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깊이읽기] 크게 벌어 고스란히 베푼 관기 출신 큰 상인 김만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1면

조선시대 유운홍의 풍속화. 영·정조 시대의 큰 상인 김만덕이 운용했던 배를 추정할 수 있다.

꽃으로 피기보다 새가 되어 날아가리
정창권, 푸른숲, 244쪽, 1만1000원

이 책은 청부(淸富), 그러니까 깨끗한 부자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는 대체로 '부자'하면 모리배나 벼락부자를 연상한다. 땀 흘려 된 게 아니라 염치, 도의를 외면하고 남을 짓밟거나 부정한 수단으로 치부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이야기다. 스스로 부자가 되고 싶은 열망은 잠시 잊은 채 그렇게 여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청빈(淸貧)을 높이 친 유학의 영향이 크다. 청빈의 반대편에는 탁부(濁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역사적으로도 부자 이야기는 좀처럼 찾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18세기 조선 영정조 시대에 활약한 큰 상인 김만덕의 일생을 다룬 이 책은 귀하다. 우리 역사의 청부를 다뤘기 때문이다.

김만덕은 제주 관기(官妓)였다. 양민 출신이지만 부모를 일찍 잃어 기적(妓籍)에 오른 탓이다. 스무 살 되던 해 관아를 찾아 기적에서 빼달라고 청원해 신분을 회복한다. 그리고 관기 생활을 하면 아껴 모은 돈으로, 지금의 숙박업소와 중간상 구실을 겸했던 객주를 열었다. 양반의 소실로 들어가 편안한 삶을 살기보다 자유로운 자아를 찾아 나선 것이다. 큰 돈을 모은 1795년, 제주에 최악의 기근이 닥치자 곳간을 열어 구제에 나선다. 평생 모은 재산을 사회에 기부한 것이다. 이런 선행이 중앙에 알려져 그 이듬해 정조 임금은 만덕을 궁궐로 불러 치하한다. 그리고 금강산 유람을 하고 싶다는 만덕의 소원을 들어준다. 금강산 구경을 마친 만덕은 제주로 돌아가 1812년 74세로 유명을 달리한다.

정조 때 영의정을 지낸 채제공이 쓴 '만덕전'은 이처럼 소략하다. 이것만으로도 변방에서, 평민으로, 여성으로 지금도 흔치 않은 '부의 사회환원'이란 큰 발자취를 남긴 점이 눈에 들어온다. 이 때문인지 만덕의 행적은 TV 드라마 등에서 간간이 다뤄지긴 했다. 하지만 이 평전은 풍부한 자료와 현장 답사로 18세기 제주 문화사와 함께 만덕의 전생을 온전히 되살렸다는 점에서 의의가 적지 않다.

여기에 만덕의 동생, 제주 상인들의 텃세 등 픽션을 가미해 읽는 맛을 살렸다. 우리 지폐에 초상화를 넣을 여성 위인으로, 왜 만덕이 우선 거론되는지 흥미롭게 보여준다.

김성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