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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GM '먹튀론' 3대 의혹, 따져보니 노조가 틀렸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한국지엠 직원이 21일 오후 인천 부평구 한국지엠 부평공장에서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고 있다. GM은 한국지엠의 군산공장은 폐쇄하고 부평공장과 창원공장의 인력은 구조조정할 계획이다. 2018.2.21/뉴스 1

한국지엠 직원이 21일 오후 인천 부평구 한국지엠 부평공장에서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고 있다. GM은 한국지엠의 군산공장은 폐쇄하고 부평공장과 창원공장의 인력은 구조조정할 계획이다. 2018.2.21/뉴스 1

[팩트체크]한국GM '먹튀론' 3대 의혹 따져보니 '근거 부족'

제너럴모터스(GM) 본사가 제시한 한국GM의 법정관리(법원 주도 기업회생절차) 시한(20일)이 임박했지만, 노사는 자구안에 합의를 못 이루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총과 여·야 정치권은 GM과 KDB산업은행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이고 있다. 미국 GM 본사가 한국GM의 이익을 빼돌리는 '먹튀' 행각을 벌였고, 이를 2대 주주 산업은행이 제대로 막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앙일보가 GM 본사의 고금리 대출, 과도한 연구개발비 부담, 본사의 불합리한 완성차·부품 거래 의혹 등 한국GM 부실 원인으로 제기되는 세 가지 의혹을 GM 본사 연례보고서(GM 10-K)와 한국GM의 회계장부·신용평가보고서 등을 토대로 분석한 결과, 특별한 문제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고금리 대출? GM 본사도 5%대 금리로 빌려, 같은 금리로 대출 

우선 노조와 정치권은 GM 본사가 한국GM에 연 5.3%와 4.8% 금리로 1조1000억원(2017년 말)을 대출하고 있는 것은 "본사가 한국GM의 이익을 빼가기 위한 고금리 대출"이라고 주장한다. 고금리 대출은 낮은 금리로 돈을 빌려 터무니없이 높은 금리로 빌려줄 때 성립하는 개념이다. 그러나 한국GM에 대출해 준 GM 본사도 4~5%대 금리로 외부에서 자금을 빌리고 있다. GM 본사도 부채비율이 507%(2017년 말 기준)에 달하는 등 재무 상태가 좋지 않아 신용등급이 낮게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올해 2월 GM 본사의 신용등급을 'Baa3'로 평가했다. 한국 신평사 기준으론 'BBB-' 등급이다. 한 단계만 더 떨어지면 회사채로는 자금조달이 어려운 투기등급(BB+ 이하)이 된다. 신용이 좋지 못한 본사가 다소 높은 금리로 돈을 빌려 자회사에 비슷한 금리로 대출하는 것을 두고 "고금리 이자장사를 한다"고 보긴 힘든 것이다.

연구개발비 부담? 매출액 대비 3~4%로 일정 

본사가 한국GM에 과도한 연구개발비를 부담하게 했다는 의혹도 근거가 부족하긴 마찬가지다. 오민규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은 지난 10일 '한국GM 부실, 진짜 원인 규명 대토론회' 에서 "한국GM의 연구개발비 지출은 2003~2006년 평균 2700억원 수준에서 2007년~2016년까지 6000억원 규모로 껑충 뛰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2003년부터 2017년까지 한국GM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지출액 비중을 조사하면 모두 3~4% 수준으로 일정하게 나타난다. 연구개발비 지출이 는 시기에는 매출액도 그만큼 늘어난 것이다. 이는 해외 현지법인의 매출액 비율에 따라 해외 자회사 전체 연구개발비 지출액을 분배하는 '비용분담협정(Cost Share Agreement)'에 따른 것이다. 해외 자회사 전체에 적용하는 똑같은 연구개발비 처리 기준이 있기 때문에 한국에만 과도한 연구개발비를 지출토록 했다고 보긴 어려운 것이다. 박해호 한국GM 부장은 "감사보고서에 공시돼 있지는 않지만, 지출된 연구개발비의 상당 부분을 본사가 다시 돌려주는 정책(용역매출수익)도 있다"고 설명했다.

완성차·부품 부당 거래? OECD 규약 따라 거래 

이 밖에 본사가 완성차와 부품을 부당한 가격에 한국GM과 거래했다는 의혹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규약에 따라 모든 해외 지사에 같은 가격으로 완성차와 부품을 거래하고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산업은행 실사팀도 이를 확인하기 위해 해외 자회사의 부품 매입 현황을 열람하기도 했다는 전언이다.

[군산공장과 일자리를 지켜주세요! 군산공장과 일자리를 지켜주세요!   (서울=연합뉴스) 이지은 기자 = 한국지엠노조원들이 28일 서울 세종로소공원 앞에서 열린 GM문제해결을 위한 금속노조결의대회에서 군산공장 폐쇄철회와 구조조정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2018.2.28   jieunlee@yna.co.kr/2018-02-28 14:46:34/ <저작권자 ⓒ 1980-2018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군산공장과 일자리를 지켜주세요! 군산공장과 일자리를 지켜주세요! (서울=연합뉴스) 이지은 기자 = 한국지엠노조원들이 28일 서울 세종로소공원 앞에서 열린 GM문제해결을 위한 금속노조결의대회에서 군산공장 폐쇄철회와 구조조정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2018.2.28 jieunlee@yna.co.kr/2018-02-28 14:46:34/ <저작권자 ⓒ 1980-2018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결국 한국GM의 부실 원인은 그간 제기된 세 가지 의혹과는 거리가 멀다고 볼 수 있다. 전 세계 자동차 생산·소비 시장이 북미와 중국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GM 본사가 이에 맞춰 해외 생산기지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한국GM의 매출액이 줄어든 점이 가장 큰 부실 원인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민주노총 주최 토론회의 발제자로 나선 황현일 경희대 사회학 박사도 2012년을 기점으로 한국GM 성장세가 하락한 핵심적인 이유로 ▶중국 공장의 생산 능력 확장 ▶유럽 쉐보레 브랜드 철수에 따른 판매 시장 축소 ▶한국GM의 독자 차량 개발 이점 상실 등을 꼽았다.

부실 원인을 정확히 파악했다면 대안도 이에 맞출 필요가 있다. 이런 거시적인 상황은 한국 정부와 정치권이 바꾸기 어렵다. 또 GM의 한국 시장 철수 여부는 GM 본사의 경영 판단으로 이에 관여할 수도 없다. GM이 한국에서 철수해도 괜찮다면, 한국 정부는 이에 맞춰 실업 대책을 고민하면 된다. 그렇지 않고 GM이 한국에 계속 남아주길 바란다면 그럴만한 이유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 기술이 뛰어난 협력업체들이 많고, 미래 기술을 빠르게 받아들이는 한국 시장의 장점을 살리고 한국 공장의 고비용 구조를 극복해야 GM도 계속해서 한국에서 사업할 이유가 생길 것이다. 현대차나 삼성전자 등 국내 대표기업이 해외 생산기지를 철수할지 말지 결정하는 것과 같은 잣대로 GM을 바라봐야 한다.

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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