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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시장 개입 어려워져…원화 강세 빨라질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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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뉴스분석] 환율조작국 피한 한국

원화 강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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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과 올해 1월 원화 강세를 완화하기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한 사실이 확실하게 드러났다. 한국의 외환 관행을 계속해서 면밀히 감시할 것이다.”

미 재무부, 외환시장 투명화 요구 #정부는 세부 공개 기준 놓고 고심 #세세히 밝히면 투기 세력 공격 우려 #미국 압박에 달러 매수 쉽지 않아 #원화가치 올라 수출 기업에 타격

13일(현지시간) 미국 재무부가 발표한 2018년 상반기 환율정책 보고서의 내용이다. 미국은 매년 4월과 10월 발표하는 이 보고서를 통해 주요 교역국의 외환시장 정책을 평가한다. 미국은 이번 보고서에서 한국의 외환시장 개입 시기와 규모를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다 알고 있으니 빨리 조치하라’는 압력이다. 구체적인 개선 방안도 처음으로 적시했다. “환율 개입 내용을 투명하고 시의적절하게 보고할 것을 촉구한다”는 내용이다.

다행히 ‘심층분석대상국(환율조작국)’ 지정은 피했다. 미국의 교역촉진법은 ▶대미 무역흑자 200억 달러 초과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흑자 3% 초과 ▶GDP 대비 외환시장 달러 순매수 2% 초과 등 세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하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다. 세 가지 중 두 개를 충족하거나, 대미 무역흑자 규모와 비중이 과도한 경우엔 관찰대상국(Monitoring list)으로 분류한다. 미국은 기존 5개국(한국·중국·일본·독일·스위스)에 인도를 추가해 6개국을 관찰대상국으로 분류했다.

한국은 대미 무역흑자, GDP 대비 경상흑자 3% 초과 요건에 따라 관찰대상국에 포함됐다. GDP 대비 외환시장 달러 순매수 비중은 0.6%로 기준치에 못 미쳤다. 당국이 GDP의 0.6%만큼 달러를 사들여 원화 강세를 막았다는 의미다.

정부도 미국의 요구를 어느 정도 수용하는 것으로 방향을 정했다. 달러를 사고판 내용을 사후에 공개하는 방법이다. 미국과 국제통화기금(IMF)이 권고하는 방안이다.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공개하지 않는 건 한국뿐이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9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 및 IMF·세계은행(WB) 춘계회의에 참석한다.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와 만나는 이 자리에서 외환시장 개입 내역 공개에 대한 협의를 마무리할 것으로 보인다. 김 부총리는 “공개 주기는 나라마다 일별·월별·분기별로 다르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가입했지만 6개월 단위로 공개하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현재 미국은 TPP 복귀를 검토 중이다. TPP는 애초 미국 주도로 시작됐다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탈퇴 선언 이후 나머지 11개국만 참여했고,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으로 이름을 바꿨다. 한국도 상반기 중 CPTPP 가입 여부를 결정할 계획인데, 미국이 복귀하면 선택의 폭은 크지 않다. 이렇게 되면 외환시장 개입 내역 공개도 TPP 기준을 준용할 가능성이 있다.

2015년 체결된 ‘TPP 회원국 거시정책 당국의 공동선언’에는 환율 정책에 관한 합의가 포함돼 있다.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분기별’로 공표하고, 외환보유액과 자본 유출입 등을 정기적으로 공개하는 내용이다. 예외는 있다.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등은 회원국과의 합의를 통해 반기 단위로 공개하고 있다.

시차도 문제지만 공개 기준을 매수·매도 총액으로 할 것인지, 순매수액으로 할 것인지도 고민거리다. TPP 공동선언문에 따르면 총액이 기준이다. 정규돈 국제금융센터장은 “한국은 수출입 비중이 크고, 경제 개방성도 높다”며 “정부의 개입 규모와 전략을 너무 자세히 공개하면 투기 세력의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당장 원화가치 움직임도 걱정이다. 지난해 4분기까지만 해도 원화가치는 달러당 1100원대를 유지했다. 그러나 올 1분기 평균 1072.32원으로 상승했고, 4월 13일엔 달러당 1069.5원에 거래를 마쳤다. 원화 강세는 양날의 칼이다. 수입 물가가 떨어지면 내수 진작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수출엔 부담이다. 원화가치가 급하게 오르면 수출 기업의 가격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원화가치가 1% 상승하면 수출은 0.51% 감소한다. 정부로선 원화 강세 속도를 최대한 늦추고 싶지만 미국의 압박에 미세조정조차 부담스러운 상황이 됐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적절한 시기에 정부가 개입하지 못하면 원화 강세가 더 가팔라질 수 있다”며 “중요한 심리적 저항선인 1050원이 무너지면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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