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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철밥통 보장하면 전관예우 사라질까…금감원장의 제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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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의 힘 중 하나가 선배는 후배를 끌어주고, 후배는 선배를 전관예우 해주고, 선후배가 알아서 서로 끌어주고 밀어준다는 것입니다. 그런 식의 연결고리로 엄청나게 힘 있는 집단이 됐어요.”(『비정상 경제회담』에서)

윤석헌 금융행정혁신위원장 브리핑. 2017년 12월 20일

윤석헌 금융행정혁신위원장 브리핑. 2017년 12월 20일

윤석헌 신임 금감원장은 학자 출신답게 독특한 아이디어를 냈다.

금감원 검사역의 ‘종신 재직권’이다. '전관예우'를 끊기 위해서라면 '평생 철밥통'을 보장할 수 있다는 뜻이다.

윤 원장은 관료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전관예우를 꼽는다. ‘금피아(금감원+마피아)’라는 비판을 받는 금감원에 대한 시각도 비슷하다.

윤 원장은 2016년 펴낸 『비정상 경제회담』이란 책에서 “일정한 성과요건을 만족하게 한 금감원 시니어 검사역에게 마치 대학교수처럼 정년을 보장해서 퇴직 후 낙하산으로 갈 생각을 하지 않게 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종신 재직권을 보장하는, 즉 테뉴어(tenure) 제도를 도입해 전관예우의 관행 및 기대를 없애자는 주장”이라며 “시니어들의 경험과 노하우를 살리는 일거양득을 노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금감원

금감원

이런 아이디어는 지난해 12월 발표한 금융혁신 보고서에도 담겼다.

윤 원장은 당시 금융행정혁신 위원장을 맡아 보고서 작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위원회는 보고서에서 “(금감원) 직원 정년제를 확실하게 보장해 직원이 금융기관 낙하산 인사로 가는 것을 막을 필요가 있다”며 “특히 검사 직군의 경우 내부적으로 검사 전문 인력을 선발하여 퇴직까지 계속 검사 업무를 담당하게 하자”고 제안했다.

이렇게 하면 후배가 상급자로 오더라도 선배는 ‘시니어 검사역’으로 정년을 보장받으면서 전문성을 살릴 수 있다.

승진에서 밀리거나 후배에게 자리를 비워줘야 한다는 이유로 사표를 내고 금융회사 감사 등으로 재취업하는 ‘잘못된 관행’을 막을 수 있다는 취지다.

‘낙하산’을 차단하는 규제를 강화하기만 하는 것보다 ‘낙하산’이 필요 없는 여건을 조성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윤 원장의 시각이 담겨 있다.

"공직자 규제 풀어 외부 전문가 영입" 

윤 원장은 시대의 변화에 따른 관료 사회의 변화에도 주목하고 있다.

그는 “관료 집단의 힘이 예전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며 “여성들의 진출이 늘어나고 젊은 층의 개인주의가 확대되면서 관료 집단에도 조금씩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고 소개했다.(『비정상 경제회담』)

지난해 금융혁신 보고서에는 금감원 직원들에 대한 공직자윤리법 규제를 일부 풀어주자는 제안도 담겼다.

예컨대 현재는 입사 6년 차인 4급 이상 직원부터 ‘공직자윤리법’이 적용되는데, 이 기준을 완화하자는 주장이다.

“우수한 외부 전문 인력이 금감원에 취업하려는 유인을 제공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윤 원장은 금감원 직원들의 ‘외부인 접촉’을 제한하는 것에도 신중한 입장이다.

금융혁신 보고서는 “이해 관계자라고 하더라도 금융업계나 법무법인 등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할 필요가 있다”며 “외부인과 접촉 등을 과도하게 제한할 경우 현장과 괴리된 행정이나 시기를 놓친 정책을 실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금감원

금감원

하지만 현실은 반대 방향으로 진행됐다.

금융위와 금감원은 지난달 ‘외부인 접촉관리 규정’을 마련해 시행에 들어갔다.

금융위ㆍ금감원 출신 퇴직자, 금융회사 임직원, 법무ㆍ회계법인 소속 변호사ㆍ회계사 등을 만나거나 연락했을 때 감사담당관에게 반드시 신고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윤 원장은 금감원을 공공기관으로 지정하자는 일부 주장에 대해서도 반대쪽에 섰다.

금융혁신 보고서는 “감독기관의 독립성 및 책임성을 약화시켜 정치권 등 외부 압력에 더욱 취약해지게 하는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주정완 기자 jw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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