업체들을 싹 정리해 장쑤와 중부 지역으로 결집하고 있다. 석탄도 강철과 마찬가지로 인수합병 과정을 거쳐 네이멍구(내몽고)와 산시 지역으로 이전하고 있다.

화학섬유도 산업 이전이 뚜렷한 분야다. 동북부는 랴오닝으로 집중하고 있고 중부는 저장성으로 결집하고 있다.

둘째, 서비스업으로의 구조전환이다.  

상하이와 광저우는 여전히 자동차 산업이 핵심이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1선 도시(1급 대도시)는 제조업이 아닌 서비스업으로 주력 산업이 바뀌고 있다. 2014~16년 베이징에서 빠르게 비중이 상승하고 있는 산업은 건설과 인터넷ㆍ금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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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둥에서 비중 상승 속도가 빠른 산업은 부동산ㆍ보험ㆍ인터넷 관련 산업이었다. 상하이도 부동산과 인터넷이 주목 받았다. 2017년 기준 베이징ㆍ상하이ㆍ선전 3개 도시의 서비스업 비중은 60%를 넘어섰다. 베이징은 80%를 상회했을 정도로 주력 산업이 바뀌었다.

상하이와 선전은 각각 69%와 61%를 기록했다.

재미난 것은 서비스업이 주력 산업으로 바뀌면서 부동산 가격 상승이 뒤따랐고 이로 인해 산업 이전을 촉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1선 도시의 우수한 교육ㆍ의료 자원은 우수 인력을 끌어들이는 동력이 됐고 고수입자들이 몰리면서 부동산 가격도 급등했다.

이로 인해 저부가가치 산업은 교외 또는 다른 지역으로 이전할 수 밖에 없게 됐다. 결국 1선 도시는 고부가가치ㆍ지식 산업이 주력 산업을 이루게 됐다.

예를 들어 화웨이는 선전의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자 2014년 휴대폰 담당 부서를 둥관으로 옮긴 데 이어 2016년 디지털센터도 둥관으로 이전시켰다. 화웨이 같은 기업도 못 견딜 정도로 임대료 압력이 컸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연쇄 산업 이전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셋째, 첨단 산업의 중서부 이전 흐름이다.  

반도체ㆍ통신설비ㆍ전자부품 등 신흥 제조업은 정도는 각각이지만 대부분 1선 도시를 떠나 중부의 핵심 도시로 이전했다.

반도체는 베이징ㆍ상하이를 떠나 쑤저우로 몰리고 있고 장시의 난창은 반도체 조명산업화 기지 중 하나로 부상해 LED 조명의 보급확대와 관련 산업 육성의 거점이 되고 있다. 시안도 반도체 재료와 장비의 연구개발의 중심으로 육성되고 있다. 후베이와 장쑤는 통신설비의 메카로 거듭나고 있다.

이번 구조조정에 의한 산업 이전은 철저히 해당 산업의 국가 경쟁력 강화에 방점을 두고 있다. 수출 시장 의존도가 높은 철강만 봐도 중국 당국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철저히 약육강식의 법칙이 관철되고 있다. 강자를 더욱 강하게 만들며 가장 강한 기업들을 하나로 묶어 역량을 집중시키고 있다.

중국을 대표하는 초우량ㆍ초대형 기업을 만들어 글로벌 시장에서 장악력을 높여가겠다는 제조 강국 전략으로 풀이할 수 있다. 

덩치를 키우고 효율을 극대화한 중국의 초거대 기업의 제품들이 시장에 풀리기 시작하면 과잉생산으로 불황에 허덕이는 우리의 전통 제조업으로선 감당하기 어려운 거대한 황사 바람이 될 것이다.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 답은 중국도 알고 있지 않은가.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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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진으로 돌아가보자. 중국은 3년 전부터 해운업계에 대대적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중국 국영 해운사 코스코는 또 다른 국영 해운사 차이나시핑을 합병한 데 이어 지난해 선복량(船腹量·컨테이너선이나 벌크선 등 선박에 실을 수 있는 화물 용량) 7위인 홍콩 해운사 OOCL을 흡수해 몸집을 불렸다.

코스코는 시장 주도권을 잡기 위해 출혈 경쟁도 마다하지 않았다. 규모의 경제로 비용과 운임을 떨어뜨려 불황에 허덕이는 경쟁자들을 시장에서 밀어냈다.

선복량 세계 5위였던 한진은 그 첫 희생물이었다. 시진핑표 구조조정이 남의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차이나랩 정용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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