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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했다고 찾아가 몸에 불붙여" 인도서 또 10대 소녀 집단성폭행·살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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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잇따른 미성년자 성폭행 사건으로 대규모 시위가 이어지고 있는 인도에서 또다시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5일(현지시간) 영국 BBC 등 외신들에 따르면 최근 인도 동부 자르칸드주 차트라 지역의 한 마을에서 16세 소녀가 집단 성폭행을 당한 후 불에 타 숨졌다. 성폭행 사실을 신고한 데 불만을 품은 가해자들이 소녀의 집에 찾아가 살아있는 소녀의 몸에 불을 붙여 살해한 것이다.

지난 달 14일 인도 카슈미르 잠무에서 시민들이 8세 소녀 아시파 바노를 성폭행한 뒤 살해한 범인들의 처벌을 요구하는 촛불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달 14일 인도 카슈미르 잠무에서 시민들이 8세 소녀 아시파 바노를 성폭행한 뒤 살해한 범인들의 처벌을 요구하는 촛불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피해자 가족들의 증언에 따르면 소녀는 지난 3일 밤, 부모가 다른 지역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집을 비운 사이 동네 주민 4명에게 인근 숲으로 끌려가 성폭행을 당했다. 집으로 돌아온 부모는 딸이 당한 일을 알게 됐고, 다음 날 마을의 판차야트(마을 평의회)에 이 사건의 해결을 요청했다.

판차야트는 공식적인 법적 지위가 없지만, 느리고 부패한 국가의 법 체계에 우선해 인도인들이 자주 이용하는 지역 사회의 귄위 있는 분쟁 해결 기구다.

사건을 심의한 판차야트는 성폭행 가해자들에게 ‘벌금 5만 루피(약 80만 원)와 윗몸 일으키기 100회’라는 판결을 내렸다. 인도 법에 의하면 장기간 징역형에 해당하는 중범죄를 저지른 이들에게 터무니없이 가벼운 형벌이 내려진 것이다.

하지만 가해자들은 피해자 가족이 자신들을 신고한 데 분노했다. 다음날 무리를 지어 피해자의 집을 찾아가 부모를 구타하고 소녀의 몸에 불을 붙였다. 소녀는 불에 타 사망했고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성폭행과 방화·살인에 가담한 주민 14명을 체포했다. 그러나 달아난 주범들은 아직 잡히지 않고 있다.

8살 소녀 성폭행에도 가해자 비호 

미성년자 집단 성폭행·살해 사건은 인도에서 드문 일이 아니다. 인도 정부는 지난 2012년 뉴델리에서 23세 여대생이 버스를 타고 귀가하던 중 남성 6명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해 숨진 사건을 계기로 성범죄 처벌을 대폭 강화했다. 그러나 성범죄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지난 1월 인도 카슈미르에서 발생한 8세 무슬림 소녀 성폭행·살해 사건과 관련해 지난 달 16일 범인들의 처벌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는 인도 대학생. [EPA=연합뉴스]

지난 1월 인도 카슈미르에서 발생한 8세 무슬림 소녀 성폭행·살해 사건과 관련해 지난 달 16일 범인들의 처벌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는 인도 대학생. [EPA=연합뉴스]

국가범죄기록원 통계에 따르면 2016년 인도 전역에서 신고된 성폭행 범죄는 3만 8947건으로, 2011년 2만 4206건보다 61%나 증가했다. 특히 아동 성범죄는 2016년에만 1만 9765건 발생해 2015년에 비해 82%나 늘었다. BBC는 “사회적 편견 때문에 피해자들이 신고를 꺼리는 경우도 많아, 실제 피해는 훨씬 클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인도에는 성폭행을 처벌하는 법이 존재하지만 제대로 집행되는 경우가 너무 희박해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기엔 역부족”이라고 지적했다. 또 정치인 등 권력자들이 성폭행에 가담하는 경우가 많고, 성폭행 사건이 종교적 갈등과도 맞물리면서 상황은 악화되고 있다고 전했다.

올해 1월 인도 북부 잠무-카슈미르주 카투아에서 일어난 8세 무슬림 소녀 살해 사건이 대표적이다. 유목 생활을 하던 소녀는 세 명의 남성에게 납치돼 수차례 집단 성폭행을 당한 뒤 돌에 맞아 죽었다. 용의자 중 한 명은 경찰이었고, 용의자의 변호인이 경찰의 기소를 의도적으로 방해하면서 사건은 4월이 되어서야 세상에 알려졌다.

체포된 힌두교인 용의자들이 “무슬림을 겁주려 범죄를 저질렀다”고 말하면서 사건은 종교 갈등으로 번졌다. 힌두교 신자들 중 일부가 용의자를 비호하는 시위를 열었는데, 여기에 집권당인 인도국민당(BJP) 소속 잠무 카슈미르 자치정부 장관 2명이 참가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연일 정부를 비판하는 시위가 이어졌고, 정치인들은 지난 달 14일 사임했다.

모디 총리, 아동 성폭행에 사형 부과하는 행정명령 

또 지난 달 8일에는 우타르프라데시주 운나오에 사는 16세 소녀가 주 총리의 집 앞에서 분신 자살을 기도하는 사건이 있었다. 소녀는 지난 해 6월 BJP 소속 주 의원 센가르와 그의 동생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이를 경찰에 신고했으나 계속 무시 당했다. 심지어 소녀의 아버지는 경찰 조사 중 구타를 당해 숨졌다. 시민들의 항의가 이어지면서 인도 중앙수사국(CBI)은 지난 14일 센가르 의원을 체포했다.

성폭행 엄벌 여론이 높아지자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지난달 21일 성폭행 처벌을 대폭 강화한 긴급행정명령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16세 이하에 대한 성폭행 최소 형량은 징역 10년에서 20년으로 높아졌고 12세 이하 아동을 성폭행한 이에겐 최소 20년 이상 징역에서 최고 사형까지 선고할 수 있다. 특히 12세 이하 아동을 다수의 성인이 집단 성폭행했을 경우에는 종신형 혹은 사형을 받게 된다.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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