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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단식 투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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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이현상 논설위원

이현상 논설위원

2003년 최병렬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노무현 대통령 측근 비리에 대한 특검 도입을 촉구하며 단식에 들어갔다. 보좌진들은 최 대표를 만나기 전 꼭 양치질하고, 옷에 탈취제를 뿌렸다. 음식 냄새에 극도로 민감해진 보스를 배려한 것이다. 심지어 기자간담회 때는 술과 고기를 먹고 온 기자의 출입까지 만류했다. 최 대표는 후일 단식의 고통을 “몸이 땅속으로 꺼져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라고 토로했다.

단식의 괴로움은 겪어 본 사람이 아니면 짐작하기 어렵다. 허기는 72시간이 고비라지만 그 뒤에는 두통·복통·구취·설태·발열·저혈당·두드러기 등의 명현반응이 일어난다. 식사량을 단계적으로 줄이는 사전 준비가 없으면 고통은 더 심해진다. 그런데도 극단적 저항을 택하는 것은 마땅한 다른 수단이 없는 데다 여론의 울림이 크기 때문이다. 아일랜드공화국군(IRA)의 보비 샌즈는 66일간의 단식 끝에 체중이 71㎏에서 39㎏으로 줄어든 채 숨졌다. 동료 9명까지 따라 숨지면서 국제사회의 엄청난 반향을 불러왔다. 마하트마 간디는 일생 18회에 걸쳐 모두 145일간이나 곡기를 끊으면서 인도의 독립과 통합에 이바지했다. 민주화를 위한 김영삼 전 대통령의 23일간 단식, 지방자치제 관철을 위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13일간 단식은 한국 현대사의 물길을 바꿔놓은 투쟁이었다.

그러나 모든 단식 투쟁이 여론의 호응을 끌어낸 것은 아니다. 특히 이념 진영의 틈새가 갈수록 넓어지면서 단식이 조롱과 비아냥의 대상이 돼가고 있다. 세월호 유족의 단식장 옆에서 일부 극단 세력이 야만스러운 ‘폭식 투쟁’을 펼쳤는가 하면, 2016년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의 단식 때는 ‘웰빙 단식’이라는 비아냥이 따라붙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단식장도 예외는 아닌 듯하다. 조롱의 피자가 배달되는가 하면 난데없는 폭행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는 “처절한 진정성을 보여주겠다”며 국회 본청 앞을 농성장으로 삼았지만 네티즌 사이에선 “제대로 하는지 관찰 카메라를 달아라” 같은 냉소적 반응이 많았다. 광화문 단식 투쟁을 벌였던 한 세월호 유가족은 “나는 더한 악플에 시달렸다”는 비아냥 조의 공개 편지를 올렸다.

목숨을 내건 행위에 조롱을 보내는 세태는 서글프지만, 단식이라는 극한 투쟁이 지금 어울리는지도 돌아볼 일이다. 다들 먹자고 하는 짓인데 목숨을 건다는 말이 쉽게 나와서야 되겠는가. 그러다간 대중 앞에서 단식 공연을 업으로 삼다가 결국 입맛을 잃어버려 죽었다는 카프카 소설의 ‘단식 광대’ 꼴이 되기 쉽다.

이현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