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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수의 노후준비 5년 설계] 퇴직연금 원금보장이 결국은 손해인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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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서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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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금융상품이 있다. 팔릴 이유가 없는 데 이상하게 잘 팔린다. 원금보장 상품이다. 원금보장 상품은 하늘이 두 쪽 나도 투자원금을 보장해준다. 여러 종류의 원금보장 상품이 있지만 원리는 같다. 원금을 보장받는 대가로 투자 수익의 상당부분을 포기해야 한다.

대부분의 전문가는 이런 상품에 투자하는 것을 좋지 않게 본다. 굳이 원금보장이 필요없는데도 비용까지 지불해 가며 원금보장 상품을 사는 건 비합리적인 투자행태이기 때문이다.

퇴직금을 비롯한 은퇴자금은 까먹어선 안되는 돈이다. 그래서 그런지 퇴직연금 운용에서 원금보장을 앞세우는 경우가 많다.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퇴직연금 중에서 원리금보장상품으로 운용된 규모는 전체 적립금의 88.1%인 148조3000억원에 달했다. 퇴직연금 적립금의 운용수익률은 1.88%로, 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 1.65%와 비슷하다. 퇴직연금 말고 일반예금에 가입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퇴직연금이 단기상품이라면 원금보장은 그런대로 봐줄 수 있다. 하지만 퇴직연금은 노후의 생활자금 마련을 위한 초장기 상품이다. 초장기 투자에선 원금보장은 의미가 없다, 그런데도 원금보장이 먹혀드는 것은 가입자의 심리상태와 관련이 있다. 사람들은 투자를 할 때 ‘손실회피심리’란 기제가 강력하게 작용한다. 이익을 내 기쁨을 누리는 것보다 손실 보는 아픔을 더 피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노후자금은 안정성이 최우선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원금은 지켜야 한다는 압박감이 작용한다. 원금보장 선호 현상은 이런 이유들이 얽혀 생기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손실회피 심리든 안정성이든 인간의 모순된 행태인 것은 분명하다.

연금은 연간 수익률이 최소 4~5%는 돼야 수익성이 개선되고 은퇴후 소득대체율을 높일 수 있다. 소득대체율은 연금액이 평균소득과 비례해 얼마나 되는지 보여주는 비율이다.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은 40년 가입 기준 40%지만 퇴직연금은 12%에 그친다. 원금보장을 고집하다간 나중에 노후 생활비 부족에 허덕일 수 있다. 무조건적인 안전자산 선호가 독이 될 수 있음을 알고 실적배당 투자상품의 비중을 늘리는 것이 현명하다.

서명수 객원기자 seo.myongs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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