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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우 프라테인(eu prattein)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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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9호 31면

김수영의 행복어 사전 

편지들

편지들

에우 프라테인(eu prattein)

우린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행복한 사람, 그는 어떤 조건을 갖추고 있는 걸까요. 한 사람의 삶은 어떨 때 온전히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요. 질문이 좀 다급하고 막연한가요. 그러면 조금 좁혀 생각해보겠습니다. 예를 들어 행복한 피아니스트, 그는 어떤 조건을 갖추고 있는 걸까요. 몇 가지를 열거해볼 수 있겠습니다. 우선 자신의 음악을 들어줄 관객이 있어야 할 것 같고요. 그것을 연주할 무대도 있는 편이 좋겠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 연주를 들으려 하지 않는 피아니스트를 행복하다고 부르는 것은 어쩐지 어색합니다. 또 자신이 진정 사랑하는 곡들도 조금 있어야 할 것 같고, 또 피아노를 가르치거나 연주하면서 생계 문제를 적당히 해결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측면들 이외에 우리가 놓치기 쉬운 중요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즉 행복한 피아니스트는 피아노를 그런대로 잘 쳐야 한다는 점입니다. 어떤 이가 피아니스트인데 혹은 그 스스로 피아니스트를 자처하는데, 막상 연주에 서툴러서 쉬운 곡들도 절망적인 수준으로밖에 연주할 수 없다면 그를 행복한 피아니스트라고 부르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행복은 자신의 일을 잘 해내는 능력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어찌 우리가 모든 일을 잘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다행히 스스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건 몰라도 적어도 그것 하나는 잘 해내고 싶어 합니다. 그것은 반드시 그 성과에 대해 타인으로부터 오는 인정 때문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잘해낸다는 것은 그 자체로 스스로에게 깊은 만족감을 안깁니다. 칭찬 중에서 가장 뿌듯한 칭찬은 스스로에게서 듣는 칭찬입니다. 가장 고요한 기쁨의 원천이죠.

잘하는 것, 그것은 잘사는 것과 아주 긴밀하게 관계 맺고 있습니다. 이 흥미로운 양상이 고대 그리스어 ‘에우 프라테인(eu prattein)’이라는 어구 안에 잘 담겨 있습니다. 이 말은 좋음 혹은 탁월함을 뜻하는 ‘eu’와 행위나 행동을 뜻하는 동사 ‘prattein’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일을 기술적인 측면에서 탁월하게 수행해내는 일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단어가 “잘 하는것”뿐 아니라 “잘 사는 것” 혹은 행복을 의미한다는 점입니다. 앞의 의미가 특정한 일을 목적어로 하는 타동사적 의미라면, 후자는 행복하게 잘 살아간다는 자동사적 의미라 규정할 수 있습니다. 이 둘은 견고하게 서로 묶여 있습니다. 행복하다는 것, 잘 산다는 것, 그것은 어떤 일들을 잘 해내는 것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기술적 탁월함은 행복에 대해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적어도 중요한 필요조건 중의 하나라는 점이 이 어구에서 뚜렷이 보입니다.

플라톤은 인간의 행복에 관련된 이 두 차원, 그러니까 잘 사는 것과 잘하는 것의 의미론적 관련성을 잘 보여주고 있는 이 말을 특별히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수많은 대화편들 이외에 모두 13편의 편지를 남겼는데요, 이중 한 편을 제외하고는 모두 이 “에우 프라테인”이란 말로 편지를 시작합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자신의 이름 그리고 편지를 받는 사람의 이름을 적은 후에 이 유명한 인사를 덧붙이는 식이죠. 예를 들면 그의 다섯째 편지는 “플라톤이 페르디카스에게, 잘 지내시길”이라고 시작됩니다. 이 인사말은 당시 아주 일반적인 것은 아니었고, 플라톤이 고집스럽게 즐겨 사용했던 말이었습니다. 플라톤으로부터 편지를 받은 사람들은 이 문구에서 “잘 지내시길”이라는 인사뿐 아니라 “잘하시길”이라는 격려 또한 읽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잘 사는 일, 그러니까 행복은 단순한 행운과는 분명히 구별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스스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을 잘 해내는 것이 중요하고, 이것은 단순히 하늘에서 벼락처럼 내 의지와 관계없이 떨어질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잘하는 것이 뭐 항상 대단한 일이겠습니까. 당신의 출근길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분들에게, 당신이 탄 지하철과 버스를 안전하게 운전하는 분들에게 아낌없이 잘했다는 말을 전해주세요. 물론 당신도 누군가에게 잘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잘 사시길, 그리고 이를 위해 잘하시길 플라톤처럼 기원해봅니다. “에우프라테인!”

김수영 한양여대 교수 ksyp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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