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우려했던 일 벌어졌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검찰이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장남인 정의선(사진) 기아차 사장에 대해 전격적으로 출국금지 조치를 내리자 현대차그룹은 충격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검찰 수사가 총수 일가로 향하고 있음을 처음으로 드러낸 조치이기 때문이다. 수사 초기 검찰은 현대차그룹의 주요 임원들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내리면서도 정 회장 일가의 출국금지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배려였다. 그러다 2일 정몽구 회장이 미국으로 갑자기 출국하자 상황이 확 변했다.

◆ 검찰, 왜 정 사장을 출국금지했나=검찰 관계자는 "현대차가 비협조적으로 나올 경우 그동안 현대차를 배려하던 수사 기조가 바뀔 수 있다"고 말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검찰은 정 사장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는 정 회장의 귀국을 종용하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또 현대차 그룹이 계열사를 늘리고 경영권을 승계하는 과정에서 불법을 저지른 정황과 증거를 검찰이 이미 확보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분명한 정황과 증거가 없는데도, 검찰이 총수 일가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라는 초강수를 취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성역 없는 수사 의지를 드러내기 위해 검찰이 의도적으로 정 사장에 대한 출금 조치를 했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검찰이 총수 일가를 수사하지 않으면 "몸통을 놓아둔 채 깃털만 수사한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 회장의 돌연 출국으로 인해 검찰이 정 회장의 출국을 방조한 것 아니냐는 의심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은 정 사장마저 출국한다면 검찰 수사 전반에 대한 신뢰가 산산조각날 것이란 우려를 떨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 당혹해하는 현대차=정 사장의 출국금지 소식이 전해진 4일 현대.기아차 관계자들은 당혹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검찰 수사가 현대차그룹의 경영권 승계 문제로 방향을 잡아가고 있다는 분위기는 파악하고 있었지만 정 사장에게 직접적인 조치가 취해진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다"며 불안해했다. 다른 관계자는 "정 사장은 이달 말로 예정된 기아차 조지아주 공장 기공식에 참석해야 하는데 일정에 차질이 생길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정몽구 회장의 출국이 '도피성'이 아니냐는 여론의 질타를 받은 이틀 뒤에 출국금지 조치가 나오자 "검찰이 총수 일가를 너무 심하게 압박하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현대차는 정 회장의 방미는 예정된 행사였으며 일정을 마치면 반드시 귀국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글로벌 경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현대차그룹의 총수 일가에 출국금지까지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는 지적도 했다. 정 사장은 이날 회사에 출근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3일에는 출근해 경영전략회의에 참석하는 등 회사 일을 챙겼다. 현대차 관계자들은 그룹 총수 일가를 향한 검찰의 수사가 가속도를 내자 향후 일정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검찰이 정 사장을 소환할지, 그 시기가 언제쯤이 될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김승현.임장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