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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만드는 세상] "버스 늘려주세요, 놀 공간 필요해요"…아이들이 바란 공약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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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올해 2월부터 진행된 아동공약토론회에서 아이들이 손을 들어 발표하고 있다. 1만여 명의 아이들이 직접정한 아동정책안들은 시·도지사 및 교육감 후보자들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사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올해 2월부터 진행된 아동공약토론회에서 아이들이 손을 들어 발표하고 있다. 1만여 명의 아이들이 직접정한 아동정책안들은 시·도지사 및 교육감 후보자들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사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지난 2일 오후 부산스러웠던 장내가 방탄소년단의 뮤직비디오가 흘러나오자 이내 조용해졌다. 300여 명의 어린이가 일제히 원탁에 모여 앉았다. 이날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대전 어린이 300인 원탁회의’에서 아이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포스트잇에 바라는 아동정책들을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적었다. ‘등·하교 시간에는 버스 좀 늘려주세요’‘실내에서 놀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해요’‘학교 앞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 처벌해주세요’…. 하얀 전지가 아이들이 붙인 색색깔의 포스트잇으로 물들었다.

전국 어린이들 정책 토론회 #지방선거 앞두고 의견들 모아 #'두발자유' '아동범죄 예방' 등 #시·도지사 및 교육감에게 전달

오는 6월13일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아이들은 대전시장과 대전시교육감에게 보낼 정책 제안들을 토론하고 있었다. 조별 발표 시간이 되자 5조 서환희(11)양은 “‘시험을 보지 않고 자유학기제를 하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다. ‘공기청정기가 학교마다 필요하다’는 것에도 의견이 모였다”고 발표했다. 양주혜(14)양은 17조 대표로 “지난해 지진이 발생했을 때 수업 중이라 재난문자를 못 봤다. 학교에서 아이들의 휴대전화를 따로 걷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각 조가 발표한 내용들은 안전·교육·여가·국가·환경 등으로 7개 분야를 분류돼 전자투표에 붙여졌다. 그 결과 대전시장에게 제안할 정책안으로 ‘아동·청소년이 안전하고 건전하게 놀 수 있도록 깨끗한 놀이·체육·문화시설을 만들어주세요’‘아동·청소년 대상 범죄 처벌을 강화하고 사전 예방에 힘써주세요’‘낙후된 지역을 개발하고 지역편차를 줄여 아동이 골고루 잘 살 수 있게 해주세요’ 등 7개가 정해졌다. ‘교복·두발 자유’‘쉬는 시간 확대’‘오래된 학교 시설 보수’‘맛있는 급식 제공’ 등의 공약은 대전시교육감에게 보내기로 했다. 토론을 마친 뒤 아이들은 종이비행기에 ‘더 이상 아동은 보호만 받는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사람들의 인식 개선과 지금, 원탁회의입니다’라는 글을 적어 함께 날렸다.

올해 2월부터 진행된 아동공약토론회에서 아이들이 손을 들어 발표하고 있다. 1만여 명의 아이들이 직접 정한 아동정책안들은 시·도지사 및 교육감 후보자들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사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올해 2월부터 진행된 아동공약토론회에서 아이들이 손을 들어 발표하고 있다. 1만여 명의 아이들이 직접 정한 아동정책안들은 시·도지사 및 교육감 후보자들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사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아이들의 토론회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올해 전국 11개 지역에서 진행됐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은 지난 2월부터 전국의 아동·청소년 1만38명과 함께 아동공약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는 투표권이 없어 정책 반영에 소외되기 쉬운 아동들의 의견을 선거 후보자들에게 전달하고자 마련됐다. 각 지역의 아동대표단은 자신들이 제안한 정책들이 담긴 ‘공약박스’를 만들어 시·도지사 및 교육감 후보자에게 보낸다.

아동들이 바라는 공약은 지역이 달라도 일치하는 부분이 많았다. 이들이 공통으로 제안한 시·도지사 공약으로는 ▶등·하교 버스 노선 확대 ▶다양한 놀이 공간 마련 ▶통학로 주변 금연구역 확대 ▶교통안전대책 마련 ▶길거리 쓰레기 문제 해결 ▶범죄예방을 위한 가로등 및 폐쇄회로(CC)TV 확충 등이었다. 전국의 교육감들에게는 ▶입시 위주가 아닌 개인의 꿈과 재능을 키울 수 있는 교육 ▶노후한 학교 시설 교체 ▶9시 등교 및 쉬는 시간 확대 ▶맛있고 질 높은 급식 제공 ▶뛰놀 수 있는 공간 마련 ▶장학금·부교재 지원 및 학생 편의시설 확대 등을 제안했다.

올해 2월부터 진행된 아동공약토론회에서 아이들이 손을 들어 발표하고 있다. 1만여 명의 아이들이 직접 정한 아동정책안들은 시·도지사 및 교육감 후보자들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사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올해 2월부터 진행된 아동공약토론회에서 아이들이 손을 들어 발표하고 있다. 1만여 명의 아이들이 직접 정한 아동정책안들은 시·도지사 및 교육감 후보자들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사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 공약들도 나왔다. 강원도 지역에서는 보건·환경 분야 공약으로 ‘어린이들이 아플 때 갈 수 있는 전문 소아과를 늘려주세요’라는 의견이 있었다. 인제와 화천에 사는 아동들의 이야기였다. 전남 지역에서는 농어촌 지역 아이들이 “대중교통이 불편해서 학교에 가려면 매일 아침 일찍 나와 아침을 못 먹는 일이 많다”며 교육감에게 교내 매점 설치를 요구했다. 지난해 지진 피해가 있었던 경북 지역에서는 ‘재난 및 위기 상황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 달라’는 목소리가 높았다.

대전컨벤션센터에서 2일 열린 아동공약토론회에 참석한 어린이들이 조를 짜서 종이에 각자가 바라는 아동정책 공약들을 적고 있다. [김정연 기자]

대전컨벤션센터에서 2일 열린 아동공약토론회에 참석한 어린이들이 조를 짜서 종이에 각자가 바라는 아동정책 공약들을 적고 있다. [김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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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토론회장에서 만난 호수돈여중 2학년 강희진(14)양은 “여학생 교복을 치마에서 바지로 바꾸자고 했다. 다른 학교는 치마·바지가 교복으로 다 있는데 우리 학교는 치마밖에 없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가양초 6학년인 오유근(12)군은 “야구하는 걸 좋아하는데 지역 체육관이나 운동시설들이 다 너무 낡아서 개선이 필요한 것 같다”고 했다. 비래초 6학년 안은정(12)양은 “미세먼지 개선이나 담배 등 흡연구역 철저히 지키기 등 대기오염에 관한 내용들을 강조하고 싶었다”며 “오늘 나온 의견 중에서는 ‘환경 영향을 받지 않고 놀 수 있게 실내 놀이터를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고 답했다.

대전컨벤션센터에서 2일 열린 아동공약토론회에 참석한 어린이들이 조를 짜서 종이에 각자가 바라는 아동정책 공약들을 적고 있다. [김정연 기자]

대전컨벤션센터에서 2일 열린 아동공약토론회에 참석한 어린이들이 조를 짜서 종이에 각자가 바라는 아동정책 공약들을 적고 있다. [김정연 기자]

이제훈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회장은 “이번 지방선거 후보자들이 실제 아동들이 제안한 내용을 경청하고 존중해 좋은 아동정책 공약을 수립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모니터링을 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굿네이버스도 다음 달 초부터 온·오프라인을 통해 ‘똑똑똑, 우리동네 아이들의 정책을 부탁해’ 캠페인을 진행한다. ‘동네 환경’ 중 아이들이 가장 많이 접하는 환경인 집·학교·놀이터 등을 중심으로 아동에게 직접 필요한 정책들을 접수할 계획이다. 굿네이버스 관계자는 “접수된 의견은 시 단위 각각 모음집을 제작해 각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전달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지난해 대선 때도 굿네이버스는 같은 캠페인을 실시했는데 그때 온라인에서 공감 수 1, 2위를 차지했던 목소리는 각각 ‘양육비와 교육비 부담을 줄여주세요’와 ‘적성을 살릴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을 만들어주세요’였다.

홍상지·김정연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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