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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이병주 문학제' … 소설 전시회 등 행사 풍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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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7일 오후 경남 하동군 섬진강변에서 열린 소설가 이병주 추모식에서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가 헌화하고 있다. [손민호 기자]

7일 오후 경남 하동 섬진강변. 소박한 추모비 앞에 300여 명이 깊이 고개를 숙였다. 소설가 나림(那林) 이병주(1921~92) 선생의 추모식은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다. 마침 벚꽃 송이송이 흰 눈 되어 날렸다. 행사에 참여한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는 "지리산 기슭에서 태어난 이병주는 학병 세대가 낳은 대형작가였다"며 "이 거인의 빈 자리 메울 자 있을 것인가"라고 물었다.

소설가 이병주의 문학정신을 기리는 제5회 이병주 문학제가 7일 오후 작가의 고향인 경남 하동에서 열렸다. 올 1월 이념과 성향을 초월한 각계 인사가 참여해 이병주 기념사업회를 발족하고나서 열린 첫 행사다. 이병주 문학제는 여태 소박한 지방 행사였지만 올해부터 전국 규모 행사가 됐다. 이날 기념사업회 공동대표인 정구영 전 검찰총장과 김윤식 교수를 비롯하여 임헌영.조남현.최동호.김종회.박주택 교수, 작가 서영은.서하진.공지영씨 등 40여 명이 서울에서 새벽밥 먹고 내려왔다. 부산에 사는 선생의 아들 이권기(59.경성대학교) (부산) , 조유행 하동군수 등이 행사에 참석했다.

소설가 이병주.

나림은 이념에 흔들리지 않고 민족만을 고민했던 작가다. 그는 19세기 말부터 1980년대까지의 한국현대사를 오직 문학으로 발언했다. 대하소설 '지리산'은 한국전쟁 직전의 좌.우익 갈등을 그렸고, 장편 '관부연락선'은 해방 직후 혼란한 사회상이 배경이다. 장편 '그해 5월'은 5.16 사건의 부당함을 고발했으며, '대통령들의 초상'에선 12.12 사건을 옹호하는 입장을 보여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념에 얽매이지 않았기에 그에 대한 평가작업은 오히려 소홀했다. 한쪽의 입장에서 역사를 대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림 서거 14년 만인 올해 들어서야 기념사업이 본격 가동한 것도, 어느 진영에서도 그를 받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임헌영 교수는 "이제야 설립된 기념사업회에 진보와 보수 인사가 함께 참여한 건 나림의 소설에서 두 가지 성향이 함께 보이기 때문"이라며 "이병주 문학이 보.혁 화합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작가 공지영씨는 "요즘 젊은이들이 이병주를 모른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며 "오늘 이 자리가 세대 간 문화 격차를 좁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추모제 이후 문학제는 문학강연회로 이어졌다. 오후 7시 하동 종합사회복지회관에서 열린 강연회에선 김윤식.임헌영.조남현 교수가 차례로 강단에 올라 나림의 문학세계를 설명했다. 이어 사물놀이와 시조창 등 축하공연이 진행됐다. 8일엔 이병주 소설 전시회가 진행되고 문학제는 막을 내린다.

문학제가 끝나도 나림 관련 사업은 계속 된다. 가장 큰 사업이 이병주 문학전집(전 30권) 완간 사업이다. 도서출판 한길사는 20일쯤 전집을 완간하고 5월 초순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출판기념회를 열 계획이다.

4.19혁명 직후 나림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에겐 조국이 없다. 다만 산하만 있을 뿐이다." 소설 '지리산'에서 사회주의자 하준규가 물끄러미 바라봤던 은빛 강물, 오늘도 도도히 흐르고 있었다.

하동 글.사진=손민호 기자

*** 바로잡습니다

4월 8일자 18면 '제5회 이병주 문학제… 소설 전시회 등 행사 풍성' 기사에서 이날 행사에 참석한 이병주 선생의 아들 이권기(59)씨는 경상대학교(경남 진주) 교수가 아니라 경성대학교(부산)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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