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물러난 탁신- 금권정치의 한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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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올해 1월 23일 탁신 총리 일가는 자신들이 소유한 친(Chin)그룹의 지주회사 '친코퍼레이션'의 지분 49.6%(약 18억7690만 달러)를 싱가포르 국영 투자기업 테마섹 홀딩스에 매각했다. 문제는 그가 30%에 달하는 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고 엄청난 차익을 챙겼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금권정치 논란을 일으켰던 그인지라 이와 같은 탁신 일가의 행동은 태국 정치권에 도덕성 논란을 야기했다.

특히 2005년 들어 경제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정부에 대한 지지도도 급격히 감소하고 있었다. 태국 경제는 2004년에 약 6.5%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이룩했다. 무역흑자도 17억 달러에 달했다. 하지만 2005년엔 85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하고 인플레율도 7년래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물론 경제 악화의 직접적 이유는 국제유가의 급등이었지만 소위 '탁시노믹스'로 불려온 탁신의 경제정책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비판론이 확산됐다.

하지만 탁신은 이러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독선적 태도를 버리지 못했다. 초기 자신을 지탱해 주었던 대중의 지지는 얼마 가지 못 했다. 기업의 경영 마인드를 접목한다며 행정부에 불어넣은 기업형 국가경영 방침은 필연적으로 반대파의 말을 묵살하는 독선적 국가운영을 불러왔다.

그가 빈곤층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의욕적으로 출범시켰던 20억 달러에 달하는 마을 기금 조성 사업은 초기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데 성공했다. 또 마약과 매춘에 대한 강경한 억압을 통한 국가 이미지 고양책 등도 국민의 환영을 받았다. 하지만 경제가 곤두박질치고 탁신 일가의 부패 의혹이 끊이지 않으면서 서서히 지지층이 이탈해 갔다.

2001년 8월 반부패위원회로부터 재산공개 누락 혐의로 헌법재판소에 고소당한 것을 시발로, 탁신은 2005년 7월 측근인 보건장관의 수뢰 혐의로 인한 구속, 부인의 소득세 탈루 의혹, 신공항 검색대 폭발물 탐지장치 도입 수뢰 의혹 등으로 신뢰성을 상실했다. 여기다 역대 어느 정권도 손대지 못했던 마약 문제에 매달리는 것은 좋았지만 그 과정에서 2000여 명을 처형해 인권 시비를 불러일으켰다.

특히 야당은 그가 이러한 정책을 수행해 나가면서 반대파의 의견을 묵살하는 독단적.권위주의적 정치를 실시한다며 격렬히 반발했다. 하지만 탁신은 이러한 반발이나 비판여론에 눈과 귀를 막고 대부분의 언론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으려고 언론탄압을 가했고 이러한 그의 행동은 언론뿐 아니라 국민, 심지어 국왕의 분노를 샀다.

또한 2004년 초부터 남부 무슬림 지역에서 빈번하게 발생한 유혈사태는 단기간에 해결할 수 없는 민감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초 강경 대응을 계속해 국민적 불안감을 조성했다.

태국 정치는 5개의 기둥(국왕.국민.미디어.의회.군부)에 의존한다. 탁신은 최근 이 중 어느 하나의 기둥에도 의지하지 못했다.

이번 탁신 사임 사태는 정치권력이 정도(正道)를 벗어나 경제권력에 예속화됐을 때 발생하는 부패와 정치왜곡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정치와 금권의 결합이 일시적으로 국민의 환심을 살 수는 있지만 결국 신뢰를 상실하면 실패함을 보여주었다. 또한 민심을 순간은 속일 수 있지만 오래 속일 수 없다는 진리도 다시 일깨워 주었다.

이병도 한국외대 태국어과 교수·국제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