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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겨읽기] 탐미의 시대 베르사유 엿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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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귀족의 은밀한 사생활
이지은 지음, 지안, 382쪽, 1만5000원

책 날개에 실린 저자 이지은씨의 사진에 매료된 나는 이력을 보고 마음을 고쳐 먹었다. 그는 가방 끈이 엄청 길고, 이 분야 경력이 너무도 화려하기 때문이다. 최근 미술사에 입문한 내게는 도무지 언감생심이다. 2002년 크리스티 프랑스에서 미술사 학위를 받았고, 그해부터 소더비 등 경매회사와 함께 오르세미술관 근무 경력…. 주전공은 유럽의 고가구.

이 책은 그녀가 펼쳐 보이는 300년 전 프랑스 사회 여행이다. 고가구의 연도와 재료, 제작 방법, 그것의 역사를 추적하는 직업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화려한 그림에 이끌려 16세기 초부터 1789년 프랑스 혁명기까지 당대인의 풍속과 애정 행각까지 훔쳐보는 각별한 호사를 누린 셈이다.

당시 프랑스 300년은 가히 '탐미의 시대'다. 아름다움이야말로 배고픔을 잊을 만큼 달콤하다고 여겼던 시기가 있어 오늘의 프랑스가 세계 유행의 중심이 된 것이다. 예를 들어 18세기를 상징하는 다른 두 가지, 향수와 요리법이 발전하게 된 내막을 보자.

화려했지만 화장실이 없었던 베르사유궁은 복도마다 오줌 냄새가 진동했으며, 가발에 있던 비듬과 벼룩이 대리석 위로 우수수 떨어졌다. 유럽의 태양이라던 루이 14세도 평생 고작 스무 번 정도만 목욕을 했다. 지위를 막론하고 몸에서 나는 냄새는 향수를 잔뜩 뿌리는 것이었다.

설탕을 잔뜩 넣은 케이크나 과자 같은 디저트가 식단 한 자리를 차지한 때도 18세기 중반이었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살리에리가 모차르트 부인에게 권하던 '비너스의 젖꼭지'라는 디저트도 그즈음 등장했다. 계몽주의자 볼테르는 당시 사람의 '맛의 탐미'를 열렬하게 지지한 반면, 루소는 비판적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 다 요리를 예술의 한 분야로 보았다. 그게 이 시대의 위대성이다.

이 책에서 활약하는 왕과 정부(情婦), 왕비와 바람둥이 기사, 하녀와 호색한의 숨결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의 탐미성을 엿볼 수 있는 건축과 가구, 향수와 음식만이 남았을 뿐이다. 그래서 저자는 책 한 쪽에 "프랑스 여행 때 루브르만 보지 말고 오브제아트 관도 한번 들려보았으면 한다"과 당부한다.

심상대<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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